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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08. 2024

그의 무릎을 펴주고 싶었다.

기덕도 유적지 _ 국립김해박물관(2)



머무는 동안 다른 관람객은 서너 명밖에 없어서 세세한 전시품은 물론 넓은 공간까지도 충분히 즐기느라 꽤 오래 머물렀다. 좀 더 가까이, 금동관을 한 번 더 보고 이제 박물관을 떠나려고 반대쪽 벽을 따라 나가는 중이었다. 순간, 한 발 내딛으려던 발이 허공에서 잠시 멈춘다. 갑자기 벽이 열린 것 같은 착시현상까지 살짝 느낀다. 신비롭다는, 평소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쩌면 어둠과 빛의 절묘한 대비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탁월한 전시기법에 감탄한다.



박물관 전체는 주제에 따라 각 전시실이 분리되었지만 동선은 열린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전시실은 큰 벽장 속 같았다. 마치 문을 열어두지 않으면 거기에 벽장이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는 비밀벽 너머의 공간같은 느낌이었다. 벽을 터놓은 입구도 그리 크지 않고 어두워서 늘 열려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은밀하다.



이곳은 부산 가덕도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모아놓은 방이다. 가덕도 유적은 한반도 최대의 신석기시대 공동묘지이며 당시의 장례풍습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다. 지질환경이 보존에 적합한 덕분에 무덤에 묻혀있던 48 개체의 인골이 잘 보존되어서 피장자의 머리가 주로 바다 쪽을 향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설명을 읽으며 바다를 좋아하는 여자는 이유도 모른 채 또 뭉클하다.



신석기시대의 피장자를  눕히는 방식은 '펴묻기'와 '굽혀묻기'로 구분되는데 대부분이 펴묻기였던 것에 비해 가덕도 무덤은 굽혀묻기가 많고, 성별을 확인한 18개체의 연령대는 20대에서 50대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묘지라고 추측한다. 키는 남성 평균 157센티, 여성은 146센티로. 현재 한국인의 평균 키에 비하면 남자는 15센티 정도, 여성은 14센티 정도 차이가 난다.


부산 가덕도 유적 29호 무덤의 굽혀묻기 방식의 인골


'굽혀묻기'로 묻힌 피장자 앞에 서서 나는 터무니없는 감정이입으로 옛사람의 인골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분명 삶도 그리 녹록하지 않았을 텐데 죽어서까지 편히 눕지 못하다니….


도대체 왜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묻었는지 설명이 없어서 따로 검색을 하다가 염습에 의한 것이란 걸 알았는데 그저 죽은 자를 위한 의례 절차로만 알았던 '염'에서 산자의 이기심을 보았다. 시신을 '굽혀묻기'로 하거나 펴묻기의 경우에 무거운 돌을 위에 얹어놓는 이유는, '사자의 복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튼튼한 삼베로 열두 마디를 묶는다는 현대의 염습이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전통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한쪽 벽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다양한 문양의 빗살무늬 토기의 조각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마 학교에서 배운 토기의 종류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토기가 빗살무늬토기일 것이다. 그래선지 마치 오래전 내가 사용했던 토기의 조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향수까지 느꼈다. 어쩌면 글을 쓸 때 꽤 여러 번,  '패총'이나 '빗살무늬'를 은유로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신석기시대 토기는 무늬에 따라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로 구분된다. 덧무늬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진흙 띠를 붙이거나 토기 겉면을 양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무늬를 만든 것이고, 빗살무늬 토기는 가는 빗 모양의 무늬새기개로 토기 겉면을 누르고 찍거나 긁어서 무늬를 만든 토기다. 빗살 무늬의 토기는 토기의 강도를 높이는 역할도 하고, 토기의 부위별로 다른 무늬를 넣어서 미적 표현의 다양성을 시도했다.



전시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벽면에는 가덕도 유적에서 출토된 바리, 항아리, 토기편 등이 놓여있다. 옛것이든 내 정원의 것이든 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상하게 여긴 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좀 전까지 무척 많은 갖가지 모양의 토기를 보고 온 참이었다. 어떤 것들은 크고 웅장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작고 투박한, 깨진 토기들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잠시 눈을 감기는 했다.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오래된 바람이 불고

언덕의 풀들이 눕는 소리가 들리고

파도가 하얀 이마를 드러내며 다가선다.

나도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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