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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참았는데 콧물은 못 참겠네.

연극 <젤리피쉬>

by 진작

남들은 눈물 한 방울 없는 T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 난 영락없는 파워 F다. 누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감수성 풍만하고 공감대마왕에 눈물 많은 에프다. 에프. FFFFFFFFFFFFFFF. 그렇다고 T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자꾸 T라고 하니까 말이야. 괜히 부정하고 싶단 말이지? T가 뭐 어때서. 아 나 F 지. 한 번만 더 나한테 T라고 하면 진짜 T가 뭔지 보여주겠어. 아 나 F 지... 자꾸 깜빡하네...

아직 학습 중.


본의 아니게 공연을 자주 보게 된다. 나의 공연을 보러 와준 지난 동료들의 공연. 혹은 가까운 가족 같은 지인들의 공연을. 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공연을 즐기며 찾아보러 가지는 못한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길을 가다 우연히 보게 된 공연홍보 현수막. 그리고 멈춰버린 채 찍은 사진.

20250329_133055.jpg 연극 <젤리피쉬>

긴 시간 동안 머물며 찍은 사진은 아니었지만, 한켠에 계속해서 맴도는 공연포스터. 어쩌면 처음으로 진심 가득 담아 보고 싶은 공연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예매를 하게 되었고 공연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누나와 닮은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내가 상상해 왔던 무대. 그것에 대한 기대와 걱정은 한 없이 올라갔다.


과연 눈물을 참아낼 수 있을까?


20대 즈음이었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길을 가다 누나와 닮은 사람들을 보게 되면 눈물이 왈칵 쏟아져 참기가 힘들었다. 마주치는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었지만, 종종 그런 날에는 코끝이 찡한 걸 참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 참아내고 나면 괜스레 대견한 느낌도 들고. 사실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눈물을 쉽게 흘리지 않고 잘 참아낸다고 생각했던 자신에 대해 상당한 의문점과 실망감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눈물이 잘못한 건 없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의 사고방식이 무릎 꿇고 사과해야지. 아울러 코끝에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점점 괜찮아지더니 지금은 제법 잘 참아내는 편이다. 완전히 괜찮다곤 할 수 없지만 지난 20대 그 어느 시절즈음부터 시작해 30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아이러니한 이 현상들은 세월처럼 흘러가 자연스럽게 흐려졌나 보다.


다운증후군. 어릴 적 누나는 나에게 특별했고, 지금도 특별하다. 이 공연(젤리피쉬)의 주인공은 다운증후군이다. 우려와 걱정은 저 멀리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너무나도 잘해주셨다. 공연의 내용이나 정보를 하나하나 적을 순 없지만, 감히 추천하고 싶다. 이 공연에 대한 호기심이어도 좋고, 다운증후군인 배우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어도 좋다. 일단 가서 보고 많은 걸 느꼈으면 한다. 내가 느끼는 바와 달라도 좋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공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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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 추천이지만, 내가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어 주말이 지나 새벽에 일을 끝내고 화창한 햇살 앞에 곧바로 몇 자 두드리고 있나니 무거울 눈꺼풀이 또렷해지는 건 엊그제 너무나도 좋았던 공연에 대한 기억에 행복한 무대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누나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누나도 나와 같은 꿈을 꾸었다면 함께 무대 위에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던져보는 여럿 질문들 속에 버킷리스트 같은 나의 꿈을 눈앞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한 듯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지난 감정들을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걱정 마라. 난 지난 몇 년을 눈물 참기로 단련해 온 사람이 아닌가.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완벽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콸콸- 쏟을 뻔한 걸 콧물로 대신 한건 '신의 한 수'였다. 줄줄 흐르는 코를 가볍게 톡톡- 눈으로 손이 가지 않는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남몰래 입으로 숨을 쉰다. 기능을 상실해 버린 채 희생한 코에게 박수를.


그리고 공연을 한 모든 배우, 스태프들에게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누나는 알까. 나의 꿈을. 그리고 곧바로 반문하듯 문득 누나의 꿈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올 추석에 누나를 만나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하고 싶은 말이나 적고 싶은 생각은 많지만 짧게 마무리하려 한다. 언제나 늘 그렇듯. 리뷰는 정성스럽고 짧게. 그리고 나의 마음에 나의 머리에 품어야지. 3월의 마지막 날.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한 추억 담고 4월을 마중 나간다.



이 정도면 잘 참았다.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왜 울었어?라는 말에 머쓱해서
비염핑계를 댈지, 안구건조핑계를 댈지.
고민해 봤자 답은 늘 가까운 곳에 있잖아?
'난 F니까 울었다.'라고 하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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