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Zeroing 03화

1.2 불확실성 속의 필연

양자역학 속 결정론

by 허지현

앞선 장에서 살펴본 결정론은 19세기까지 과학의 세계관을 지배하던 중심 철학이었습니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자연을 철저히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우주로 규정했고, 라플라스는 우주의 모든 입자들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안다면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절대 질서에 대한 신념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사고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 인류가 미시 세계로 눈을 돌리면서 이 확신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불확실성과 확률, 그리고 기존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자외선 파탄과 흑체복사


19세기말, 전기의 대중화와 함께 전구의 기능 향상을 위해 열복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 때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확인되는데, 다양한 금속을 가열하며 방출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측정한 결과, 온도가 50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어떤 물질이든 유사한 패턴의 복사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키르히호프는 이 현상을 보고 ‘흑체’(black body)라는 이상적 물체를 가정하였고, 흑체복사의 세기는 오직 온도와 파장에만 의존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흑체가 방출하는 복사의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이론을 제시했고, 그중 하나가 ‘레일리-진스 법칙’이었습니다. 이 이론은 짧은 파장의 자외선 영역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예측했으나, 이는 실험 결과와 상반된 설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 불렸으며, 고전 물리학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EA%B7%B8%EB%A6%BC1.png?type=w420 레일리 진스 법칙과 실제 실험 결과가 상이함

막스 플랑크와 양자화


1900년, 막스 플랑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가정을 도입합니다. 그는 기존 고전역학이 주장하대로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방출되지 않으며 일정한 최소 단위, 즉 ’ 양자(Quantum)’ 단위로 나뉘어 방출된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는 에너지와 주파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간단한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E = hf

(E: 에너지, f: 주파수, h: 플랑크 상수)


이 모델에서는 고에너지 영역으로 갈수록 해당 에너지를 가지는 입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자외선 영역에서의 무한 에너지 예측이 제거됩니다. 이 양자 가정은 흑체 복사 곡선을 실험과 정확히 일치시켜 자외선 파탄을 정확히 설명해 냈고, 마침내 흑체복사의 스펙트럼을 이론적으로 완벽히 재현해 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와 빛의 입자성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아이디어를 한걸음 더 발전시켜 빛 또한 연속적인 파동이 아니라 개별적인 입자, 즉 ‘광자(Photon)’처럼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가설은 광전효과를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강한 빛이라도 주파수가 낮으면 금속에서 전자가 방출되지 않지만, 충분히 높은 주파수의 빛은 매우 약한 세기라도 전자를 튀어나오게 합니다. 이는 빛이 일정 에너지 이상의 입자 형태(광자)로 작용해야 전자를 이탈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빛의 이중성을 시사합니다.


보어의 수소 원자 모형


닐스 보어는 수소 원자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마치 행성처럼 돌고 있다고 가정했으며 이를 도식화해 보어 모형(Bohr model)으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전자기학에 따르면, 전자가 가속 운동을 하게 되면 전자기 복사가 일어납니다. 그렇기에 고전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결국 원자핵으로 붕괴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고전역학의 관점에서 수소 원자는 존재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Bohr-atom-animation.gif 보어의 수소 원자 모형

그러나 실제 자연에서는 수소 원자는 안정적으로 존재합니다. 태양의 대부분이 수소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수십억 년 동안 중성자별로 붕괴하지 않은 것도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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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와 관련하여 고전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바가 있었으니 바로 선 스펙트럼입니다. 특정 원소들은 일정 파장을 가진 빛들을 흡수하며, 반대로 높은 에너지를 받게 되면 동일한 파장의 빛을 분출시키며 선 스펙트럼을 보이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보어는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가정을 제시합니다:

1. 전자는 특정한 불연속적인, 즉 이산적인 궤도(에너지 준위)만을 가질 수 있다.

2. 이 궤도 내에서는 전자기 복사를 하지 않는다.(에너지 방출을 하지 않는다)

3. 전자는 궤도 사이를 이동할 때만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양자 도약)


이러한 전제는 수소의 선 스펙트럼과 구조를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왜’ 그러한 궤도만 가능한지에 대한 물리적인 설명은 부족했습니다.


전자의 파동성과 정상파


이 의문점에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이 루이 드 브로이입니다. 그는 빛이 입자성과 파동성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가졌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반대로 입자로 구성된 물질도 파동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는 전자의 운동량에 대응하는 물질파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λ = h/p

(λ: 파장, h: 플랑크 상수, p: 운동량)

images?q=tbn:ANd9GcTN3MXw09yrctCPABtxldOlUSWIj9O5HDOOJg&s 물질파의 발현 형태

이 가정에 따르면, 전자의 궤도는 단순한 경로가 아닌 정상파(standing wave)로 해석됩니다. 정상파는 경계 조건에서 위상이 맞지 않는 파동은 상쇄 간섭으로 사라지기에 정수배 길이만 유지됩니다.


이로써 전자의 궤도가 특정 조건에서만 가능한 이유와 동시에 수소원자가 붕괴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었습니다. 전자가 수소원자 안에서 특정 궤도에만 존재하는 이유는 위상적으로 안정된 궤도만이 물리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 것 또한 파동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화(Quantization)의 원리입니다. 전자는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며, 파동은 오직 일정한 패턴, 즉 위상이 안정된 상태에서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후 데이비슨–거머(Davisson–Germer) 실험(1927)은 전자가 파동처럼 회절을 일으킨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며, 드브로이 이론을 강력히 뒷받침했습니다.



파동의 중첩과 결합의 원리


두 개의 수소 원자가 결합해 수소 분자를 만들 때, 두 전자의 파동은 서로 중첩되어 원자핵 사이에서 보강 간섭을 일으킵니다. 이 간섭은 전자를 그 사이에 머물게 하며, 두 원자핵을 끌어당기는 결합력을 형성합니다. 이는 고전역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파동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물질은 특정 주파수의 빛(에너지)을 흡수하고, 그렇지 못한 주파수는 반사합니다. 예컨대, 식물의 엽록소는 붉은색과 푸른색 빛을 흡수하고 초록색을 반사하기 때문에 초록색으로 보입니다. 이 역시 파동 간섭과 양자화된 전자 에너지 준위 덕분에 가능한 현상입니다.


확률적 해석과 위상적 안정성


이러한 양자현상들을 수학적으로 정립한 인물이 에르빈 슈뢰딩거입니다. 그는 전자의 파동을 기술하는 방정식(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었고, 여기서 유도된 결과는 한 가지 중요한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양자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로 이어지며, 자연은 근본적으로 확률적이라는 관점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유일한 진실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드 브로이–봄 해석: 결정론의 귀환


드 브로이–봄 이론(Pilot-Wave Theory)은 전자가 실제 궤적을 가지며, 보이지 않는 ‘파일럿 파동’에 의해 운동이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해석은 슈뢰딩거 방정식은 유지하면서도, 확률을 관측자의 무지로 인한 통계적 반영으로 해석합니다.


즉, “우리가 관측하는 확률은 위상 조건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인식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양자역학의 수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해석에 결정론적 토대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주는 여전히 결정된 위상 구조를 따라 전개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확률로 이해해 온 자연의 모습이, 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위상적 안정성과 간섭 구조에 따른 결정적 질서일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파동이며, 그 파동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자가 간섭을 통한 위상적 안정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주는 무작위성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위상적 필연성에 따라 전개되는 간섭의 장일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드 브로이 - 봄 해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며, 결정론을 믿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삶의 의미를 1. 결정론을 따랐을 때와 2. 결정론이 거짓이라고 볼 때로 나누어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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