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앞집 아줌마의 인연은 25년이나 되었다. 아줌마는 우리 엄마보다 열 살이 더 많았다. 엄마가 중학교 때부터 한 동네에 살았고, 아줌마는 수출무역단지 근처의 공장을 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청소년기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울먹였다. '어릴 때'라는 말로 시작하는 모든 말투에 울분이 가시처럼 쓰라리게 박혀 있었다. 그 시절에 아줌마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벌써 죽었을 거라고 했다.
외할아버지의 부모님은 몇 대가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돈을 다 싸들고 피난 갈 수가 없어서 아궁이나 다락방 바닥을 뜯어 돈 보따리들을 숨기고 왔다고 했다. 외할아버지의 가족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 증조 외할아버지의 선산도 다 빼앗기다시피 했고 외할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있었다. 엄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고 집안일을 하며 외할아버지의 레퍼토리를 지겹도록 들었다. 그때 엄마를 건져 올려준 게 바로 아줌마였다.
엄마와 아줌마는 어린 내가 듣기에도 쓸데없는 말들만 했다. 배추값 폭등이나 고추값 폭락, 시장에 '김민재 아동복'집 아저씨가 또 술을 먹고 시장에서 꼬장을 부린 것, 쌀집 아줌마가 부싯가게 아줌마랑 드디어 한 판 했다는 것, 우리 외할머니가 성도사 절에 가서 스님한테 듣고 온 미신 같은 말들, 이번에 담근 고추장이 엄청 맛나다는 것, 그딴 것들 뿐이었다. 나는 공부를 할 때마다 들리는 저런 무쓸모 말들을 참다 참다 결국은 성질을 부렸다. "제발 공부 좀 하자고! 남들은 자식 공부 못 시켜서 안달인데, 왜 우리 집은 내가 공부할 때마다 못 하게 하냐고?!" 그러면 엄마는 나를 째려보며 "저 못된 가시나 봐라." 했고, 아줌마는 내가 싫어하는 웃음소리로 "아이고, 우리 지은이, 눈깔 봐라! 썽 내도 이뿌네? 헤헤헤헤, 내 간다잉!" 하고 돌아갔다.
ㅣ 아빠와 아저씨의 술상
아줌마는 아저씨를 매일같이 구박했다. 옆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아저씨를 면박 주고 괄시했다. 아줌마의 남편은 군무원이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아빠와 같이 우리 집에서 술을 마셨다. 매일 저녁 8시 30분만 되면 어김없이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아줌마와 아저씨의 차이라고 한다면, 아줌마는 벽돌 사이 비밀 장소에서 열쇠를 꺼내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것이었고, 아저씨는 벽돌 틈에 대문 열쇠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늘 초인종을 누른다는 것뿐이었다. 아저씨는 아줌마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시끄러웠고 호탕했고, 덩치가 크고 목소리는 더 컸다. 가게 가서 술을 마시지, 왜 하필 만날 천날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 거나한 노랫소리가 시작될지 나는 매번 날이 서 있었다.
"지영이 아부지 계십니까?"
"아니오. 아빠 주무시는데요. 안녕히 가세요."
"누고? 지은이가? 가시나, 또 뻥치고 있네. 빨랑 문 안 여나?!"
인터폰 전화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아빠는 안방에서 옷을 입고 나오며 같은 말만 했다. "지은이, 들어 가서 공부해." 또 동네가 떠나갈 듯이 시끄러울 텐데 공부를 하란다. 아빠는 언제나 저녁 7시 땡 하면 집에 들어왔다. 퇴근시간이 어떻게 저렇게 정확할 수가 있나 싶을 만큼 성실했다. "아빠는 친구도 없어요? 왜 매일 퇴근해요? 출장 같은 거 없어요?" 1년에 표정 한 번 안 변하는 아빠가 그럴 땐 피식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아빠는 말이 없이 점잖았고, 아저씨는 말이 쉴 새가 없었다. 도대체 한 구석도 맞는 게 없던 두 아저씨가 무슨 재미로 술을 함께 마시는 건지도 신기하기만 했다.
아빠는 전주 사람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일자리 때문에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왔다. 아빠의 단칸방이 엄마 집 근처여서 오고 가며 엄마를 보았다. 아빠는 엄마를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해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때부터 그렇게 싸우다가 미운 정이 들어 결혼을 했단다. 미운 건 미운 거고, 정은 정인데 어떻게 두 단어가 합성어로 공생할 수 있다는 건지 어렸던 나는 다 이해되지 않았다.
20대 초, 20대 후반이었던 엄마와 아빠의 약혼 사진. 40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 집 거실에 술상이 펼쳐지고 아줌마까지 출동하면 그날은 드라마도, 공부도 모두 포기 했어야 했다. 공부해야 하는데 못 하니까 온갖 성질은 다 나고, 결국은 내 마이마이 워크맨으로 드라마를 소리로만 들으며 화를 삭였다. '아...... 어떻게 매일 오냐고?!' 아저씨가 출장을 가는 날이나 아줌마가 친정 가는 날이 제일 좋았다. 나는 아줌마, 아저씨 때문에 시끄러운 모든 걸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