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적 우주관 속 삶의 관점
앞선 장에서는 우주의 구성과 작동 원리, 그리고 그 속에서 모든 현상이 필연적으로 전개된다는 결정론적 해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러한 세계관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적어보겠습니다. 더불어, 결정론이 틀렸다 해도 우리의 삶의 방식은 실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결정론에 따르면, 이 우주는 탄생의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 나아가 마지막의 순간까지 모든 상태가 인과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인간의 삶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선택조차 물리 법칙의 필연적 결과라고 말합니다.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란 결국 착각일 뿐입니다. 이러한 전제는 “그렇다면 노력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회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결정론을 오해한 데서 비롯됩니다.
결정론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우주의 구조를 설명할 뿐, 인간의 인식 능력을 확장해주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떤 궤도를 따라 전개될지 알 수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 주변 환경과 경험, 조건들을 조합하여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미래는 인간에게는 항상 예측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즉, 결정론은 예지와는 다릅니다.
설령 이 세계의 모든 입자의 상태를 계산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 해도, 그 기계 또한 우주의 일부이므로 그 자신을 계산 속에 포함시켜야 하고, 이는 논리적 순환과 불확실성을 발생시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인지 가능한 정보에는 한계가 있고, 이 때문에 미래는 우리에게 있어 늘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를 추정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결정론이 삶의 가치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자책과 강박에서 해방시켜 평온감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건이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실패나 고통을 자책할 이유가 없습니다. 취업 실패도, 인간관계의 충돌도, 예상치 못한 병도—그 무엇도 ‘내 잘못’은 아닙니다. 그것은 정해진 궤도의 일부이며, 마치 사과가 떨어지고 비가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관점은 삶을 하나의 '영화'처럼 바라보게 합니다. 영화는 이미 결말이 정해진 서사입니다. 등장인물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움직임과 감정은 이미 시나리오에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관객인 우리는 그 결말을 알 수 없기에 이야기에 몰입합니다. 결정론적 우주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또한 우주의 법칙에 따라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되, 스스로는 그 내용을 모릅니다. 그렇기에 삶을 ‘감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이 감상자의 위치가 바로 결정론이 허락하는 인간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행동을 자연 현상과 동일선상에 놓습니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고나 행동 또한 연속되는 인과의 굴레 속에서 발현된 자연 현상입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이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 이러한 행위들이 그저 물리적 작용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를 더욱 평온하게 만듭니다.
결정론적 관점은 자유의지를 부정하기 때문에 도덕을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각종 범죄, 예로 살인이나 사기, 폭력 등을 그저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와 동일하다며 합리화할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도덕의 기능이나 인간의 인식 범위에 대한 인식 부족과 인과론적 설명만에 집중하여 생긴 혼동입니다.
결정론은 인과론적인 측면을 설명할 뿐, 인간들이 스스로 내세운 규범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사회는 구성원 간의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위해 도덕과 법을 필요로 하며, 이는 유지되어야 할 합리적 구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결정론은 그저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와 감정의 무게 중심을 바꾸는 도구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결정론은 죄책감의 감정 구조를 재해석하는 것이지, 제재와 책임의 사회적 기능을 무력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서 이어지는 장들에서 도덕과 윤리의 필요성도 논의할 것입니다. 지금은 단지 암의 사실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결정론은 도덕의 부정이 아니라, 감정의 과잉에서 벗어나기 위한 관찰자의 위치를 제안하는 철학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의 상당수는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무언가를 놓쳤다”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애초에 그것이 통제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자아 붕괴의 위험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통제의 환상을 내려놓을수록 오히려 평정에 가까워집니다.
만약 이 우주가 완전히 결정론적이지 않고,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처럼 확률에 기반한 우연성의 지배를 받는다면 어떨까요? 이 경우에도 우리의 삶은 실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확률’ 역시 나의 의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연성 역시 통제 불가능하며, 인간의 선택은 여전히 조건과 구조의 산물입니다. 이때 자유의지는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가 아니라,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고 믿는 착각’ 일뿐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여전히 자연법칙과 조건의 연산 결과일 뿐입니다. 그 연산이 결정이든 확률이든, 우리는 그 안에서 지금 가능한 최선의 행동을 선택할 뿐입니다.
우리는 결국 이 세계를 설명 가능한 구조로 이해하려는 존재입니다. 그 구조가 결정적이든 확률적이든, 인간은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조건들과 감각된 환경, 축적된 경험을 기반으로, 지금 가장 ‘그럴듯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관찰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며, 이는 결정론이든 아니든 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