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법칙 - 로버트 그린
누군가 본인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본인이 누구인지를 넘어 심지어 숨겨진 노력까지 알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알아줄 수는 없다. 타인이 내가 아닌 이상 내가 알아주길 원하는 모습만 바라봐 줄 수 없고, 여기까지 오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얼마나 갖은 고초를 겪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람은 생색을 내고, 간만에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토록 장황한 말을 쏟아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생색은 나의 장기이자 특기였다. 더불어 인정욕이란 태초의 욕구였다. 마치 태어나면서 내뱉은 울음소리를 나의 탄생을 알아달라는 욕구라 간주할 수도 있다. 생색, 또는 인정욕이란 은근하게 드러내야 하는 개념이건만 가까운 사람이라면 직접적으로 드러내야 제맛이다.
"이만큼 돈을 벌기 위해 지난 5년간 해마다 100권씩의 투자서적을 읽었다."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투잡을 뛰었다."
"오늘 강연을 위해 한 달간을 고민하고 밤새워 준비했다."
이와 같이 결과에 더불어 그 이면의 노력을 듣고 나면 그 사람의 성실함과 우직함에 사람이 더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권력의 48가지 법칙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내용이 있었다.
권력의 법칙 17. "별다른 노력 없이 성과를 달성한 척하라."
당신도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무대 위에 오르기 전에 끝없이 연습하고 연구해야 한다. 침착한 모습 뒤에 숨겨진 땀과 노력을 드러내지 말라. 그것을 드러내면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더 약한 존재로 비칠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연습하고 노력하면 당신처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이 흘림 땀과 당신의 비결을 감추어라. 그러면 신과 같은 고상함과 평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인간은 신이 가진 힘의 원천을 결코 볼 수 없다. 단지 그 결과만을 볼 뿐이다.
결과의 이면에 있는 과정을 오롯이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인간은 타인의 성취에 대해선 결과물만 보는 특성을 지닌다. 사실 돌이켜보면 어떤 일을 끝낸 후 과정에 대해 더 장황하게 말했던 순간은, 그 결과물에 자신이 없던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없었던 나의 상황을 참작해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인 나의 노력을 참작해 줘서, 이 결과물을 더 좋게 봐달라는 숨은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결과에 자신이 있고 그 과정에 진심으로 인한 사람은 오히려 말이 없다. 과정에 진심을 다하고, 결과는 침묵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고상함과 평정을 가진 신처럼 보여라.
스프레차투라는 어려운 것을 쉽게 한 듯이 보이는 능력을 말한다.
궁정 신하는 뭐든지 태연하게 행동하도록 연습함으로써, 예술적 기교를 감추고 말과 행동이 꾸며냈거나 공들여 만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범상치 않은 재주를 보면 찬탄을 보낸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우아하면 그 찬탄은 열 배로 늘어난다. 반면 힘들게 일을 행하고 그것에 계속 신경 쓰는 것은 우아함과 기품이 없어 보이며 그가 어떤 일을 행하든 무시하게 된다.
태연하게 대단한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처럼 여겨진다. 반면 힘겹게 지친 기색을 한없이 보이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은 주변 어디에나 있다. 스프레차투라란 인간의 아우라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기법이었다.
그들이 애쓰는 모습을 보면 환상이 깨지고 불편한 기분이 든다. 반면 침착하고 우아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편안하게 느낀다. 마지막으로 우아하고 수월하게 일을 해낸 것처럼 비치면, 사람들은 당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엄청난 일을 해낼 거라고 믿는다.
타인을 볼 때 편안함을 느끼기 위한 중요한 요소는 자연스러움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이 자연스러울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반면 힘겨움을 딛고 나아가는 사람을 볼 때 대단한 감정을 느낄 순 있지만 안쓰러움과 조금의 불편한 감정도 동반된다. 나의 입장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느낌을 인지한다면 내가 행동해야 할 방법을 깨칠 수 있다. 다만 깨달음과 실천 사이는 그 괴리가 상당하다.
장기이자 특기였던 나의 생색을 더는 낼 필요가 없었다. 조금 더 말수를 줄이고, 태연, 태평한척하면 그만이다. 과정은 나만 알아주면 되는 것이었고, 결과물은 타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 오히려 나의 손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개념이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 성과를 달성한 척하라는 말 이면에는 본인의 진심 어린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진심을 다한 노력 이후에 그 노력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단 말임과 동시에 항상 잘하는 사람인 척 하란 얘기가 아니었다.
진정한 고상함은 ‘감추는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평정’에서 비롯된다. 생색은 타인의 시선에 나를 의탁하려는 본능이고, 침묵은 스스로의 가치를 믿는 신념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증명보다 존재 그대로의 나를 지향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