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기원과 기능
1장에서 우리는 ‘우주의 관찰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관조적이지 않습니다. 매일 쌓여가는 일과 피로, 타인과의 갈등, 억울함, 실패—삶은 잦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 모든 고통을 단지 ‘경험해야 할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고통의 이유를 알기 위해선 우선 고통 그 자체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고통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적, 심리적으로 아프거나 괴로운 상태', 즉 통증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육체적 통증은 신체 어딘가가 손상되거나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신경이 과도하게 자극된 상태이며, 이는 위험으로 벗어나기 위한, 다른 말로는 생존을 위한 알람으로 작용합니다. 통각이 없으면 생명을 빠르게 위기에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은 매번 자신의 몸을 살피지 않으면 상처투성이가 되고 맙니다.
찰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설에 따라 통증을 느끼는 생물들이 상대적으로 생존에 유리하여 살아남았을 것이고, 그 덕분에 민감한 형질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즉, 통증이자 고통을 느끼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진화의 산물입니다.
심리적 고통 또한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지인이 죽었을 때, 조직에서 따돌림을 받을 때, 외로울 때, 혹은 고백을 거절당했을 때 등 느껴지는 슬픔과 고통은 모두 신체적으로 느끼는 통각과 같은 기능을 수행합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사회를 형성한 순간부터, 타인에게 외면받는 일은 곧 생존의 위협으로 작용했습니다. 버림받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던 시대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미움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배척받을만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생존하기 어려워 자신의 특성을 후세에 전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고통은 생존을 위협하는 ‘결핍’을 감지하는 생물학적 시스템의 출력입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부족하거나 위협받을 때, 고통은 그것을 인식하고 회피하도록 유도합니다.
고통이 결핍에서 비롯된다면, 무엇이 결핍되는 것일까요? 바로 인간의 ‘욕구’입니다. 1943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욕구계층이론"을 주장하여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눴고, 이후에는 3가지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계층은 다소 경직돼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 분류 자체는 여전히 유용한 틀을 제공합니다.
매슬로의 욕구 8단계 이론
1. 생리적 욕구: 산소, 음식, 수면, 의복, 주거 등 삶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욕구
2. 안전 욕구: 신체의 위험과 생리적 욕구의 박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욕구
3. 소속감 및 애정 욕구: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4. 존중 욕구: 내적 외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어떤 지위를 확보하기를 원하는 욕구
5. 인지적 욕구: 지식과 기술, 주변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의 욕구
6. 심미적 욕구: 질서와 안정을 바라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
7. 자아실현 욕구: 자기 발전을 위하여 잠재력을 극대화, 자기의 완성을 바라는 욕구
8. 자아초월 욕구: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타적인 욕구
이를 기능 중심으로 재구성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생존 욕구**: 음식, 주거, 안전, 생리적 안정(1,2번)
2. **사회적 유대 욕구**: 소속감, 사랑, 타인의 인정(3,4번)
3. **자극 욕구**: 탐험, 창조, 학습, 의미 추구(5,6,7,8번)
생존과 사회적 유대는 본능에 가깝습니다. 신체적 안정을 확보하고 무리 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욕구는 모두 생존 전략입니다. 그러나 자극을 갈망하는 욕구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 인간은 새로운 것을 갈구할까요? 어떻게 보면 루틴하고 안전한 삶에 머무르는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시 시대에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존재 또한 도태의 대상이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호기심과 탐색욕, 그리고 유연한 적응력이 필요했으며 이러한 특성을 가진 개체들은 살아남아 오늘날 인간의 보편적 욕구로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고통 자체를 배제시킬 수는 없습니다. 고통은 생존에 필수적인 시스템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반응을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고통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한다 하여도 자기 파멸적입니다. 오히려 고통은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며, 생존과 성장의 조건을 점검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욕구를 인식하고, 감정을 관찰하고, 결핍을 해석하는 관찰자의 위치에 설 때, 우리는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평온에 가까워집니다. 고통은 우주의 가혹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질서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그 신호를 읽고 해석할 수 있을 때, 삶은 덜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