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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27.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9

단편 소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나한테 메타세라믹으로 만든 단검이 있고, 내가 대통령을 죽여야 한다면,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있는 상황은 환영 퍼레이드였다. 예정은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었지만,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영상을 보니,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교민과 악수를 하거나, 꽃다발을 받는 등의 돌발 상황이 꽤 여러 번 있었다. 돌발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는 순간은 존재했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차가 멈췄을 때, 보통 50에서 100미터 정도를 인파 사이를 걸어서 지나간다. 그 순간 내 손에 칼이 있다면 나는 대통령을 죽일 수 있었다. 


나는 차 실장에게 내 판단을 이야기했다. 차 실장은 자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경호 예정에 변동도 없었다. 청와대 경호팀은 대통령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대통령을 움직일 수는 없다. 검이 검객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다섯 번의 환영 퍼레이드에서 나는 대통령 주변에 무형의 검막을 친다. 그리고 걸으면서 사방으로 살기를 쏘아댄다. 내가 계속 살기를 보내는 탓에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근접 경호를 맡은 경호원들은 와이셔츠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 


의심의 눈으로 보니 모든 사람이 다 테러범처럼 보인다. 태극기를 흔드는 중년 여성은 바지 주머니가 수상해 보이고, 노인들의 지팡이는 전부 무기처럼 보인다. 가방을 들거나 맨 사람들도 전부 위험인물이다. 키가 크거나 체격이 좋은 남자들이 눈에 띄면 그가 서 있는 방향으로 발도할 준비를 한다. 


스위스에서는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건네던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내 살기에 반응해 울음을 터트린다. 가끔 천부적으로 감각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다. 대통령이 아이를 안아 들고 달래는 통에 나는 더 긴장한다. 대통령이 아이를 엄마 품으로 인계할 때, 나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에게 무술을 가르치면 대성할 거라고 말해주려다가 그만둔다. 그런 일로 통역관을 부르는 것도 우습고, 무엇보다 무술로 대성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세상이다. 어떤 재능이 있든 수학과 언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게 제일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선생이 보기에는 위험한 상황이 있었습니까? 


차 실장이 물었다. 


-제 범위 안에서는 살의를 가진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부하들 말로는 선생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어서 뒤도 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혀서 앞만 보고 걸었다고. 테러범들도 선생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죠. 


차 실장이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수상해 보였지만, 칼을 꺼낸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테러 위험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메타 세라믹으로 만든 단검을 훔친 것은 테러 조직이 아니라 어딘가의 초밥 요리사일지도 모른다. 단지 더 맛있는 초밥을 만들기 위해 신물질로 만든 칼이 필요했을지도. 


-테러 계획이 없었든, 선생 덕에 억제 되었든 결과는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차 실장은 묵례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대통령의 오후 일정 동안 실내에서 근접 경호를 맡도록 배려해줬다. 그냥 따라만 다니면 교황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지팡이를 반납했다. 교황청과 총리 관저에서 지팡이가 필요한 일은 없을 테니까. 


교황은 백인이라는 것과 외국말을 한다는 점만 빼면, 아내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옷만 조금 더 화려했다. 그래도 나는 교황에게 죽은 아내를 위한 축도를 부탁했다. 교황은 짧게 기도를 한 후에 아내가 신의 곁에서 평온하게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어딘지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다. 


교황은 기약 없는 방한 약속을 했고,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기약 없는 초청 약속을 했다. 한국 신문에 무슨 대단한 말이 오간 것처럼 기사가 난 것을 봤는데, 현장에서 내가 느낀 것은 ‘언제 시간 나면 한 번 더 보자’하는 식의 빈말이었다. 


남은 것은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뿐이었다. 회담이 끝나면 바로 귀국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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