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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18.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5

단편 소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원래 밤에 잠이 없는 법입니다. 


내가 말했다. 


-뭐라구요? 


경호원이 인상을 썼다. 


-국가기밀을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소립니다. 


경호원은 나를 노려봤고, 나는 웃으면서 받아 넘겼다. 악감정은 없었다. 그는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진검을 사용하게 되면서 경호원들의 경계는 더 엄중해졌다. 수업의 목적이 공개연무에서 짚단 베기 시범을 보이는 데 있었기 때문에 진검 사용은 필수였다. 우선은 날이 서지 않은 검으로 자세 연습을 했다. 초심자가 진검을 잘못 휘두르면 자기 발이나 다리를 벨 수도 있다. 


대통령은 체격이 좋은 편이었고, 나이에 비해 근력도 많이 남아 있었다. 사실 짚단 한 개를 베는 것은 바르게 검을 잡고 휘두르는 방법만 알면 단순한 완력으로도 가능하다. 깨끗하게 잘리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자를 수는 있다. 왕정국가에서 농민들을 징집해 전쟁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짚단 한 개를 벨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피부와 근육, 혈관을 자를 수 있다는 뜻이다. 


공개 연무는 짚단 한 개뿐 아니라, 세 개와 다섯 개를 겹쳐놓은 것을 연속으로 베야 한다. 그게 가능하면 사람의 팔과 목, 허리를 양단 할 수 있다. 그 수준은 힘으로는 절대 안 된다. 각도와 속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 바른 자세에서 나온다. 


나는 대통령의 다리와 허리, 손목, 팔꿈치를 죽도로 치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자세가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빠르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느리더라도 정확하게. 


-처음부터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목표에 닿는 순간 힘을 넣는 겁니다. 야구에서 투수가 직구를 던질 때와 비슷한 방식입니다. 


나는 작년에 한국시리즈에서 대통령이 멋지게 시구를 한 것을 떠올리고 그렇게 말했다. 그때도 투수가 청와대에 행정관으로 들어와 투구법을 가르쳤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몇 주 자세 교정 수업을 했는데, 경호원이 또 나를 불러 세웠다. 


-VIP 몸을 막대기로 툭툭 치는 거 좀 안 할 수 없습니까? 


경호원이 말했다. 굳이 죽도를 막대기라고 한 것을 보면 일종의 경고 같았다. 하지만 나는 막대기보다 VIP라는 말이 더 거슬렸다. 매우 중요한 사람. 물론 대통령은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각자 중요한 것은 다르다.


-혹시 결혼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내년 봄에 할 예정입니다. 


경호원이 그건 왜 묻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아내 될 분과 대통령 중 한 명을 구할 수 있다면 누굴 구할 겁니까?

-당연히 대통령님을 구해야죠. 

-직업정신이 투철하네요. 예비 신부님께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서운해 할 테니.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시고, 그보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경호원은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의도적이었는지 무의식중에 한 행동인지는 몰라도, 그 마음은 확실하게 전달됐다. 아무래도 나는 경호실에 단단히 찍힌 모양이었다. 


-당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을 욕한다면, 그건 당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의미래요. 


검도왕전을 연속으로 제패하고 내가 온갖 시기와 모함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어느 나라의 속담이라고 했다. 그때는 아내가 옆에 있어서 누구한테 어떤 소리를 들어도, 모욕적인 일을 당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만 남았다.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을 누가 하는가 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경호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특수부대 출신에 무술 유단자인 경우가 많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힘은 사람을 호전적으로 만든다. 충분히 정중하게 할 수 있는 말을 굳이 시비조로 말한 것은, 경호원들이 은연중에 자신들이 나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힘의 우위를 확실하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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