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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아 Oct 24. 2024

할아버지와 솔방울

단풍놀이 대신 솔방울 줍기

"어제 사전 답사를 했는데 몇 개 안 떨어져 있더라구."

할아버지가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듯 기대치를 낮춰 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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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인 작년 이맘때쯤, 엄마가 성탄절 장식을 찾으러 고속터미널까지 갔다가 허탕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할아버지는 뒷산 산책로에 떨어진 솔방울을 한가득 주워 우리집에 가져오셨었다. 가장 크고 예쁜 아이들로 추려 본인집으로 주워 오시고선 해충제를 뿌려 말리고 비닐에 고이 싸 우리집으로 손수 배달 오셨었다.


당시 해외에 있었던 나는 내복 바람으로 해충제를 뿌리는 모습의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만 보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도 꼭 할아버지의 솔방울 탐방에 동참하리라 다짐했었다. 그게 올해가 되었다.


11월치고는 너무 따뜻했던 몇 주와 달리,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할아버지의 야외 활동이 걱정되었지만 정작 할아버지는 모자에 조끼, 기모 바지와 패딩으로 결의를 다지셨다. 그 전날 산책로 사전 답사를 통해 손녀와의 첫 가을 놀이 코스를 짜시는 다정함까지 완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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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뒷산으로 연결되는 산책로로 향했다. 산책로 초반에 모세가 짚었을법한 나무 막대기를 낙엽 더미에서 건져 먼저 할머니께 쥐어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와 할아버지를 뒤로한 채 지팡이를 짚어가며 언덕을 성큼성큼 올라가셨다. 가볍게 흥얼거리고 가끔 발을 구르며.


할아버지의 사전답사 보고대로 산책로에는 솔방울이 없었다. 뒤따라 찾은 나무 지팡이 두 개로 나와 할아버지가 낙엽을 휘졌는데도 솔잎 밖에 보이지 않던 찰나, 할아버지가 갑자기 산책로의 목재 울타리를 넘고 내리막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 내려가신다. 


할머니는 뒤도 안돌아보시고 올라가시지, 할아버지는 갑자기 월담을 시전하시지. 정신줄을 부여잡고 애타게 외친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 할머니! 저랑 할아버지 좀 기다려주세요!" 몸은 할머니를 향하고 고개는 할아버지를 향하는데, 누구에게 먼저 가야할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내 목소리에 멈추신걸 확인하고 할아버지에게로 간다. "할아버지! 더 내려가지 마세요, 제가 주울게요!" 내가 애타게 부른다. 직진 순재 선생님도 울고 가실 나의 직진 할배는 대꾸없이 걸어가시다가 지팡이를 땅에 짚고 비틀거리며 주저 앉으신다. 내 심장도 같이 주저 앉는다.


솔방울 하나, 두 개, 세 개, 한 움큼. 할아버지는 곧 이어 손틈 사이로 삐죽이 나온 솔방울들을 내 쪽으로 내미시고는 자랑스레 웃으신다. 허를 찔린 나도 따라 웃는다.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모셔 올 때까지도 할아버지는 숲속을 뒤지신다. 돋보기 안경에 휴대용 돋보기까지 더하며 신문을 읽으시는 할아버지는 단추구멍 만한 맨눈으로 낙엽 속 솔방울을 발굴하신다. 그 개수가 많아지자 모자를 벗어 오늘의 수확물을 그 안에 쏟는다.


"할아버지, 그 정도면 충분히 모아진것 같아요! 이제 나오세요!" 나의 급한 아우성이 무안하게

할아버지는 똑--똑---하고 떨어지는 잠긴 수도꼭지끝 물방울 같은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여기, 받아."

할아버지가 흙 묻은 모자를 건네신 후 다시 풀썩 낙엽 위로 떨어지신다. 이번엔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다시 놀란 내가 상황 파악 하기 전, 할아버지는 이미 사족보행으로 산책로 울타리 아래를 기어 넘고 계신다. 솔잎, 진흙, 낙엽, 나뭇가지, 아마 작은 곤충들까지 온갖 흔적을 무릎에 담아내면서도 껄껄 웃으시며 나의 부축을 받아 일어 서신다.


할아버지 모자 속 수북히 쌓인 솔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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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늘 신사셨고, 지금도 신사시다. 성품과 말투, 청결과 맵시, 무엇 하나 흐트러진 점이 없다. 그 끝에는 미수를 넘게 한결같이 추구해온 스스로에 대한 기준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고,

그 뒤에는 그 기준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던 할머니가 있다.


빈 상에도 이웃에게 베풀 수 있었던 것은 대접용 메뚜기 반찬을 위해 산을 헤메던 열여섯살 새댁이 있었기 때문이고, 

목회 내내 묵념과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 내 불협화음을 조율하던 사모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없는 살림에 자식들과 그의 가정들에게 밑거름이 되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모르게 카드를 돌려 막아가며 최선을 살아간 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것과 우리는 알 수 없을 세월들까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한평생 지켜온 자신의 기준 밖에 방식을 마다하지 않는 과감함으로, 할머니의 미세한 감정변화를 살피며 반응하는 섬세함으로,

자신은 누구인지, 당신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할머니께 끊임없이 상기시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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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할머니 접시에 맛을 보라고 반찬을 얹으신다. 할머니는 싫다며 새침하게 고개를 가로저으신다. "엄마, 그거 맛있어,"하고 딸이 권하니 "그래?"하고 바로 드시는 할머니를 보며 할아버지가 어이 없는듯 웃으신다.


"하여튼 만만한게 사랑이지?"


가장 어렵고도 만만하고, 가장 고맙고도 미안한. 그럼에도, 그래서, 매일을 노력하며 이어가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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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은 분홍빛으로 달아 오르고 코는 훌쩍이더라도, 솔방울만 보면 어느 추위에도 내가 아는 두 사람의 온기에 따뜻하게 안길 수 있을것만 같다.


손도 비슷비슷한 우리들


2023년 1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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