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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한가운데에 서서

이제부터 시작인데... 괜찮겠어요?

by 결아 Mar 27. 2025

꿈같은 첫 직장에서 8개월 차. 상사에게 1년을 채우고 퇴사하겠다고 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출퇴근길에, 주말밤에, 친구들과 약속 중에 집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상황을 공유받다 내린 결정이었다. 어른들은 지쳐 있었고 바다 건너 생활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소연 듣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 엄마는 조심스레 딱 일 년 동안의 귀가를 권유했고 나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건넨 말인지 알았다. 


고민이 길어졌다. 이제 막 직장에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혼자의 삶이 비로소 내 삶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결국 같은 결론으로 되돌아왔다. 꿈의 직장, 꿈의 도시에 나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쳐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그때의 나는 현재의 나의 결정을 용서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옳은지 알지 못하는 나는 더 큰 두려움을 피하기로 했다. 어떤 결정을 하던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가족들에게 알린 후 상사 방에 가 말씀을 드렸다. 가족이 걸린 일인 만큼 진심으로 들어주셨다. 그리고 진심으로 염려해 주셨다: "근데 지금 나이는 커리어를 한창 쌓아야 할 중요한 시기인데. 괜찮겠어요? 이제부터 시작인데."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민망한 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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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집에서 하트 모양 피자를 나눠 먹은 후 저장만 해뒀던 브루클린 Greenpoint의 한 바에서 친구들과의 송별회를 마치고 알딸딸해져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뜨거워진 두 볼에 바람이 시원했다. 친구들의 문자를 받으며 남은 짐을 모두 정리했다. 다음날 아침, 남은 가구들을 스토리지 유닛까지 옮겨줄 동유럽 억양의 이삿짐센터 직원 두 분에게 부탁해 그 둘 사이에 껴 트럭을 함께 타고 가구를 모두 옮겨 마지막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이 가고 텅 빈 주차장에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휴대폰이 울려 내려다봤다. 한 줄짜리 메일이다.

"Thinking of you as you leave New York today. 오늘 뉴욕을 떠나는 너를 생각해."


묶여있던 발걸음이 떨어진다. 자기연민은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우선순위에 의한 나의 결정이었기에.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모두 괜찮을 것이다.


스물셋의 나는 스물둘의 나의 삶을 정리한 후 집으로 왔다. 


23의 여름.

하트 피자!하트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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