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 다닐 때 질문을 아예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학습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두었다가 수업이 끝나면 책을 뒤져서 답을 찾아냈다. 선생님께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것도 몰라?'라는 인식이 들까 봐가 아니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내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었다. 선생님과 밀착해서 1:1 질문과 답이 오가는 그 상황 자체에 경외심을 느껴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미술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학생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는 선생님들이 내심 부러웠다. 미술에 대한 질문이 있어 나를 잡았던 학생은 지금까지 단 한 명뿐이었다. 수능 국어 문제집에 나온 '인상주의'의 시대적 배경과병치 혼합에 대한 질문이었다. 당시 고3이었던 그 학생은 군대를 제대한 후에도 지금까지 애제자로 남아 안부를 전하고 있다.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그 녀석이다.
어느 날수업을 끝내고 교실을 나가는데, 여학생 여러 명이 내 뒤를 쫓아 달려 나왔다.
"미아 샘! 미아 샘! 잠깐만요. 질문이 있어요!"
나는 무척 기뻐서 걸음을 멈춰 섰다. 어떤 질문일지 잔뜩 기대가 됐다.
"선생님! 립스틱 어디 꺼예요? 무슨 색이에요?"
아...... 피식 웃음이 났다.
"그것 물어보려고 그렇게 뛰어 온 거야? 맥 루비우야. 이제 약속 있을 때마다 이것 바르고 나가야겠다. 고마워."
선생님 얼굴을 한 시간 내내 관찰했다고 하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설레기도 하고 예상을 뒤집기도 하는 학교에서의 내 두 번째 직업이 여섯 해가 되었다.
십여 년을 기업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교직으로 들어와 느낀 신기한 점 세 가지가 있다.
1. 교실마다 시스템 에어컨, 공기청정기가 있다!
2.준비물을 학생이 사오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사준다.
3. 학생들이 교무실을 거침없이 들락거린다!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어려움 없이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온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20여 년 전에는 '국어샘, 사회 샘'처럼 교과로 선생님들을 지칭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미아 샘'이라며 이름을 붙여 부른다. 교무실 앞에서는 언제나 얼어붙었고 선생님들께 뭔가를 들킬까 봐 심장이 마구 뛰었던 나는 아이들이 화장한 얼굴로 거침없이 교무실을 드나드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디자인 일을 했을 땐 내가 입고 싶고 신고 싶은 디자인을 했다. 드디어 내 디자인이 출시되면 백화점에서 사 입고 사신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디자인한 제품은 회사에서 주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직원 할인 10~15% 정도를 받고 내가 디자인한 것을 내 돈 주고 사야 한다. 길을 가다가, 지하철에서, 쇼핑몰에서 내가 디자인한 구두를 신은 사람을 발견하면 달려가서 손이라도 맞잡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반가웠다. 그런 게 보람이고 매력이었다.
구두 디자이너로 근무했을 때
밀라노 출장과 디자인 개발 업무
동료 교사들은 내가 입은 옷과 액세서리를 흥미로워하며 관심을 보였다. 수업 때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도 내 복장을 피드백해줬다. 아이들은 의외로 선생님의 패션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샘 데이트할 때 그 치마 입고 가세요."
"샘 오늘 예뻐요."
"샘 그 옷 어디서 산 거예요?"
수업 전에 서로 오가는 관심들이 정겹고 즐거웠다.
동료 교사들의 요청으로 나이대 별로 구매하기 좋은 쇼핑몰을 추천해 주었다.어울릴 만한 기본 아이템을 추천해줬고 평소 입고 다녔던 옷을 기억해 매칭시켜 주었다. 동료들은 색다른 신선함으로기뻐했다.관심 없던 부분에 대한 누군가의 관심은 서로 활력이 된다.
여성복 디자이너에서 구두 디자이너로 전향하기 위해 제작했던 포트폴리오 중에서 (재료: 색연필, 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