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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Apr 29. 2023

'결단을 내리다'라는 말의 오류

사람은 하루에도 100개가 넘는 의사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두 개나 선택을 했다.

1. 일어날지 아니면 주말이니 주말답게 더 이불속에 있을지

=>  일어나자를 선택

2. 책을 이불속에서 볼 지 책 상 위에서 볼 지

=> 책상 위를 선택


그러나 어제부터 읽고 있는 책 '클루지'를 보지 않았다면 난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선 1번 선택에서 '주말이니 주말답게'라는

합리화를 선택 앞에 붙여놓고 있었다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는다'이 두 가지 선택을 두고 공평하게 고민한 것 같지만 실은 이미 기울인 마음가짐 속에서 일어날지 말지를 고민한 것이었다.


다행히 책 '클루지'를 통해 평소 같았으면 보지 못했을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내 모습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은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

결국 인생이라는 긴 시간에 대비시켜도 마찬가지다.

 [의사결정의 결정체가 현재 내 모습이다.]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이,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책을 읽고 반성을 하고 새로운 결단을 내리기를 무한반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까지 만이었다

결단까지만 내리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정말 반이라도 온 것처럼 지쳐 행동하지는 않았다.


왜? 나의 결단이 행동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읽고 > 반성하고 > 결단 내리고

이 세 가지 트랙 위에서 돌기만 했는지...

그 답을 오늘 아침에서야 찾았다.

나도 모르게 내 의식 속에서 품고 산 '결단을 내리다'라는 말의 오류 때문이었다.

'결론을 내리다'라는 말의 소리처럼

뭔가를 내려버리면 ~ 정말이지 반쯤이라도 뭔가 해낸 것 같은 착각의 오류 그래서 반이라도 했으니 하는 안도의 오류. 가 내 안에서 머문 것이었다.


결단은 내리는 게 아니라 '결단'은 '잘라야'했다.

변화되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한 행동들.

그 행동들을 알아차린 지점에서

편히 내려놓는 게 아니라 과감히 잘라서 나로부터 '단절' 시키는 게 실은 '결단을 내리다'의 말의 의미였던 것이다.



엄마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포도나무의 순을 꺾어 버리곤 했다.

포도나무가 튼튼하게 그리고 포도가 맛있게 성장하는데 방해되는 그래서 제거해야만 하는 포도나무의 순들이라 했다.

이 순들은 무척이나 귀찮고 질겼다.

한 번에 제거되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짧게는 일주일, 길어봤자 이주일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그 순들을 제거해 나갔다

그러다 보면 더는 나쁜 순들은 나오지 않았고 엄마도 멈췄다.



결단!

내리는 게 아니라 자르는 거였다.

포도나무의 성장에 불필요했던 '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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