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기독교였고, 엄마는 불교였다. 나는 아빠가 엄마처럼 경상도 사투리를 장난으로 따라 쓰는 게 너무 싫었다. 말 수도 적은 아빠는 하루에 몇 마디나 말을 한다고 그 적은 말조차 억센 경상도 말을 따라 쓸까.
명절에 친가가 있는 전주에 가면 작은 아빠 가족들과 고모네 가족 할 것 없이 빙 둘러앉아 기도를 했다. 우리한테는 마지막 '아멘'만 하면 된다고 힌트를 줬지만 나는 달랑 그 두 음절조차도 낯설었다. 엄마는 혼잣말로 우리한테 윙크를 하면서 "야야. 예수쟁이들은 국 데울 필요도 없겠다. 기도 한다고 맨날 식은 국만 먹을 것 아이가."라고 말하며 킥킥거렸다.
"아지매! 지금 갑시다!"
엄마와 아줌마의 말은 참 신기했다. 목적어도, 보어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 건지 다 통했다. 두 사람은 20년째 같은 절에 다니고 있었다.
"여보! 준비됐어요? 지금 갑시다!" 나는 절에 가는 것만 좋아했다. 엄마가 다니는 절의 스님은 결혼 후에 출가해서 아들이 셋 있었다. 스님의 세 아들들은 우리 세 자매들 보다 두 살씩 많았다.
나는 큰 오빠를 좋아했다. 나는 5학년, 큰 오빠는 고2였다. 나는 매번 못 이기는 척 엄마를 따라나섰다. 용석이 오빠는 어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내 머리를 큰 손으로 목탁을 닦듯이 슥슥 만지며 "까탈쟁이도 왔네?"라고 인사했다. 이게 몇 시간을 빗어서 묶은 머리인데 그걸 그렇게 센스 없이 흐트러뜨리나 싶어 쏜살같이 해우소로 달려가 머리를 다시 매만지고 나왔다.
아빠는 절에 도착하자마자 일하기 편하게 스님 바지로 갈아입었다. 기독교였던 아빠는 예불은 드리지 않았고 절 곳곳을 다니며 전기가 나간 건 없는지, 바닥이 패인 곳은 없는지, 수도와 가스는 괜찮은지 등을 점검했다. 나는 평상에 앉아 보살님이 주시는 시원한 식혜를 마시며 다리를 까딱까딱 튕기면서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휘휘 지나가는 그 순간들이 참 좋았다.
햇살에 반사되는 눈부신 아빠의 대머리를 보며 거울에 반사되는 햇빛으로 아빠를 조준하기도 했다. 절에 처음 온 어떤 신자들은 절 마당에서 아빠를 마주치면 손을 합장해 "스님, 안녕하십니까. 관세음보살."이라고 인사했다. 그럼 아빠는 똑같이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한 뒤에 나를 뒤돌아 보고 "아멘"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웃겨서 스님의 예불 소리를 방해할까 봐 입을 틀어막고 낄낄거렸다.
우리 가족, 아줌마네 가족, 스님 가족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보살님이 주시는 산채비빔밥과 시락국은 어찌나 맛있던지 더 먹고 싶어도 용석이 오빠가 있으면 꼭 남겼다. 용석이 오빠는 공부를 굉장히 잘해서 나는 매번 모르는 문제를 일부러 만들어서 들고 갔다. 용석이 오빠가 설명할 때 대답을 해야 하니까 이미 해설지의 과정도 다 외우고 갔다.
어쩌다 언니도 같이 절에 가면 옆에서 지켜보던 언니는 혀를 차며 "지랄한다."라고 상소리를 해댔다.
용석이 오빠는 손가락이 무척 하얗고 길었다.
절 평상 옆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용석이 오빠의 얼굴에 버드나뭇잎들이 살랑살랑 그려졌다. 햇살 아래에서 풀벌레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른들은 절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차담을 나누었다.
스님은 가끔 사주 같은 걸 봐주었다. 느낌이 안 좋은 것들, 이렇게 선택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근거 없는 직감으로 조언해서 나는 속으로 트집을 잡았다. 그날 스님의 예언은 아저씨는 절대로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도 안되고 자전거도 안된다고 했다. 아저씨는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저런 말을 지어내나 싶었다. 아저씨가 껄껄 웃으면서 "아니 스님. 그럼 만날 택시만 타고 다니라고예?" 스님은 버스든 택시든 어쨌든 아저씨한테 자동차나 오토바이만큼은 절대로 조심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