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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Jul 29. 2021

거짓말처럼

2021년 4월 25일 (일) / 13일 차

2021425, 일요일 (13일 차)  거짓말처럼.  


강정 아파트 에이바우트 커피 서귀포 중앙도서관 영육일삼 (돈까스 ★★★★★) 

  켄싱턴리조트 군산오름 중문 신라호텔 강정 아파트    


 어느덧 두 번째 일요일 아침. 빵 굽는 냄새가 그리웠으나 오늘은 참아보기로.

 지난 2주간 꽤 많은 돈을 썼다. 그래도 지인 숙소로 숙박비는 아낄 수 있었지만,

 외식비와 관광객 입장료 등이 꽤 많이 든다.

 어린아이들 2명이라지만 그래도 기본 어른

 두 명 분에 플러스알파를 생각해야 하니 비싼 제주 물가를 고려하면

 한 끼당 최소 3만 원 이상은 생각해야 할 듯.

 그래서 이제 조금은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껴볼 요량이다.       

 

 지난 한 주간 불태웠으니 오늘은 가까운 인근만 돌아볼 생각으로 오전에

 서귀포 중앙도서관에 들렀다. 매번 아내와 아이가 함께 들어가 책을 빌려오곤 했는데

 오늘은 대신 들어갔다. 일요일 오전이라 어린이 도서관은 꽤 한산했다.

 제주의 도서관은 참 쾌적하고 책도 많고 장점이 많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투자에는

 그래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가끔 아이와 함께 들른 어머님들이 책을 읽어주곤 하는데

 그 속삭이는 듯 책 읽는 소리가 꽤 듣기 좋았다.

 그 어머님과 비슷한 톤으로 아이에게 두 권을 읽어줬다.

 

 아이의 책을 빌리는 건 내 책을 고르는 것보다 더 신중하게 된다.

 곤충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곤충에 대해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는 책을.

 심한 변비로 똥 싸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위해 똥의 탄생과 철학이 담긴 책을.

 여는 플립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는 공간이 있는

 호기심 유발 책을 빌려야 한다.


 책을 고르다 보면 어른 책만큼이나

 아이들의 세계도 넓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어른의 눈높이에서 고민했던 내 창의력 수준은

 굉장히 일차원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시청률을 못 잡았나 ㅠㅠ


서귀포 중앙 도서관에서

 생각보다 책이 아이의 사고관에 많은 도움을 준다.


 지음이는 제주에 처음 왔을 당시 식당에 돌아다니는 파리와 길가에 있는 개미를

 끔찍하게 무서워했는데 벌레에 관한 친숙한 책을 읽고 나서 그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이젠 갯바위에 돌아다니는 크고 징그럽게 생긴 갯벌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이의 트라우마는 다그친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아이가 느끼는 공포를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는 자세, 공포를 극복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래 기다려주는 것. 아이가 무서워하는 본질을 이해시켜주는 것.

 점점 더 친숙하게 공포의 대상을 노출시켜주고 전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 인식시켜주면 그 공포의 대상은 언젠가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여행을 통한 견문은 낯선 곳에서 살아보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며

 스스로 깨우침을 얻는 것이다. 물론 어릴 때면 부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부모도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 용감해진 아이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언젠가 겁도 없이 뱃머리에 기대어 서고, 높은 턱에 걸터앉고, 높은 곳을 주저하지

 않고 오르는 모습.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아이가 컸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또 하나. 아이를 다그침에 있어,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있는 그대로 지적하거나

 감정을 싣고 바뀌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사사건건 나무란다면

 아이의 잘못은 금방 고쳐지지 않는다.


 지음이의 고집은 날 닮은 황소고집이다.

 그래서 끝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굽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런 고집을 꺾어보려고 화를 내고, 매도 들고, 심지어 감정까지 표출했다.

 하지만 뒤늦게 돌아보면 그런 내 모습이 너무 한심했다.

 한참을 반성한 이후로 아이를 대하는 생각과 태도를 바꿔보려 노력했다.

 다섯 살 아이와 싸워서 뭐하겠다고.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지.

 절대 화부터 내지 않고, 한 시간 넘게 울고 길바닥에 드러누워도 끝까지 기다려주기로.


 그렇게 생각하고 태도를 바꾸니 아이의 태도도

 어느 순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아이도 아직 성숙하는 시기이다 보니

 커가는 과정에서 올바른 태도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고집도 무한하지는 않다.

 어떻게 푸는 게 좋을지 갈등이 생길 때마다

 화두를 바꾸거나 아이와 질문하며 문제를 생각하는 모습도 괜찮은 방법이다.

 오래 걸리고 지치겠지만 몇 번이고라도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다그치면 아이 성격만 버리고 부모 자식 간에 사이만 나빠진다.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안 좋은 모습들이 보일 때면 섬뜩할 때가 있다.

 적어도 내 단점은 배우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범수 감독 소개로 온 돈까스 리얼 맛집 <영육일삼>


 켄싱턴리조트 앞에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영육일삼이라는 돈까스 맛집이 있다.

 범수 감독이 꼭 한 번 가보라고 소개해 준 돈까스 집이라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예상도 못했다.


 아직 연돈을 먹어보기 전이지만, 지금까지 먹었던 돈까스 중엔 단연코 최고다.

 아이들이 잘 먹는 기준에서만 봐도 그렇다. 단골집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배불리 아이들 점심을 먹이고 오늘은 처음으로 오름에 올랐다.  


 제주에만 오름이 총 368개나 있다던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있으니 오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군산오름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오름이라고 한다.


군산오름 (★★★★★) 차로 오를 수 있는 제주 유일의 오름



 높은 곳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면 쌓인 피로감이 확 달아난다.

 산에 오르는 이유다.


 차로 거의 정상 부근까지 오를 수 있고,

 약간의 오르막은 걸어 올라야 하지만 두 아이를

 안고 충분히 갈만한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이 우리를 반긴다.

 북으로는 한라산 정상이, 남으로는 저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들어왔다.      

 330여 미터 고지임에도 이렇게 멋지게 트인 비경이라니,

 게다가 차로 오르기도 좋다니.

 

 일제가 이곳에 동굴진지를 구축하고 미국과 일전을 벌였다니

 충분히 그럴만한 곳이었다.      

 하루에 메인 포스트 한 곳만 들려도 시간은 금방 간다.

 두 곳 이상을 다니거나 조금 멀리 있는 곳이라면 아침을 조금 일찍 먹이고 출발해야지만

 그렇게 다녀오면 체력 방전 속도가 빨라진다.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힘들다.

 온종일 운전하랴, 밥먹이랴, 놀아주랴, 안고 다니랴, 씻기랴, 책 읽어주랴, 재우랴...

 잠들 때까지 아이들은 부모 손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나마 다른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영상을 틀어준다.

 아이들이 점점 유튜브 중독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다.

 보고 있는 영상을 잠깐이라도 멈추거나 끄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댄다.      

 

 정말... 정말.....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쉬운 육아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13일차 제주도 좋은 추억 페이지로 기억되겠지만,

 육아휴직으로 온 여행인 만큼 모든 페이지는 육아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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