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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양 Jul 03. 2023

나는 '터키 마니아'

내가 평소에 '터키, 터키' 노래를 부르고 다니니 주변 지인들은 터키만 보면 내가 떠오른단다. 나를 마치 터키 전도사로 여기는 것 같다. 나는 터키문화관광부 소속도 아니고 여행 관련 직업을 가진 건 더더욱 아니다. 그야말로 '내돈 내산'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에 푹 빠져버렸을 뿐이다. 시차 6시간에 달하는 머나먼 중동의 나라.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터키가 좋은 걸까?

인천에서 직항으로 약 12시간 비행을 하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다. 아시아와 유럽 중앙에 위치한 유일한 나라이다.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예전부터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이 되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실크로드의 종착점이기도 한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한다. 유럽식 건축물에 동양적인 문양이 함께 새겨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기원전부터 그리스, 동로마,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곳에 있자면 과거의 찬란한 역사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박물관에 다 전시되지 못한 유물들이 길가에 나뒹군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수천 년의 시간 위에 걸터앉곤 한다.


대부분의 터키인은 무슬림이지만 곳곳에는 기독교 성서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이 많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자연스레 공존한다. 이스탄불의 랜드마크인 '아야 소피아' 앞에 서면 1500년 시간을 버틴 위엄과 품격에 압도당한다. 아야소피아는 비잔틴 최고의 성당이었지만 오스만제국 시절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화려한 건물 내부에는 기독교 성화와 함께 코란의 구절이 나란히 놓여있다. 유럽이기도 하고 아시아이기도 한 나라.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무슬림 나라.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나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터키의 독특함이 있다.


터키 사람들의 오지랖은 알아줘야 한다. 길 하나를 물어봐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여행자이기에 더 많은 관심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넓은 오지랖 기질이 장착된 것 같다.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다가 카드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어느새 내 주변에는 행인들, 경찰, 호텔 직원까지 모여 도와주고 있었다. 비록 카드는 되찾지 못했지만 내 일처럼 도와주던 그들의 인정은 유독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터키인 특유의 유쾌함은 여행자의 딱딱한 경계심을 내려놓게 만든다. 틈만 나면 농담을 하고 눈만 마주쳐도 웃어버린다. 특히 한국인에게 더욱 그렇다. (가끔 동양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터키 남자는 조심해야 한다.) 어딜 가나 늘 '차이'라는 홍차를 건넨다. 각설탕을 넣어 달짝지근하게 우려 마시는 차이 한 잔을 앞에 두면 잠시 멈추어 여유를 부릴 기회를 얻는다. 터키인들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형제의 나라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 15,000여 명이 자원해 함께 싸워 준 나라. 그 동기가 어떠했든 우리와 피를 나눈 사이라는 건 틀림없다. 여행 중 만났던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 앞에서는 감사하다는 말 외에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예상보다 그 이상의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사람들. 꼬레아라면 일단 오케이 하는 사람들. 공항 직원조차 "웰컴! 꼬레아!"라며 여권 도장 꽉 찍어주는 사람들이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광활한 대지 위를 달리면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선 마냥 게으르고 나른해진다. 풍부하고 원시적인 자연 속에서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누려볼 수 있다. 수천 년을 버틴 고대 원형극장에 들어설 때.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땅굴 속에서 지켜낸 신앙의 흔적을 바라볼 때. 무너진 돌더미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할 때. 시공간을 넘어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직접 땅을 밟으며 느낀 깊고 오묘한 매력. 그렇게 터키는 갈 때마다 나를 웃게 했고 울게 했다. 풍성한 매력으로 다양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토록 터키가 좋은가 보다. 나는 터키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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