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나 남은 공간, 살아남기를 원하는 사람들, 본능 앞의 인간군상
올해 여름은 영화 성수기인 것 같다. 평소 영화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 즐기는 매니아도 아니었다. 그래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일, 그것도 두 달 새에 3편을 보는 것도, 나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실 이 중 기대작은 모두가 아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였는데(제작 확정 기사가 발표됐을 때부터 기다렸다.) 역사적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전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 그리고 미국적 정서와 배경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인해, 영화를 소화하는 데에 있어 다소 감안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다. 물론 이런 사족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게 봤던 영화였지만, 오늘 관람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 내용은, 대규모 지진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인 '황궁아파트'의 아파트 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계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으로서의 개념을 초월한다. 멸망적 세계에서 '생존'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공간이며, 주변과 구별되는 자체 규율과 질서 기반의 사회적 공간이자, 인간 존재로서 사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다. 예컨대, 황궁아파트는 쓰러진 콘크리트 폐허들 속에서 유일하게 우뚝 솟아있어, 아직 건재하다는 '생존'의 랜드마크로 기능한다. 살아남은 아파트 주민들은 새로운 원칙을 세우고 자체적인 룰을 만들며, 주민대표를 뽑고 방범부, 의료부, 배급부 등 사회조직을 구성한다. 심지어는 어린이들의 놀이 공간을 마련하고 티타임을 가지며 일상 수준의 대화를 나누며 주민 잔치를 개최하는 등, 문화적 향유가 가능한 곳이다. 즉, 새롭게 재편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 '황궁아파트'는 영화의 제목 그대로 아파트 공화국이자 천국과 다름 없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황궁아파트 공화국의 가장 첫 번째 원칙,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다>만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황궁 아파트 주민 수칙>
1. 아파트는 주민의 것
주민만이 살 수 있다.
2. 주민은 의무를 다 하되
배급은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한다.
3.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주민의 민주적 합의에 의한 것이며
이에 따르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상상 속의 공간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여느 국가와 같이 황궁아파트도 이러한 사회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수반해야 했고, 그 노력에는 인간성의 상실과 끊임없는 반성도 포함됐다. 외부인에 대한 아파트 주민들의 강경한 대응, '아파트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 아래 가려져 있는 음습한 비밀들, 주민과 아파트라는 거대담론으로 묶여 있으나 그 안에서 피어나고 있는 새로운 반대 집단들까지, 영원히 즐겁고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황궁아파트를 현실의 그림자가 덮쳤고, 현실에 그려질 것만 같던 유토피아는 마치 신기루처럼 상상 속의 공간으로 떠나가버렸다.
이처럼 황궁아파트는 현재의 국가, 더 나아가 일반 사회 집단의 모습을 재현하는 일종의 사회 미니어처이자 모델이다. 주민대표는 대통령, 방범대는 군대, 배급부는 정치체제로 치환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와 사회의 운영 방식을 보다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영화는 재난 상황이라는 극단적 환경, 아파트라는 친숙한 공간, 주민회의라는 익숙한 시스템의 비유법을 통해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를 피부로 느끼게 만들고, 그 본질에 대해 깊이 고찰해 봐야 함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나에게 전달하는 바는 무엇인가. 흔히 말하길, 좋은 영화는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은은하게 남겨주는 영화'인 것 같다. 사실 내게 좋은 영화는 수많은 이야기를 해도 결론은 희망적인 방향을 말하는 영화다. 단순히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문제는 없어졌다는 식의 무성의한 해피엔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영화는,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영화의 마지막, 황궁아파트와는 대조적으로, 가로로 눕혀진 아파트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정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 같다. 상황을 인정하고 나를 조금 내려놓는 것,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양심을 좇는 것.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불가능하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그들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추악한 노력들을 해 오던 중에도 끊임없이 반성하는 마음을 가졌던 건, 그들 스스로도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알고 있지만,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편안함을 포기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유토피아'는 모두가 왕처럼 풍족해서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결국,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지금의 사회에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소중하게 만들어지는 유토피아를 더욱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하지 않기 위해 내용 외적으로 이야기한 부분이 많다.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첨부하는 박효영 기자님의 리뷰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www.normalmedia.co.kr/news/article.html?no=24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