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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Apr 29. 2023

치안에도 레시피가 있다면...

후배가 딸기청을 만들어서 주었다.

넉넉히 4인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소문난 고깃집 1인분 <180g>이라는 평균적 양이 무의미하듯

맛있는 딸기청의 평균적 4인분의 양은 무의미했다.   

식탐에 아들 줄 것조차 남기지도 않고 혼자 홀라당 다 먹고 나니 미안해졌다.


그래서 딸기를 3박스나 샀다.

딸기청을 왕창 만들어 실컷 먹겠다는 결심에!. 

그런데 난 딸기청을 사 먹어만 봤지 손수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딸기청 만드는 방법을 아예 모른다. 그렇다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딸기청 만들기' 여섯 자만 써서 챗봇에게 물으면 된다.

딸기청은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인 음료수입니다. 딸기청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료]

- 딸기 300g

- 설탕 200g

- 물 1L

- 레몬즙 1T

[만드는 방법]

- 길어서 인용을 생략하겠다.

[기타]

딸기청은 물 대신 탄산수와 섞어서 먹으면 청량감이 더해져 맛있습니다.

또한 아이스크림과 함께 즐겨도 맛있으니 한번 만들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하고 챗봇은 레시피는 물론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모두 다 알려준다.


난 챗봇뿐 아니라 각종 지식in들 덕분에 

그 어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에도 거부감이 없다.

더 이상 며느리도 모르는 떡볶이 비법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며느리 입장에서도 시어머니보다는 챗봇이 더 편하고 좋을 테니 말이다.

챗봇이 가르쳐주는 데로 정확히 용량을 재어서 만든 딸기청의 맛은 성공적이었다.




문득, 내가 일하는 현장에도 '레시피' 같은 '매뉴얼'이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다양한 루트로 마약에 대한 진입장벽도 약해졌고 마약을 접하는 나이도 어려졌다.

언론은 한국은 마약청정국에서 위험국이 되어 버렸다는 기사를 연일 쏟아낸다. 

경찰은 1.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고)  2.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지키는) 일을 한다.

무엇으로부터 1. 범죄로부터 2. 위협으로부터 3. 재난으로부터 사회와 국민들을 지켜낸다.

이번에는 그 무엇 중에서도 '마약'이다.

모든 범죄가 그러하듯 발생하고 나면 아무리 범인을 검거한다 해도 그 피해를 온전히 회복시킬 순 없다.

피해 이전의 모습으로 온전히 되돌려 놓을 수 없기 때문에 '검거'에 앞서 '예방'이 중요하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마약은 그 중독성으로 인해 단 한 번이라도 접하게 해서는 안 되는.  예방만이 국민을 지켜낼 수 있다.

그런데 '마약예방' 레시피가 없다.

당장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선까지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끄럽지만 모르겠다. 

교육으로 도리어 모방범죄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고 또 반대로 교육을 하지 않아 가르쳐 주지 않아 몰라서 당하는 피해자가 생기지는 않을지 우려가 된다. 

초등학생에게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고 중학생에게는 고등학생에게는 또 어떻게 어느 선까지 알려주고 막아야 할지. 정말이지 그 경계선에 대한 판단조차 어렵다.


현장에는 수많은 매뉴얼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모든 걸 매뉴얼에 담을 수 없는 살아 움직이는 현장은 

그때그때의 '현장의 합리적 판단'만이 남는다.


'합리적 판단' 

인간 자체를 '불완전하다'라고 규정지으면서 이게 과연 가능한 주문일까? 화가 나고 의심이 든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내지 심리학적 원론까지 파고들기 이전에 나는 현장경찰관이다.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지닌 경찰관이다.

그래서 '합리적 판단'이라는 그려지지도 않는 추상적인 말 대신 '지키는 판단'으로 바꾸어본다.


'합리적' 보다는 조금 쉬워진다.

- '지킨다' 생각하니, 우선 옆에 있어 주어야 할 것 같다.

- '지킨다' 생각하니, 범죄 수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위협해 오는지 알려줘야 할 것 같다.

- '지킨다' 생각하니, 만일 피해를 입으면 즉각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려줘야 할 것 같다.

- '지킨다' 생각하니, 생각하니, 생각하니... 비록 하나씩이지만 방법이 꾸물꾸물 거리는 것 같다.


국민을 지키는 레시피(?)... 가 있다면... 

주말인 오늘도 현장에서 '합리적 판단'과 분투하고 있을 우리 경찰관들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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