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딜레마를 겪는 우리들에게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고슴도치 딜레마가 더욱 떠오르는 요즘이다.
추운 날씨, 옹기종기 몸을 녹이고자 모여든 고슴도치들은 너무 가까이 모여들면 옆 친구의 가시에 찔린다. 몸을 녹이고자 하는 욕구와 가시에 찔리는 상처를 피하는 두 가지 상황에 딜레마를 겪는 고슴도치들은, 서로 견딜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유례없는 전염병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서로 견딜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사도 고슴도치 딜레마와 다르지 않다. 사회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 장기화되며, 멀어지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만은 아니다. 나와의 관계와도 멀어지고 있다.
인생은 정반합의 연속임을 우리 모두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正, 나라는 존재를 알고, 나의 취향을 알고, 나의 생각과 느낌을 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순류를 유지하려 한다. 反, 나와 다른, 세상의 자극을 받는다. 이 자극은 역류를 일으키며 우리에게 쾌감을 주기도,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이 자극에 취하려고하거나 스스로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불쾌감을 주는 것일지라도) 이러한 자극에는 책, 음악, 시, 여행 등과 같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들 혹은 킬링타임용 유튜브 영상들, 게으름, 피해의식 등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이 중 가장 유익하고 깊은 자극을 주는 것은 ‘타인’이다. 옳은 사람, 그른 사람은 없다. 나와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아니, 세상사람들을 두 가지로도 분류할 수 없다. 나와 취향 대부분이 맞는 사람, 대개의 것이 맞는 사람, 별로 맞지는 않지만 마음이 가는 사람 등, 세상이 울퉁불퉁한만큼 사람도 딱딱하게 나눌 수 없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 경험의 넓이와 폭이 클수록 깨달음을 준다.
合, 나와는 다르다는 자극은 역류를 일으키며 새로운 순류, 새로운 방향, 새로운 나를 모색하게 한다. 역류는 깨달음을 주며 동시에 지혜를 준다. 그것은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리게 되어도, 상대 또한 체온을 유지하고자 했던 선의였다는 것, 나와 다르지않은 동기를 가졌다는 걸 알기에 상대를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옹기종기 모일 고슴도치를 찾고, 그와 체온을 나누고, 어쩌다 가시에 찔리고, 이제는 너무 아파 다른 고슴도치를 찾으려 마음 먹는 것 모두 나의 책임이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反의 자극이 부재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正을 유지하기가 쉬워진다. 자신의 순류를 개발하고 그것을 고수하는 것은 건강한 일이나, 이것이 길어지면 ‘나만 옳다’라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타인을 이해하고 열린마음을 갖는 것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빈자와 부자,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 등 소통이 결여되고 각 집단이 고립되는 사회를 주의해야 한다. 나의 正이 合이 아님을 알고, 깨어나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