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형대의 아파트에는 보통 화장실이 2개다. 우리 집도 그렇다. 안방과 연결된 작은 화장실에는 세면대와 변기 정도만 설치되어 있다. 공용의 큰 화장실에는 욕조와 변기,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이 두 개임에도 나는 살아가면서 각 방마다 화장실이 다 딸려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머리 감을 건데. 아빠가 쓰고 있으면 어떡해!"
머리카락이 라푼젤처럼 긴 중학생 딸이
아침 6시 50분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일어나자마자 하는 말이다.
그럼 나는 바빠진다...
"자기야, 딸내미가 머리 감아야 한다네요. 얼른 씻고 나오세요."
화장실 문을 노크하고 문짝에 기대어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알았어."
애들 아빠의 말은 간단하다. 하지만 화장실 밖은 간단하지 않다.
"내가 아침에 머리 감을 거라 말했는데 아빠가 쓰면 어떡해. 난 지금 안 감으면 지각한단 말이야!"
"아빠 금방 나올 거야. 그리고 지각은 왜 해? 집에서 10분이면 학교인데. 머리 감고 말리고 8시에 나가면 지각 안 하지."
"난 머리 감고 말리는데 한 시간 더 걸려."
'C~지지배, 그럼 머리를 짧게 자르던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지만 아침부터 나도 화를 내고 싶지 않아 참는다.
"얼른 감고 말리면 돼. 지각 안 해. 걱정 마."
"그건 엄마 생각이지. 난 시간이 많이 걸린단 말이야. 아빠는 출근해야 하면서 일찍 썼어야지. 지금까지 쓰는 게 어딨어."
할 말을 다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딸의 뒤통수에 나는 또다시 말을 던진다.
"아빠, 6시 30분쯤 들어갔어. 이제 나온다니까."
"몰라."
5분 뒤 애들 아빠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이는 하나뿐인 딸을 보며 '또다시 시작했구나'하는 표정으로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빠, 나오셨어. 얼른 들어가 머리 감아!"
하지만 웬걸...., 금방이라도 뛰어들어갈 것 같았던 딸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변덕???'
"화장실 비어있어. 얼른 들어가."
나의 재촉성 발언에 딸은 천하태평의 자세로 걸어 나왔다.
"급하다며. 머리도 말려야 하고."
"응. 그런데 감고 갈까 그냥 갈까 고민 중이야. 엄마 생각은 어때?"
"머리 밑이 가렵고 기름기가 많으면 감고 가야지. 그걸 엄마에게 묻냐? 네 머리 상태는 네가 알 텐데."
"그렇지. 그런데 너무 떡지지만 않았으면 저녁에 감으려고. 머리 많이 떡졌어?"
딸은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들이민다.
"그렇게 떡지진 않았지만 학교 가서는 떡질 수도 있으니까 감고 가. 그리고 머리 감으려고 일찍 일어났잖아.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감아.
그리고 다음부터는 바쁜 아침시간 말고 제발 저녁에 감고."
"알았어."
짧은 말을 남기고 딸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큰 무리 없이 지나간 것에 안도하며 아들방으로 가서 아들을 깨웠다.
아들은 매일 머리를 감는데도 머리 상태가 엉망이다. 어떨 땐 비듬, 아니 머리 각질이 나뭇가지에 떨어져 있는 눈꽃처럼 매달려 있으면서 머리도 떡져있다.
"아들, 일어나. 머리 감고 학교 가야겠는데."
"어제 감았는데......"
아들은 눈도 뜨지 않고 머리 감기가 귀찮다는 본인의 의사표현을 한다.
"어제 감았어도 아침에 머리 상태가 이러면 할 수 없지. 이런 상태로 학교 가면 주변 친구들이 옆에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알았어요."
"지금 동생이 머리 감는 중이니까 일어나서 아침부터 먹어. 한참 걸릴 거니까."
아들을 앉혀두고 방을 나오며 나는 당당하게 딸을 재촉하는 한소리를 외친다.
"딸, 오빠도 머리 감을 거야. 7시 30분까지는 나와."
딸은 아빠를 몰아세우는 것과 달리 본인이 화장실을 접수하면 함흥차사가 되기 때문이다.
목욕은 보통 2시간, 큰 일을 볼 때도 보통 30분 이상. 머리 감을 때도 보통 30분 이상이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올 때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 중1 딸!
딸은 화장실에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딸이 나오고 아들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기에 얼른 따라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묻혀 양치질을 하며 욕조에 머리를 두고 한창 머리를 감고 있는 아들을 보았다.
'헐~~~'
"아들, 샴푸 거품도 안 났는데 벌써 헹구고 있어?
그러니까 매일 감아도 머리가 그 상태였지."
나는 칫솔을 입에 문 채로 샤워기를 들고 다시 아들 머리를 충분히 적신 후 샴푸를 다시 짰다.
"물을 충분히 머리에 묻혀야 샴푸 거품이 풍부하게 생겨. 거품이 충분히 나면 머리 밑까지 샴푸가 발라지도록 손으로 골고루 비벼주어야지."
나는 잔소리 성 설명을 하며 아들의 머리를 박박 긁어주었다. 아들의 샴푸에 비하면 2~3배의 거품이 골고루 발라지며 머리 밑의 각질들이 다 떨어질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샤워기로 머리를 구석구석 헹구어주었다.
"이제까지 겉 머리에만 물칠과 샴푸만 묻히고 끝이었어. 그렇게 감으니 저녁에 떡지지."
"네. 나름 감는다고 감는데..."
"제대로 감아야지. 딸은 너무 꼼꼼히 감고 넌 너무 대충 감고. 둘을 반반씩 섞으면 딱 좋겠다."
어딘가 낯익은 말이다.
커오면서 엄마에게 우리 남매가 자주 들었던 말!
아침 출근 전, 한 시간의 시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양치질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나는 출근을 했다.
오늘 같은 아침은 출근이 나의 비상구가 된다.
"아들, 딸! 날씨 추우니까 머리 잘 말리고 가.
엄마 다녀올게."
얼른 방어용 현관문을 닫으며 딸에게 한마디 더 던진다.
"딸아, 너는 저녁에 머리 감아주라. 그게 효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