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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Oct 24. 2021

"선생님 수업은 학예회 같아요."

남들보다 10년도 훌쩍 지나 교사가 되었던 6년 전,

나이 잔뜩 먹은 신규교사였을 때의 일이다.

늦은 나이에 교사가 되었으니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교과 모임에 가입했다. 내 또래의 교사들은 대학 졸업 직후 교사가 되어 경력 10년의 중견 교사였다. 나는 그만큼의 패션, 구두 디자이너 경력이 있었다.



이제 막 교사가 된 열정과 4시 퇴근이라는 믿기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선배교사들의 수업이 궁금했다. 내 수업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어서 용기 내어 수업 비평 발표자로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발표 자리에서부터 생각지 못한 관점의 비평과 예리한 지적을 받았다.



"미술 교과는 그 자체로 정당성과 독립성이 있는데, 왜 타 교과의 보조를 셨나요? 미술 교과만의 본질적 가치가 있는데 왜 다른 교과의 수단으로 활용됐는지 그 부분이 의아합니다."



수업이 타 교과의 수단으로 쓰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다른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생겨나고 동굴벽화가 그려진 기원전 만 오천 년경부터 미술은 주술적 의미의 수단으로 출발했습니다. '수단'은 미술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해도 그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까요? 미술은 시각 언어인데 그 자체로 수단입니다. 역사와 미술의 융합수업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선배 교사가 말했다.



"미술의 본질 이야기가 나와서 첨언해 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수행평가에서 그림 그리기를 하지 않는다 하셨는데, 미술의 본질은 '표현'입니다. 그리기, 만들기 같은 창작 활동을 통해서 아이들의 정서가 더 풍부해지고, 재료의 물성을 통해 감각이 길러지는 것이 미술의 본질이고 기본입니다."



교사가 된 지 이제 겨우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신규 교사의 첫 연구수업이라 선배교사들은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의견을 내며 내 수업에 대한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애정어린 신랄한 혹평도 함께 쏟아졌다. 내공 있고 도움 되는 조언들을 하나 하나 들으며 너무나 부족한 현재의 내 역량이 부끄러웠다.



(이 교과 모임에 대해 덧붙이자면, 현직 작가부터 교과서를 집필한 선생님들까지 대단한 분들이 활동 중이며 많은 선생님들이 열정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수업비평과 나눔을 통해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경력 20년 이상 고경력 교사들의 시각으로 봤을 땐, 회사 생활을 오래 하고 이제 겨우 교사가 된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후배가 미술 교과의 정당성과 본질에 대한 풍부한 경험 없이 시도한 도전이 불안해 보이는 건 당연했을 것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수행평가를 낼 때, 그리기나 만들기 등 창작, 표현활동을 주로 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선배 교사들은 의아해 했다. 그 부분에 대해 역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임용시험을 지나 온 입장에서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미술은 1960년대 개념미술이 등장한 이래로 미술과 음악의 경계마저 허물어졌다.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장르 경계의 해체와 함께 작품과 관객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상호 소통의 Interactive Art는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반대로 '미술 수업에서 왜 꼭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 미술의 영역 중 하나이지만, 미술은 그림을 필수적으로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2년 뒤 나의 두 번째 수업 비평 발표는 더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내 수업을 보여주기에만 급급해서 많은 내용을 발표했고 선생님들의 피드백과 질문도 그만큼 쏟아졌다. 수업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던 선배 교사들은 하나 같이 조언했다. 수업에서는 어떤 한 꼭지만 잡아서 깊이 있는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늦은 나이에 교사가 된 나는 마음이 급했고 의욕이 앞서 있었고 게다가 이런 내 욕심을 자각하지 못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교과지식을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양껏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많은 양을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겠습니까? 소화를 한다 해도 아이들이 머리로만 듣지, 가슴으로 느끼는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예술적 사고에 대한 작은 점 하나를 심어 주고 싶다' 하셨는데, 꼭 점을 찍어야 하나요? 그 생각부터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점 하나 안 찍으면 어떤가요?"

"선생님 수업 자료는 선생님이 아니면 활용할 수도 없어요."



자신있게 발표를 마치고 들은 비평은 들을수록 공감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하나 하나 직면했고 자신있게 발표를 한 내 모습이 스스로에게도 민망했다. 내가 왜 발표를 한다고 했을까 후회되기도 했다. 조금 더 내 수업이 정립되었을 때 발표를 했어야 했다. 의욕과 마음이 앞선 결과였다.


서울시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수업비평 연구발표를 했던 현장


다들 식사 장소로 사라졌고, 사회를 진행했던 선배 교사가 나를 격려했다.

"선생님,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이렇게 한 번 깨지고 나면 또 그만큼 성숙하게 돼요. 우리 모두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잖아요. 용기 내 발표해 줘서 고마워요."

방향도, 내용도 생경한 후배의 수업 발표를 들은 선생님들은 마지막 격려까지 잊지 않았고 나는 1분이라도 이 곳을 도망나오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나에게 뒤 쪽에 앉아 있던 젊은 교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 발표를 참신하게 들었어요.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선생님 스타일대로 진행해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들었던 핵심 조언을 몇 번이나 마음에 새겼다. 집으로 돌아와 선생님들의 비평을 세세하게 모두 메모했다. 적고 곰곰히 살펴 보니 모두 너무나 옳은 말이었다. 내가 정말 부족했다. 고작 2년이 지났다고 자신감이 붙었다니 베테랑 선배 교사들의 눈에 비친 나는 얼마나 모자라 보였을까. 민망하고 부끄러워 며칠 동안 스스로를 질책했다.



더 많은 수업 준비와 교실에서의 경험을 쌓아서

내 수업에 대한 중심이 어느 정도 서기까지

당분간 모든 교과 모임은 미뤄두고 수업부터 열심히 만들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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