2021년 4월 21일 (수) / 9일차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9일차) 여행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성산 휘닉스파크 →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 → 명진전복(★★★★) → 세화해변
→ 성산일출봉(포레스트 콜드브루) → 일출봉도 식후경(★★★) → 성산 휘닉스파크
아이들이 하루하루 달라진다. 눈에 띄게 변한다.
낯선 곳에서 잠드는 두려움, 벌레 포비아, 야채 거부증, 편식, 운동을 싫어하는 성격
총체적인 난국이었던 첫 째의 여러 트라우마들이 점차 학습으로 극복되기 시작한다.
서울에서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퇴근후 저녁 시간에만 잠깐씩 아이의 모습을 접한다.
아이에 대한 기억은 잠들기 전 몇 시간. 그 시간의 기억이 전부다.
온전히 아이의 성장과정을 바라보지 못하고 일에 치여 살았던 삶.
그런 삶을 나도 살고, 우리네 선배들도 살았고, 우리네 아버지들도 살았다.
그 젊은 날 예쁜 기억들, 소중한 자녀와의 추억들이 얼마나 아쉬울까.
몇 년씩 집을 비우며 촬영을 하느라 아이가 불쑥 커져 있었다는
선배들의 경험담이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과연 그런 삶이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곳에 내려온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는 매일매일이 설렌다.
오늘은 아이들과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오늘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될까.
하루에도 수십 가지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자아도 많고,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꿈도 되돌아보게 된다.
가시리는 유채꽃 길로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쉽게도 길가 유채꽃은 거의 사라졌다.
유채꽃밭에서 예쁜 가족사진 한 장을 찍고 싶었지만 트랙터로 뒤엎고 있었다.
철이 지나면 관광객이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저렇게 뒤엎는다고 한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유채꽃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흔적을 강제적으로 지움 당한다.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흔적들은 말이 없지만 못내 아쉬웠다.
가시리는 또 말 농장이 많기로 유명하다.
아예 조랑말 체험공원도 있다.
조랑말에 먹이를 주는 체험이 이 곳 필수코스인 듯. 아직 말을 타기 무서워하는
지음이는 먹이주기로 말타기의 빈자리를 채웠다.
먹이를 주는 게 아이들에게는 너무 신기한가 보다. 당근을 몇 봉지째 줘가며
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다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물과 교감을 한다.
임신한 말도 승마체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농장주인 얘기로는 순산을 위해 승마로 자극을 줘야 된다고 하는데
11개월간 뱃속에서 자녀를 품은 말의 모성애는 인간 못지 않게 숭고한 것 같다.
우리네 삶에 있어서
인내의 숭고한 시간과 이별의 아쉬운 시간은
어떻게 보면 동일선상에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게 기다림과 그 기다림을 견뎌낸 인고의 미덕을
한층 키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의 끝에는 뭐가 남을까?
매일매일 성찰하며 일깨운다.
비록 아무것도 깨우지 못하더라도,
이 시간만큼은 뇌주름 속에 깊이 박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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