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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노래하는 풍경, 라울 뒤피의 시간

추억의 전시회 소환

by 두유진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 뒤피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라울 뒤피 Raoul Dufy (1877–1953)


프랑스 노르망디의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라울 뒤피는, 빛과 리듬, 음악과 색을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처음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의 빛을 화폭에 담았고, 마티스를 만나 포비즘의 강렬한 색과 선을 체득했으며, 나아가 음악·패션·도자기·벽지 등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종합예술가로 거듭났습니다. 초기 작품을 보면 마티스느낌을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경쾌하고 가볍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 가난, 병마를 겪은 한 인간의 깊은 생애가 녹아 있습니다. 특히 관절염으로 손의 통증이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붓을 손가락에 묶고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렸던 그는, ‘아름다움은 가벼움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화가입니다.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림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자 “빛을 듣고, 음악을 그리는 방법”이었습니다.


2023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뒤피의 작품들.. 그날 나는 그림을 본 게 아니라, 마치 색이 흘러가는 ‘음악’을 들은 것 같았다.

천장을 가득 채운 대형 태피스트리 속에서 황금빛 밀밭이 일렁였고, 꽃과 배, 사람들과 바람이 어우러져 한 편의 서사시가 되었다.

현악기와 음표가 화면을 넘나들며 유영하는 그림들 앞에서

내 마음은 마치 소년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그 선을 따라 마음을 걸었고, 그 순간 깨달았다.


라울 뒤피의 작품은 색이 무겁지 않지만,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가 그려낸 삶의 리듬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다정하게 건드리고,

어쩌면 잊고 있던 ‘나의 속도’를 다시 기억하게 해줍니다.


“뒤피의 그림은 색이 노래를 부르고, 선이 춤을 추며, 일상의 풍경이 축제처럼 들썩인다.”


색이 노래하는 풍경, 라울 뒤피의 시간


1. 정직한 빛의 기록자 – 초기의 뒤피


1900년대 초반, 뒤피의 붓은 자연을 닮았습니다.

잔잔한 파도, 어촌 마을의 고요함, 나무 다리 아래 드리운 그림자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자연의 명암과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정직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인상주의 화풍의 영향 아래,

그는 “빛을 포착하는 손”처럼 하루의 빛을 눈으로, 붓으로 옮겼습니다.

색은 부드럽고, 형태는 안정적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고르게 만드는 고요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대표 작품

<해안의 다리 밑 풍경>


<어촌의 항구>




2. 색의 해방, 선의 춤 – 포비즘의 뒤피


1906년, 뒤피는 마티스와 함께 색의 혁명을 맞이합니다.

그가 진정으로 ‘뒤피다워지는’ 순간이 시작되죠.


벽은 진홍색으로, 탁자는 원색으로 타오르고

실내의 사물은 더 이상 사실을 따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해방됩니다.

“어떤 색으로 무엇을 그려도 좋다”는 자유가 그에게 열렸습니다.


이 시기의 그림은 마치 음악처럼 보입니다.

색의 박자가 있고, 선의 리듬이 있습니다.

감정이 그대로 캔버스로 흐르고 있습니다.


대표 작품

<붉은 방의 정물>


<창가의 꽃병>


<곡선으로 휘어진 항구>


3. 삶을 연주하는 화가 – 성숙기의 뒤피


포비즘의 실험이 지나고, 뒤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색과 선을 다룹니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마치 축제의 순간처럼 반짝입니다.


꽃은 꽃 이상의 것이 되고,

배들은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닌 시각적 리듬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림 속 세상은 평면이지만, 마음속에서 입체로 울립니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그림은 그 사랑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림은 조용한 악보이자, 눈으로 들을 수 있는 교향곡이 됩니다.


대표 작품

<꽃다발>
<음악과 악기 시리즈>


<선박과 깃발, 리듬의 항구>



4. 경계를 허무는 손 – 뒤피의 후기


삶의 끝자락, 그의 그림은 점점 가벼워집니다.

선과 색의 경계는 흐려지고, 구체적인 형태는 추상으로 스며듭니다.


그는 아마도 그때 알았을 겁니다.

이제는 굳이 무엇을 묘사하지 않아도,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꽃 한 송이, 리듬 한 줄, 색 한 방울이

인생의 마지막 악장처럼 깊게 스며듭니다.


“뒤피의 그림은 색이 노래를 부르고, 선이 춤을 추며, 일상의 풍경이 축제처럼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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