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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Aug 08. 2024

5. 무료

무료한 건 무료입니다만?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침이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그리고 하루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애쓴다. 그렇게 애쓴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돌아올 수 없는 오늘에게 물어본다. "오늘. 어땠나요?"

대답할 수 없는 오늘은 어제의 눈치를 보고 내일에게 대답을 떠넘기지. 참으로 무책임하게도 말이야. 

아니, 물어본 내가 무책임한 거지 뭐-


비밀 많은 잠자리가 제 갈 길을 알려주지 않듯. 소문 무성한 매미가 제 이야기 감추려 소리 내듯. 

각자의 계절에 찾아오는 상징적인 것들이 있다. 걸음을 멈춰 커다란 나무를 집중해서 바라보면 매미가 참 많았다. 잠자리를 이기고 단연코 여름을 상징하는 1등 곤충이 된 매미는 뜨거운 태양 아래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그런 매미 소리와 함께 창가 맨 끝줄에 나무책상에 매달린 문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더위에 약한 문수.

그렇다고 추위에 강한 건 아니지만 극도로 여름을 싫어한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수는 그런 문수가 이해될 수 없었고, 문수 또한 이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이수를 이해하기보다 무더운 여름 자체가 더 힘들었다. 묘하게 들려오는 아지랑이 소리는 더위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효과음이다. 거기에 화룡정점의 매미까지. 문수는 문득 궁금했다. 혹시 매미도 더워서 저러는 걸까?


천장에 붙어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를 따라 빙몇 바퀴를 돌며 찬바람 풀충전을 하고 이수를 향해 달려갔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풀충전했던 시원한 바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또르륵-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는 땀을 손바닥으로 때려잡고 어김없이 이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매미는 왜 저렇게 우는 거야?!"


"매미한테 물어봐."


그렇다. 매미한테 물어봐야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짝짓기를 위해 운다고는 알고 있지만 뭐라고 외치는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아... 그렇구나."


외마디 짧은 탄성으로 문수는 터벅터벅-돌아갔다. 여름에 약한 문수는 충전이 필요했다. 다시 돌아간 나무책상에 기대어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더위에 지쳐 '무기력'이 녹아 몇 개의 자음과 모음이 증발하고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무료'만 남더라. 문수는 무료했다. 더 이상 호기심도 상상력도 발현되지 않았다. 경쾌하게 울려대던 종소리 마저 축축-늘어졌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오늘따라 조용한 문수가 조금은 어색했는지 이수가 말을 걸었다.


"어디 아프냐?"


"아니... 더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예상 답안이었으니까. 


"무료해... 더워서 그런가..."


"더운 거랑 무료한 거랑 뭔 상관이야. 그냥 더위 먹은 거지."


딱 잘라 말해주는 이수를 힐끗-보는 문수. 


"더위가 무료라서 그래..."


"당연하지. 그럼 누가 더위를 돈 주고 사겠냐."


'흠칫-' 문수는 말장난에 받아쳐주는 이수가 조금 신기했다. 한번 더 살짝 던져보는 문수.


"무료한 하루구만..."


"그것도 무료라서 그래. 하루가 무료라서."


"!?"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지불을 해야 할 대상도 법적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하루에 돈보다 더 한 가치를 두려 한다. 어쩌면 하루가 무료라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서. 각각의 삶이 배경이나 분위기는 다를 수 있겠지만 24시간이라는 하루는 부정할 수 없이 똑같다. 이수의 말에 문수는 무료함이 달아났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수가 문수를 깨워주는 날도-


"그럼 하루가 유료라면 우린 무료함을 못 느낄까?"


"너 돈 얼마 있는데?"


주섬주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짤랑거리는 동전 몇 개를 꺼내올리는 문수.


"200원?"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닌 이수. 이수의 농담 따먹기도 여기까지였나 보다. 아무 말 없이 한숨 한번 쉬고 각자의 집으로 갈라졌다. 그런 이수의 뒷모습과 동전을 번갈아 보는 문수. 피식-한번 웃어 보이더니.


"이수야!"


이수를 향해 100원을 던졌다.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100원을 받아내고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문수를 바라봤다.


"입금완료."


문수는 하루를 이수와 함께 나눠 계산했다. 어쩌면 우리도 무료라고 생각했던 하루를 무료하게만 보내고 있지 않는지. 혹은 너무 유료 하게 보내려고 한건 아닌지.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번갈아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소중한 하루라는 것을- 



잠자리가 모기를 이긴단다.
집에 잠자리를 키워야 하나.
혼자보단 둘이서 싸우면 승률이 올라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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