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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Jyeoni Park Jul 22. 2023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 감포

경주 2편

"그만 자고 일어나."

J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몇 시야?"

"10시."

8시에 일어나기로 해놓고선 10시까지 단잠을 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준비를 서둘렀다. 

감포 바닷가에 가는 날, 다행히 먹구름이 가시고 푸르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행 내내 날씨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모자도 안 챙겨 왔는데 햇볕이 뒷목을 쪼아 댔다. 마침 버스도 삼십 분 후에나 온다니 다이소에서 모자 하나씩 장만하기로 했다.

산악 모자를 조여 쓰고 정류장에 나가니 버스는 이미 지나가고 없었다. 다음 버스까지는 삼십 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니 J와 난 망연자실 하여 정류장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 들어왔다 빠지기를 여러 번, 모퉁이를 돌아오는 102 버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우린 반가움에 벌떡 일어섰다.

감포까지 버스로 1시간. 분황사 석탑부터 엑스포공원, 경주월드까지 구경을 시켜준 버스는 산을 타기 시작했다. 흔들거리는 버스 창밖으로 녹음이 우거진 산 풍경이 이어지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스르륵 눈이 감겼다.

"바다다."

눈을 떠보니 잔잔히 빛나는 바다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낌새를 챈 J도 게슴츠레 눈을 떴다. 우린 조용한 어느 바닷가 마을 정류장에 내렸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밥부터 먹기로 했다. 드르륵 문을 열자 할머니집 같이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손님은 구석 테이블에 동네 할아버지 두 분 뿐이었고 그 뒤에 놓인 텔레비전에는 선덕여왕 드라마가 한창이었다. 메뉴는 백반 정식 하나. 주인아주머니는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시고 주방에서 쟁반에 반찬을 가득 올리기 시작하셨다. 어촌마을답게 반찬은 바다에서 얻은 것들이 많았다. 그중 특히 새우장은 밥도둑이어서 포장해 오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속에만 안 들어갔다면 밥 한 그릇 더 먹었을 거야."

J가 식당을 나오며 말했다. 이에 나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화장실에 들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피부가 보이는 곳이라면 하얗게 선크림을 칠했다. 나무계단을 오르니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한가득 담겼다. 구름이 몽글한 하늘 아래 푸른 바닷가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한대 모여 있고 그 위로 경사져 지어진 집들이 보였다. 지브리 만화에서나 보던 감성이었다.

송대말등대 아래 바다

송대말등대에 이르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멘트로 경계가 지어진 바닷가 수영장이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양식장으로 쓰였다던 그곳에는 칸칸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차 있었다. 우리도 그 속으로 뛰어들어 보겠다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사실 계단이라기 보단 절벽 타기에 가까웠으므로 짐을 한 손에 들고 가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나와 J는 바위틈에 짐을 놓아두고 이번 물놀이를 위해 장만한 스노클링 용품을 꺼냈다. 물안경을 낀 서로의 모습이 우스워 보이면서도 생각보다 깊어 보이는 물에 살짝 몸이 굳었다. 외줄 타기 하듯 통로를 지나 입구 쪽 칸에 손을 담가 보았다. 차가움과 동시에 발이 닿지 않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긴 아닌 것 같아."

우린 발을 뒤로 물렸고 다른 칸에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 칸을 가던지 겨울 바다만큼이나 차가운 수온에 깊이는 아득했다. 물놀이에 대한 기대감은 한순간 공포로 바뀌어 다리가 덜덜 떨렸다.

"다른 데를 찾아보자."

우리는 도망 나오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절벽이 아닌 모래사장부터 시작하는 해변가를 찾아 좀 더 걸었다. 좁은 동네 길을 타고 내려가자 해변가가 나타났다. 우린 입을 모아 '바로 여기다' 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다소 사나운 파도에 휘청거리다 바닥에 깔린 돌들에 살이 여러 번 쓸렸다. 차가운 건 아까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린 발이 닿는다는 기쁨 만으로 정신없이 얼굴을 물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맑은 물결을 타고 송사리들이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고 해초들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다 나는 이내 추위를 견디지 못해 볕으로 나와 앉았다. 하지만 J는 한 참을 더 물속에서 놀았고 그 모습이 꼭 물 만난 물개 같았다.

물놀이를 마치고 우린 아까 내렸던 버스정류장 근처 동네 목욕탕에 들러 짠물을 씻어냈다. 그리고 세명 남짓 들어갈 만한 온탕에 몸을 담갔다. 찬 바닷물에 언 몸이 스르륵 녹아내리고 긴장이 풀렸다. 여행이 완벽해지는 순간이었다.

목욕탕을 나오니 불어오는 바람이 살결에 시원하게 닿았다. 상쾌함에 발걸음이 가벼워져서는 근처 꽈배기 집에 들러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리고 또 1시간의 버스여행. 노곤한 기분에 고개는 절로 숙여지고 창문에 머리를 여러 번 박으면서도 경주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억지로라도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이 짙어져 갔다.



여행영상

우여곡절 감포에서 물놀이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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