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우리 중학교는 어느 대학 사범대학 소속의 부설학교였기에, 매년 교생 선생님들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었다. 당시엔 그들이 꽤 어른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의 대리급 선배들과 비슷한 또래였을 것이다.
교생 선생님들은 보통 수업 시간에 뒤편에 서 있거나,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 수업쯤엔 교생 선생님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교사인 듯, 아닌 듯한 애매한 위치. 그 낯선 느낌이 당시 우리에겐 무척 신기하게 다가왔다.
중학생 특유의 장난기와 관심이 섞여, 교생 선생님은 친해지고 싶은 ‘탐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나 역시 슬리퍼를 몰래 뺏어 도망쳤다가 되돌려드리는 식의 장난을 치기도 했다. 다들 교생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처럼 굴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허용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냥 좋게만 흘러가진 않았다. 한 번은 교생 선생님의 수업이 흐트러지자 이를 지켜보던 정규 남자 선생님이 화를 참지 못하고 학생들 전체 허벅지를 때린 적도 있었다. 며칠간 멍이 가시지 않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사생대회에 함께 참여해 올림픽공원에서 그림을 그렸던 기억도 또렷하다. 나는 특히 한 여고생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것저것 질문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정작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 걸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건 분명하다.
교생 기간이 끝날 무렵, 선생님들은 우리 모두에게 손 편지를 한 장씩 써주었다. 그 편지는 꽤 오래도록 간직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내가 대학에 합격한 후 연락이 닿아 그 선생님을 다시 뵐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결국 학교 교사가 아닌, 의사가 되어 있었다. 공부를 잘하시는 것은 알았지만 놀랐었고 더 멋지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