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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그들의 감정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다.

by 결아

집으로 돌아온 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단연 다시 시작된 단체생활이었다. 가족들과의 동거.


귀국했지만 다시 입시생이자 취준생 신분으로 돌아온, 다시 말하자면 백수 신분이 돼버린, 내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각자의 삶이 어려운 것을 알기에 친구들과 형제자매들에게 하지 못하는 집안 어른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은 -- 한탄, 불평, 험담, 조언, 회상, 후회, 수다 -- 내 담당이었다.


그것은 내게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어른들에게서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속이 깊다'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칭찬으로 여겨왔던 나이기에. 이런 내게 듣고 반응하는 행위는 나를 향한 상대방의 믿음의 징표이자 나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자녀 한 명이 돌아왔으니 그와 붙어있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마음도 있었고, 가족 전체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으니 최대한 곁을 지켜야 되지 않겠냐는 나의 의무감도 있었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면 누군가 침실에 들 때까지 늘 공용 공간에서 (예를 들어 거실이나 주방 같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이 공존 속에서 나의 인내심과 내적 그릇의 크기를 계속해서 시험당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기에 내가 하는 것은 그 자리를 지키고 듣기만 하는 것인데. 늘 해왔던 것이 왜 이리 버겁게 느껴지는 건지.


무엇이 변했을까. 대화의 주제가 빈도로 보나 주제로 보나 더욱 무거워진 건 사실이다. 은퇴기에 접어들고 여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그들이 느끼는 실망감.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시련의 결과물이라는 자괴감.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허망함. 속내 토로를 넘어 삶을 포기할 것이라고 울부짖는 위협 섞인 구조 요청.


그들의 변화도 있지만 그보다도 나의 변화가 컸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상대방의 격한 감정에 함께 잠수해 그 속을 헤엄치다 나올 자신이 없었다. 반세기 넘게 축적해 온 감정의 부피와 무게는 고작 반의 반 세기 밖에 살지 않은 내가 담아내기엔 무리인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이 정도의 노동은 사랑하는 사이에서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들의 헌신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노력이라고 나는 징징거리는 자신에게 말해왔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허울뿐인 숭고함의 그림자 아래서 숨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체력이 나빠진 탓인지 이 감정 물질(동사)이 이제 내게 건네는 건 멀미뿐이었다.


힘겨움을 느끼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어 망설여졌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걸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 그저 힘겨울 수 있다는 인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줄 수 있을까?


자문하며 깨달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자유. 오로지 타인의 감정만을 받아내는 것이 아닌 나의 감정 또한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위로도 격려도 바라지 않고 그저 혼자서 솔직할 수 있는 공간에서 숨김없이 내뿜고 그 속에서 적당히 앉아 있다가 준비가 되면 일어서서 나오는 것.


그들에게 그 어느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듯이 그 감정을 스스로 소화하는 것 또한 그들의 책임이다.

내게 그 어느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듯이 그 감정을 스스로 소화하는 것 또한 나의 책임이다.

그들의 감정도 그들의 몫. 나의 감정은 나의 몫.


방금 거센 소나기가 지나갔습니다. 몇 분 동안 쏟아지던 폭우가 거짓말처럼 멈췄어요. 처마 아래로 몸을 피했더라도 옷이 젖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겠지요. 비를 맞은 사람들은 태연합니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알 수 없는 거리로 다시 나섭니다. 그처럼 당연한 삶이 때로 너무나 놀랍습니다.
- 최진영, "어떤 비밀" (난다, 2024), p.199.


내가 먼저 비를 당연스럽게 여기고 그 비를 태연하게 맞으며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폭우 속에서 지내는 이들의 곁을 지킬 수 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의 경계선이 흐려지는 친밀한 관계일수록 그 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부드럽게 표현하고, 서로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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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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