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 열다섯, 이직 및 퇴사에 대하여
"그동안 다닌 게 아깝지 않으세요?" 이직을 하기 위해 퇴사하기 전 인사팀과의 면담에서 던져진 질문이다. 1년 7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이미 결심은 했던 터라 퇴사 절차를 정석적으로 밟았지만 인수인계를 마치고 남는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스스로 정리해본 나의 선택과 사회초년생의 전반적인 이직 혹은 퇴사 사유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아, 그리고 필자는 흔히들 말하는 중고 신입, 즉 경력을 이직받지 않고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이직 사유>
뻔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필자의 이직사유는 "더 나은 조건"이다. 그중에서도 역시 지역적인 면이 컸다. 이전 회사의 경우 근무지가 본가인 서울에서 차로 1시간 20분 떨어진 충북의 작은 읍으로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지원받은 숙소 주변은 편의점과 식당 3~4개가 전부에 가로수, 가로등도 드문 곳이었다. 화물용 트럭이 오고 갔기에 밖을 산책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차를 사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자가용을 사는 순간 정말 첫 회사에 발이 묶여버릴 것만 같아 필사적으로 버텼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전국의 서울 출신 공대생들에게 묻는다면 모두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필자도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어디든 붙여만 주면 일하면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혜택이었단 사실을 깨닫게 되면 돌아가고 싶어 진다. 특히 평일 저녁 자취방에 박혀 허송세월을 보내고, 주말의 절반을 버스에서 날리다 보면 내가 무얼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산업 안정성 및 커리어다. 사실 죽을 때까지 지금 하는 직무를 따를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산업 자체를 한정시키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 판단했다. 특히 전 회사의 경우, 신재생에너지를 다루기에 안정성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게다가 이직하게 되는 회사도 같은 직무로 합격하게 되었는데, 이 직무에서 주로 인정받는 산업이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회사 제품의 복잡도나 기술성도 한몫했다. 나름 단순한 구조의 제품을 가진 전 회사보단 조금 더 복잡하고, 그렇기에 분석이 더 필요한 회사에서도 일해보고 싶었다.
그 외에 전 회사에서의 퇴근시간 소위 말하는 워라벨 및 복지, 급여와 인간관계는 준수하여 만족했기에 따로 할 말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좋았기에 지금껏 이직하지 않고 다니지 않았다 싶다. 그러나 이직처가 그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으로 좋은 조건이기에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들의 이직 사유>
사실 필자가 나가는 시점에서 전 회사의 동기들은 이미 85%가 먼저 퇴사했다. 재밌게도 나가는 시점에 따라 그 이유가 나뉜다. 가장 먼저 나간 이들은 이미 합격 당시에부터 다른 기업들의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나가게 된다. 그 후 1~3개월 사이 퇴사자들은 맡은 업무의 강도나 특성이 본인의 생각과 너무나도 달라 나간다. 특히 신제품 생산이 시작될 경우, 특정 부서들은 일부 기간 동안 업무가 과중하게 몰리는데, 신입들의 입장에선 이러한 강도가 계속 이어지는지 아닌지 잘 모르기에 부담이 크게 다가온다. 특히 신입을 방치하는 문화를 가진 팀일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이후에는 조금 기준이 모호하나, 경험상 4~12개월까지는 아무래도 같은 팀의 사람들 때문에 퇴사하는 경우들이 좀 있었다. 이들은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최근까지 얼어붙어 있던 취업시장과 걱정하는 부모님, 경제적 사정 등 다른 이유 때문에 사람이 괴로워도 일단 참고 다닌다. 그러다가 지금 회사에 비해 조금 조건이 안 좋아도 우선은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해 이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면 그 후에 남는 이들이 필자와 같은 이들이다. 더 나은 조건의 회사를 노리다가 운이 풀려 합격하는 경우다. 도망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앞서 말한 이들처럼 성급하게 나가려 하지 않고, 여유롭게 준비하다 보니 빠르게 나가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이들도 경력이 2년 이상이 되면 중고 신입으로 지원하기엔 조금 경력아 아쉽기도 하고, 커리어가 특정 산업에서 굳어져 곤란해지기에 조금은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p.s. 이직의 장점>
위에 나열한 점들 외에도 필자가 생각하는 장점이 더 있다. 처음 사회에, 특히 어느 조직에 발을 내딛게 되면 스스로 생각한 이상점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에만 국한된 문제인지 혹은 어떠한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부분인지는 우리로선 알 수가 없다. 말인즉슨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이거나 불필요하게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직을 해서 다른 조직을 경험하게 되면 문제를 더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비슷한 문제로 어떠한 조직이 좋은지 나쁜지 판별할 수 있는 개인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는 것이다. 실제로 좋은 조직에 들어갔을 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혜택인지 아닌지는 이미 다른 곳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유가 명확한 이직은 적어도 1번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