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외과의사 Feb 23. 2024

자기계발은 삶을 바꿔줄까

의도치 않게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의 대부분, 한 달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다 갑자기 공백이 찾아왔다. 이 공백이 답답한 이유는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불확실성으로 인해 온전히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할 수 있는 건 뜸했던 독서를 다시 하고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사실 최근 독서와 자기계발보다 관심을 두었던 건 '일'이었다. 일이 재밌었다. 수술 테크닉이 조금씩 늘어감을 체감하고 있었고, 이제 전문 수술 분야가 생긴다는 설렘이 있었다. 전문의 시험도 무사히 통과했다. 대학원 졸업 논문은 새로 시작하는 이식외과에서 쓸 생각이었다. 여전히 바쁘고 몸이 편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전문성을 쌓아갈 수 있는 기대가 더욱 컸다.

2024년은 수술을 익히고, 내 것으로 만들면서 전문가가 는 시기여야 했다. 자연스레 자기계발의 우선순위는 점차 뒤로 밀려났다. 4년간 운영해 왔던 건습만과 독서모임을 종료한 배경도 이와 같은 생각에서 기인했다.


생각해 보면 자기계발은 결과물이 명확하지 않았다. 자기계발의 범위 또한 특정 지어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자기계발을 다년간 했다고 자부해 왔지만, 처음으로 '자기계발'이란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Chat GPT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자기계발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도록 노력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지적인 측면에서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요즘 날이 갈수록 내용이 풍부해지는 나무위키에서 언급한 자기계발은 다음과 같다.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움


결국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어떠한 기술이 자기계발이었다. 그 방법으로는 독서, 명상, 강연, 모임, 운동 등 다양했다. 모두 다 해본 것들이었다. 20살 때 자기계발서를 100권 읽으면 삶이 바뀐다는 구절을 읽곤 거의 편식을 하다시피 읽었다. 100권 아닌 지난 10년간 몇백 권을 읽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세미나와 온라인 강의를 듣기도 했다. 꾸준히 운동을 해온 지는 13년, 매일 아침 이불을 갠 지는 5년째다.


그래서 삶이 바뀌었느냐. 앞서 말했듯 결과물은 명확하지 않다. 눈에 바로 보이는 결과물 정도는 브런치 자기계발 크리에이터 배지 정도일까. 자조적인 자기계발에 대한 생각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달라졌다. 예상치 않은 시기에 백수가 되고, 면허가 박탈되고, 10년간 공부해 온 의학을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잠식할 때. 그간의 자기계발이 빛을 발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하고, 현재 가진 상황에 감사했다. 꾸준히 하던 운동과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배움을 지속하려 예전에 구매했던 강의를 들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인 습관들이 불안한 시기에  '나'를 유지해 주었다.


삶이 평안할 때는 자기계발에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이 평안하지 못할 때 그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닌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자기계발이었다. 주변 상황이 달라지고, 뜻하지 않은 일들이 주어지더라도 온전한 나로 남게끔 해주었다.




이틀 전 읽은 심플하게 산다(도미니크 로로)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 눈에 들어온 구절이다.

산다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며 이 기술은 노력 없이 얻을 수 없다.


어쩌면 일은 성과가 있고, 돈이라는 명확한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삶의 기술이다. 하지만 일만큼 중요한 삶의 기술은 세상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자신을 계발하는 능력일 수도 있겠다.


(하루빨리 상황이 해결되고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첫 뉴욕 방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