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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다운가

남관과 한효석의 색과 자유에 대하여

by 두유진

휴일이면 가끔 걷는 산책 길, 햇살이 부드럽게 비추는 그 골목 어귀에 Art Space X가 있다.

토요일에도 산책처럼 들른 그곳에서 뜻밖의 만남처럼, 한효석 작가님의 추상화를 마주했다.
색감의 향기와도 같은 작품들과, 그와 어울리는 퍼포먼스 공연까지.
그 순간, 갤러리는 일상의 쉼표이자 감각의 놀이터가 되었다.

사진으로 남긴 그의 작품들은 마치 햇살에 물든 꽃잎처럼 영롱한 색의 결로 기억되었다.


형태를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색과 흐름만으로 감정의 결을 전하는 추상화의 매력.
그게 바로 한효석 작가님의 작업이 품은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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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득 떠오른 또 한 명의 작가, 남관. 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추상화에 무게와 시(詩)의 호흡을 담아낸 선구자였다. 구상은 아니되, 문자와 실루엣을 품은 화면은 언제나 고유한 리듬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 두 사람의 세계는 비슷한 길 위에서, 그러나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유와 감정의 언어를 그려냈다. 오늘 나는, 한효석의 색으로 감각을 흔들린 채 남관의 세계를 떠올리며 이 감상문을 시작해본다.


남관과 한효석의 색과 자유에 대하여


화면 가득히 흐드러진 색과 형상. 뚜렷한 경계도 없고, 명확한 구상도 없다.

그럼에도 어떤 시선은 그 안에서 질서 있는 자유를 보고, 또 어떤 감정은 그 흐름 속에서 내면의 울림을 느낀다.

이처럼 ‘형상이 아닌 형상’, ‘말이 되지 않는 언어’를 통해 ‘그림’보다 더 깊은 것을 말하려는 예술가가 있다.

남관. 그리고 한효석.\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두 작가의 붓끝은 같은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자유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남관 – 문자추상의 선구자, 감정을 새기다


1955년, 남관은 모두가 망설이던 시기에 홀연히 파리로 떠났다.
한국 전쟁의 폐허 속, 예술은 전통과 구상의 틀 안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미술은 내면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 신념으로 그는 문자와 기호, 그리고 색과 형상의 자유로운 혼성으로 자신만의 비정형 추상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대표작 『가을인상』(1970)은 그 전환의 정점이다.


문자처럼, 고대 기호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황금빛 가을의 빛결 속에 부유한다.

남관,  '가을인상', 1970, Oil on canvas, 162 × 130 cm..jpg

기쁨과 슬픔, 환희와 상흔이 뒤엉킨
하나의 우주적 감정이 화면 가득 퍼진다.

그림은 설명이 아니다.
삶의 파편과 감정의 흔적이 덧칠되고, 긁혀지고, 다시 새겨지며
비로소 완성된 ‘비언어의 지도’다.

무제(Untitled), 연도미상, Oil on canvas,  52.7 x 64.8 cm..jpg
무제(Untitled), 연도미상, Oil on canvas, 52.5 x 45 cm..jpg
원시 형태, 연도미상,.jpg
무제(Untitled), 연도미상, Oil on canvas, 45.5 x 53 cm.(10호).jpg
무제(Untitled), 연도미상, Oil on canvas, 91 x 72 cm.(30호).jpg
무제(Untitled), 연도미상, Oil on canvas, 45 x 52.3 cm.(10호).jpg
무제, 연도미상, Oil on canvas, 32.8 x 23.5cm.jpg


한효석 – 추상의 언어로 자유를 말하다


2025년 6월, 한효석 작가는 서울 서초의 Art Space X에서 개인전『Sweet Abstraction』을 열었다.

감미로운 색채. 단호한 붓질. 그의 추상은 ‘이념’이 아닌, 철저히 감정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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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념적 자유가 아니라, 내면에서 오는 조형의 자유를 말하고 싶다.”


한효석의 회화는 무의식의 흔적과 색의 파편으로 가득하다.
가끔은 형상이 떠오르지만 곧 사라지고, 의도보다는 감각이 앞서고, 논리보다는 리듬이 살아 숨 쉰다.

그는 말한다.


“그림은 설명이 아니라, 체험이다.”


공통의 세계관 – ‘추상’이라는 감정의 지도


남관과 한효석. 이 둘은 ‘추상’이라는 언어를 빌려 감정과 자유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색의 층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삶의 결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고, 형상의 파괴와 생성은

익숙한 시각을 무너뜨리고 내면을 향해 열린다.


무엇보다, 이들은 평생 ‘자기만의 언어’를 찾기 위한 고독한 여정에 있었다.

남관은 문자와 색으로 한효석은 색과 제스처로 각자의 시선을 만들었다.

그림은 더 이상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되었고, 만져지는 것이 되었다.


감상 포인트


� 형태보다 흐름을 보라 한효석의 회화나 남관의 문자추상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를 보는 순간 열리기 시작한다.


� 색은 감정이다
푸름은 침잠, 붉음은 격정, 여백은 고요함이다. 그 안에 말 없는 감정이 숨 쉬고 있다.


� 정답이 없는 그림
이들의 회화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보는 이의 해석과 감정이 더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체험이 된다.



마무리하며

남관은 생전 이렇게 말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든 추상이든 간에, 남의 것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뚜렷한 개성 없으면 창작이라 할 수 없다.”


그 말처럼, 남관과 한효석은 각자의 시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의 본질인 ‘자기표현의 자유’를 탐험해왔다.

우리는 그들의 그림 앞에서 다시 묻는다.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 물음 끝에, 그림은 조용히 속삭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자유로운 감상자입니다.”


전시 정보

전시 제목: Sweet Abstraction

전시 기간: 2025.6.3(화) – 6.29(일)


전시장소: Art Space X

(서울 서초구 신원동 253-15, 청룡마을길 31)


문의: 02‑6241‑8740 / artspacex.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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