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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10. 2024

굽다, 그릇과 빵

35년 명장의 빵_가야의 토기_국립김해박물관(3)



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아낸 신석기 사람들은 그릇을 만들어 음식을 담거나 식량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가야 사람들이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밖의 문헌이나 고고학 자료에서도 가야 사람들이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과 과일, 채소 등을 길러 먹었고 가축이나 산짐승, 열매류나 조개, 생선류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먹거리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엌이 따로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가야의 집터에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부뚜막이 발견되었고, 조왕신(부엌신)을 모신 흔적도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부엌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음식을 귀히 여기고 식생활이 발달하면 자연스레 그릇도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미적 감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까지 발전하기 마련이다.


토기를 좋아하는 내게 좀 아쉬웠던 건, 국립김해박물관에 갔을 때 하필 개편공사로 2층이 일시적으로 폐관한 것이었다. 이층의 전시물들은 그릇을 비롯해서 가야인들의 실생활을 더욱 자세하고 실감 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많이 모자라겠지만 일층 전시실에서 만난 그릇으로 정리한다.


#가장 오래된 토기

현재까지 발견한 토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제주도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무늬 없는 갈색토기다.(국립제주박물관의 소장품이다. 검색으로 사진을 보았는데 둥근 선이 유연하고 단순미가 돋보였다.) 그러다 신석기 중기에는 빗살무늬토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유행하게 된다. 빗살무늬 외에는 자돌무늬나 누른 무늬도 있는데 후기와 말기에는 겹아가리 토기와 짧은 빗금무늬토기도 만들어졌다.




#'선'에서 '색'으로의 변화 ㅡ 민무늬 토기

가야의 토기는 단단한 '토질 토기'와 묽은 '연질토기'로 나누어진다. 토질토기는 깊은 굴 형태의 굴가마에서 1,000도씨 이상이 높은 온도로 구워 매우 단단한 토기로 저장, 의례, 장식용으로 많이 쓰였고 연질 토기는 얕은 구덩이 형태의 '한뎃가마'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서 흡수성이 뛰어나고 무른 편이며 붉은색을 띠는 토기로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가 '빗살무늬토기'라면 청동기시대는 '민무늬 토기'다. 민무늬 토기는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은 다소 거친 흙으로 빚어서, 천정 구조가 없는 노출된 가마인 '한데 가마'에구운 토기로 보통 갈색이나 적갈색을 띠는데 지역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보이기도 한다. 빗살무늬 토기에서 민무늬 토기로의 변화는 표현 방식이 단순한 ''에서 ''으로 넘어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변화는 그릇이 점점 더 일상에 필요한 용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적 감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한층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민무늬토기
붉은 간토기


#과도기의 토기 _ 덧띠토기

민무늬 토기의 아가리에 한 줄의 점토띠가 덧붙은 토기를 덧띠토기라고 한다. 덧띠 토기를 사용하던 시기는 민무늬토기에서 와질토기로 변하는 과도기적인 단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새로운 철기문화의 유입 등 정치적 사회적 변동의 시기의 토기라 할 수 있다.


덧띠토기

#옹관


일상생활에서 쓰인 토기라고 하기엔 무척 크다고 생각했는데, 초기 철기시대에 사용한 독널(옹관)이다. 옹관이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직접 보자 오히려 더욱 그 쓰임새를 상상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아마 목관에 익숙해서일 것이다. 나무로 짠 관에 망자를 눕히는 일보다 옹관에 넣는 것이 더 슬픈 일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단한 토기의 등장 _ 두 귀 달린 항아리

주로 무른 '연질토기'였던 가야의 토기가 단단한 '토질 토기'로 바귀면서 가야의 여러 지역에서 회청색의 단단한 토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토기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레를 사용했고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구워져서 물의 흡수가 적고 무척 단단해서 주로 의례용이나 식품을 저장하는 저장고 역할을 했다. 처음 나타난 형태는 '두 귀 달린 항아리'다.  다양한 형태로 여러 지역의 특징을 표현하며 발달한 가야 토기는 일본 고훈시대 토기인 '스에키'의 발생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두귀 달린 항아리


#원통모양 그릇 받침

4~5세기 김해지역의 금관가야에서는 굽다리 항아리(뚜껑이 있는 것도 있다), 긴목 항아리와 몸통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고 윗부분의 그릇받침과 아래의 굽다리는 바리 모양인 독특한 원통모양 그릇받침을 사용했다. 하지만 5세기 전후로 신라의 영향력이 김해, 부산지역까지 확장되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신라의 원통형식으로 변한다.



또한 굽다리 접시는 중국에서는 '두'라고 하며 제사 그릇으로 많이 쓰였다. 얇은 접시가 긴 굽다리 위에 붙은 모습으로 가야 토기 중 가장 많이 발견된 접시다. 굽다리 접시의 굽 부분의 구멍 모양이나 무늬에 따라 가야의 어느 지역에서 쓰였던 토기인지 알 수가 있을 만큼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지닌다.


긴목 항아리

뚜껑 있는 굽다리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손잡이가 있는 그릇(요즘 사용하는 머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붉은 간토기

붉은 간토기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가장 성행한 토기로 그릇 형태를 다 만든 후에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의 붉은 안료를 바르고 매끄러운 도구로 문질러서 소성한 토기를 말한다. 민무늬토기 형식의 하나로 무덤의 껴묻거리로서 출토된 예가 많아서 의례용기등의 특수용기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진주 대평리에서 발굴된 붉은 간토기다. 토기를 무척 좋아하면서도 자연발생적인 은은한 붉은빛이 아니라 안료를 사용한 붉은색이라 첫눈에 반한 토기는 아닌데, 홀로 떨어져 있는 전시효과 덕분인지 독보적인 카리스마가 있어서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다른 토기들에 비해 쉽게 성품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야말로 밀당하듯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드디어,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첫인상과는 달리 점점 안온한 기류가 흐른다. 바라볼수록 우아하고, 옹골찬 모습에 감춰 둔 촉촉하고 새초롬한 품성이 느껴진다. 단지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문득, 누군가 나를 판단할 때 혹은 내가 누군가를 대할 때, 지금처럼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마음을 썼을까... 과연 그랬을까... 조금 씁쓸해지는 마음은 접고 한 번 더 바라본다. 사물이나 풍경에도 성품이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며 박물관을 나왔다.



박물관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본 백일홍 꽃밭,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박물관을 나오니 아직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넓은 광장을 걷는데 뒷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보였다. 저기엔 뭐가 있으려나.. 야외 조형물도 하나 있고 산호처럼 생겼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평범한 '아왜나무'를 지나 경사진 길을 올라가며 약간 후회했다. 비는 점점 더 내리고 우산을 썼는데도 백팩과 발이 젖는다. 그만 내려갈까... 그러다 이 환한 꽃밭을 만났다. 조금 멀고 빗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색색으로 어우러져 피어있는 모양이 백일홍 같았다. 어릴 때 할머니의 꽃밭에도 있었는데 그땐 예쁜 줄 모르겠더니 무리 지어 핀 걸 몇 번 보고는 좋아하게 된 꽃이다. 박물관뒤의 백일홍, 모든 감각이 빠른 속도로 일상으로 돌아온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언젠가는 가려고 했던 빵집이 떠오른다.


#김덕규 과자점

숙소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에 내렸다. 빵집은 쉽게 찾아졌는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허.. 하며 웃고 말았다. 그리 넓지 않은 길을 사이에 두고 파리바게뜨와 마주 보고 있다. 그것도 조금쯤 비껴선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바로 코앞에서 맞짱을 뜨고 있다. 그만큼 자신 있고, 네 손님과 내 손님은 다르다는 자존감의 표현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즐거운 장면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경쾌하게 빵집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김덕규 베이커리'는 현지인 누구나 인정하는 김해의 대표 빵집이라고 한다. 경상남도에서는 최초로 제과제빵 부문에서 14번째로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된 김덕규 대표가 운영하는 35년 된 빵집이다. 매장은 김해시에 세 군데가 있고 내가 간 곳이 본점이었다. 크기를 막론하고 한국의 제과점들이 모두 그렇지만 맛있어 보이는 빵들이 너무 다양해서 선뜻 고르지 못하고 윈도우 쇼핑하듯이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오랜만에 슬금슬금 욕심을 부리는 빵순이의 본능을 다독거린다.



우선 샌드위치처럼 야채가 많이 든 버거와 한국에 와서 처음 이름을 알게 된 '소금빵'과 마늘빵 스틱을 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무 세련된 이름이라 난독증을 유발하는 폼나는 빵들에는 눈만 머물고 정작 집어드는 건 아주 고전적인 빵들이다. 옛날, 춘천의 거북당과 서울제과,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사던 빵들의 향수가 아직도 내 기억세포 어딘가에 잠복해 있나 보다. 찹쌀도넛, 꽈배기, 팥빵...


제법 묵직하게 빵이 담긴 예쁜 노란 종이봉투를 들고 나오는데 빵 먹을 생각에 이미 설렌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 먹을 빵을 고르기 위해 모두 꺼내놓았다. 내가 그리 감정이 단순한 사람은 아닌데 금세 행복해진다. 빵을 먹으며 점점 더 행복해지고 좋은 재료로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을 때의 기분을 느낀다. 맛있다. 모든 것이 더도 덜도 아닌 '딱 적당한' 맛이다.



참, 빵집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수퍼에서 파는 귤을 샀었다. 껍질이 푸르뎅뎅하고 알이 작아서 맛이 있으려나 싶으면서도 한국에 오면 양껏 먹고 싶었던 과일이 단감과 귤이라서 한 바구니 수북하게 담긴 것을 만원에 샀다. 숙소에 와서 세어보니 22개다. 많네. 겉으로는 놀고먹는 한가한 생활인데 꽤 고단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서 티비를 보면서 귤을 까먹었다. 어머, 깜짝이야! 왜 이렇게 맛있어? 맛있는 빵 덕분에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은 후라 더 그럴까? 구월에 먹는 귤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한 바구니 더 사 올걸 그랬다. 입속에서 달콤하게 터지는 과즙이 정신에도 튀었는지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가뿐해진다. 그래, 오늘은 네가 다 했다. 귤!



박물관에서 찍어 온 사진들을 정리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좋은 이유를 하나 꼽는다면, 나도 모르게 고정되었던 생각이나 취향에 대한 고집을 별 저항 없이 꺾는 경험을 하는 게 아닐까. 그리 좋아하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과 타협하며 나 자신과 조금쯤 타인이 된다. 그리고 내 일상으로 따라온 새롭게 사귄 낯선 것들이 체화되었을 때, 삶의 심지가 조금은 변하는 것이리라.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느끼게 될 일상과의 괴리 때문에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 삶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없다면 한시적인 떠남이나 쉼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오히려 자유롭고 좋았던 시간의 부작용으로 그런대로 유지하던 일상의 평정심에 금이나 가겠지. 그럼 더 힘들어지는 거야. 하지만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어떤 쉼, 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몇 번의 ''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엔 늘, 대충 꾸린 여행 가방 하나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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