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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Oct 24. 2021

"미술교과가 왜 타 교과의 수단이 되었나요?"

신규교사 1년 차, 나의 첫 연구수업

신규교사는 그 해에 연구수업을 해야 한다. 수업 컨텐츠를 고민하던 나에게 한국사 선생님이 제안을 했다. 함께 교과 융합 연구수업을 해보자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미술교사는 크게 Fine Art 전공과 디자인 전공으로 나뉜다. 서양화, 동양화, 조소 등 Fine Art 전공자는 표현 수업과 감성적인 비실용 미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나와 같은 디자인 전공자는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실용 미술을 선호한다. 따라서 한국사 선생님의 제안이 나로서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다가왔다. 교사 신생년 나의 첫 연구수업이었다.




시작은 가벼웠다. 주제를 고민하던 우리는 매년 학교로 내려오는 독도에 관한 책자를 보고 이 많은 양질의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자는 활용되지 못하고 매년 박스채 버려진다. 그래서 그걸 활용할 목적으로 '독도 수호'라는 주제를 정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한국사와 미술, 서로의 수업을 참관해서 함께 진행을 했다.

한국사 선생님은 한국사 시간에 독도에 관한 역사적 사건과 일화들을 가르쳤다. 나는 한국사 수업을 참관하며 학생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했고 미술시간에는 학생들이 '독도수호'라는 주제에 대해 어떤 미술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다양하게 토론했다. 이제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점점 토론이 늘었고 모둠별 결과물이 구체화되어갔다.



한국사 시간인지 미술 시간인지 구분이 없던 3주간 아이들은 그 과정을 즐기고 재미있어했다. 학급 친구들과 더욱 화합했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토론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을 학생들 스스로 찾아나갔다. 자는 아이 하나 없었고 쉬는 시간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우리 사회는 결과를 훨씬 더 중시한다. 그러나 학교에 있다 보면 결과보다 과정에서 참의미를 발견할 때가 더 많다. 조금씩 달라지고 논리적으로 발전해 가는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학생 스스로와 교사 모두에게 큰 기쁨이었다.



모둠별로 다양한 창작물이 정해졌다.



1. [조각, 공예] 얇은 우드락 판을 등고선처럼 쌓아 독도 지형을 모듈화 시킨 독도 디자인 조형물 제작하기

2. [영상 디자인] 독도 역사와 수호에 관한 홍보 영상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기(웅장한 음악, 영어 자막 추가)

3. [시각 디자인] 학교에 부착할 독도 수호 포스터, 독도 달력 그리기(3가지 시리즈로 제작)

4. [제품 디자인] 독도의 상징적 동식물 디자인한 독도 카드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

    (6장의 카드가 한 세트로 카드 뒷면을 이으면 독도의 완전한 모습이 나오도록 함)

5. [멀티미디어 디자인] 독도를 수호하라 '독도야, 걱정마' 폰 게임 제작하기

6. [시각 디자인] 학교에서 독도까지 입체 네비게이션 만들기

7. [제품 디자인] 독도 벳지 만들어 등굣길 친구들의 가방에 달아주기

8. [시각 디자인, 개념미술] 독도의 생태 환경과 지형, 자원에 대한 홍보 강의하기, 퀴즈 맞추기

9. [애니메이션 디자인] 강치에 대한 동화책과 애니메이션 영상 만들기

    ('강치'는 물갯과 동물로 일본의 무자비한 포획으로 멸종된 독도의 대표적 동물이다. 그러나 일본 시네마현의 전직 초등교사 스기하라 유미코는 일제가 멸종시킨 강치로 거짓 동화책을 제작해 다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징물로 삼고 있다.) 

10. [개념미술, 퍼포먼스 미술, 서예] 조선 숙종대 독도지킴이 안용복이 되어 독도는 우리 땅 탄원서 연설하기




[시각 디자인] 학교에서 독도까지 입체 네비게이션 만들기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조각] 독도 벳지/ 독도 포스터/ 독도 달력/ 우드락으로 모듈화된 독도 조형물


[제품 디자인] 독도 카드  (6장의 카드가 한 세트로 카드 뒷면을 이으면 독도의 완전한 모습이 나옴)


[애니메이션, 시각디자인] 독도 수호를 위한 안용복의 노력


[개념미술, 퍼포먼스 미술, 서예] 안용복이 되어 독도는 우리 땅 탄원서 연설하기 / [영상디자인] 독도 홍보 영상 유튜브


[영상 디자인] 독도 역사와 수호에 관한 홍보 영상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기(웅장한 음악, 영어 자막 추가)


1시간의 연구수업은 학생들 모두가 결과물에 대해 발표하고 질의응답하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했다. 나와 한국사 교사는 사회만 진행했을 뿐이었다. 일주일에 한국사 두 시간, 미술 두 시간, 총 3주 동안 아이들은 아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앎으로부터 확장시킨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공부해서 아는 걸로 끝나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건 완전히 다른 활동이었다.


3주간 역사과/ 미술과 차시 계획


3주 동안 열심히 고민하고 만든 결과물을 학생들 스스로 발표하던 날. 조각 작품부터 제품 디자인, 시각디자인 결과물 발표를 지나 독도 수호에 대한 감동적인 유튜브용 영상, 그리고 마지막 결과물인 현대의 안용복이 되어 족자 형태의 독도 수호 탄원서를 낭독했을 때 아이들은 눈빛이 달랐다. 짧고도 긴 이 활동 이후 마음속에 점 하나가 찍힌 것 같았다.


3주 간의 한국사 & 미술 융합수업 현장


그로부터 2년 뒤, SNS로 하나의 쪽지가 날아왔다.

"혹시 00 고등학교 미아 샘 아니신가요?"



익명으로 가끔 일상 이야기를 하던 곳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나 깜짝 놀랐다. 3년 전 서울시민청에서 수업 발표를 했었던 그 현장에서 젊은 선생님들의 생각은 달랐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신선하고 다양한 수업을 보여주셨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소문이 자자했어요. 그날 선생님 발표를 못 들었던 게 아쉬워요. 다음에 꼭 한번 봬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 말이 크게 감사했고 용기가 생겼다. 많은 선생님들의 조언 덕분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업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선배교사들의 열띤 토론과 애정의 피드백은 이후 나의 큰 기준이 되었다. 반성과 성찰로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수업을 고민해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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