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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때때로, 파도를 닮았다

나비다 조혜연작가 강의와 연결한 질문이야기

by 두유진

주말에, 친구 서정이와 나의친구 ‘나비다 조혜연’ 작가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대화의 기술, 제목만 들었을 땐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을 법한 주제였지만, 강의는 예상을 뛰어넘는 따뜻한 울림을 안겨주었다.

대화란 결국, 내가 나에게 묻는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의 내내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일이 마술처럼 삶의 결을 바꾸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고 문득 떠오른 그림이 있었다.


바로 메리 카사트의 바다 앞 아이들.

메리 카사트(Mary Cassatt)의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바다가 품은 이중적인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의 그림 속 아이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 모래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다.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고, 멀리 요트가 떠 있는 평화로운 풍경. 하지만, 이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는 또 다른 바다가 떠오른다. 그것은 두려움과 고통이 서린, 차갑고 깊은 바다다. 햇볕 아래에서 소리 없이 바다를 응시하던 아이들.


• 메리 카사트,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

그 평화로운 풍경 너머로 나는 한 여인의 삶을 보았다. 아니 나의 삶을 보았다.


여자로서의 삶과 예술, 억압과 자유 사이에서 흔들리며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시선으로 자신의 존재를 묻던 메리 카사트.

바다는 인류에게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였다. 그것은 때로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었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앗아가는 무자비한 심연이기도 했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웃는 아이들과, 같은 바다에서 삶을 잃은 난민들. 휴양지의 잔잔한 물결과 타이타닉 잠수정 사건이 남긴 깊고 어두운 절망. 같은 바다지만, 그곳에 서 있는 존재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는다. 카사트는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담아냈지만, 나는 이 그림 속 그녀가 어딘가 쓸쓸했을 것만 같다. 그녀가 바라본 바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바다는 하나의 경계이기도 했다. 여성 예술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야 했던 그녀. 가족과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사회가 정해둔 여성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를 건넜던 그녀. 그녀에게 바다는 자유를 향한 문이었지만, 동시에 돌아갈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그녀가 바다를 바라보며 던졌을 질문이 내게까지 밀려왔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진심으로 나를 살아내고 있는가.”


조혜연 작가는 강의 내내 말했다.

“질문은 선물이에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나의 호기심, 관심이고,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좋은 질문 하나가 내면 깊은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삶을 변화시키는 건 언제나 거창한 정답이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도 정직한 질문 하나라는 걸.

나에게 빠져 내가 하고 싶은 답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잠시 빠져나와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물어보는 짧은 물음표.


카사트의 그림 속 아이들처럼,

나도 바다 앞에 서서 내 안의 질문을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외면하고 지나쳐온 감정들,

애써 눌러왔던 불안들,

그리고 아직 말로 다 꺼내지 못한 소망들 앞에

하나씩 조용히 물어보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괜찮은가?”

“오늘 하루, 무엇을 가장 원하고 있었던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가?”


이 질문들을 매일 아침, 나에게 건네보기로 했다.

이건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대답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가장 깊은 이해의 시작이니까.

나 자신에게 항상 다정해야 함을 알지만 선물 같은 질문을 안 했구나. 싶었다.


카사트의 그림들을 보며 상상했다. ‘카사트는 그 질문 끝에서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았구나라고.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어머니도 아닌 ‘화가 메리 카사트’로서의 길.

그녀에게 바다는 경계이자 통로였다.

그 물결은 두려움이었고, 동시에 자유였다.


그리고 나에게도, 대화는 그런 바다일지 모른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내 삶의 해안선을 새로 그리고,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


질문이란, 어쩌면 그런 파도다.

때로는 부드럽게 다가와 마음을 적시고,

때로는 거세게 몰아쳐 나를 깨어나게 한다.

그러니 가끔은, 아니 매일 아침 나에게 물어보자.

“오늘의 나는, 진짜 나에게 말 걸고 있는가?”



<대화의 기술> 강의 후 함께 감상한 그림


• 메리 카사트, 〈푸른 소파에 앉은 소녀〉

어린 소녀, 억눌린 마음을 드러내다

“푸른색 안락의자에 앉은 어린 소녀” 속 아이는 땋은 머리를 긁적이며 투정을 부리고 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소녀는 답답한 듯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반짝이는 구두와 깔끔한 레이스 옷은 그녀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지만, 그 안에 갇힌 아이의 마음은 불편해 보인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규칙 속에서, 아이는 그저 예쁘고 얌전한 모습을 유지해야 했다. 이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뭐야?‘


카사트는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그녀 역시 여성으로서 강요받은 틀을 깨고자 했다. 결혼과 가정이 여성이 가야 할 길이라면, 그녀는 그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러나 사회는 그녀에게 그림을 그릴 기회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붓질로 아이의 짜증 어린 표정을 담아낸 그녀. 그 안에는 어린 시절부터 강요받아야 했던 수많은 규칙과, 그것을 거부하고픈 자신의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 메리 카사트, 〈객석에서〉


오페라글라스 너머의 세계


‘오페라를 감상하고 지금 이 순간은 어떤 기분이야?‘

질문은 누군가를 움직이게 합니다.


“객석에서” 속 여인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있다. 그녀는 상류층 여성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오페라글라스가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성들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자태로 공연을 즐기는 듯하지만, 실은 그들도 갇힌 존재였다. 오페라글라스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그녀들의 삶은 언제나 누군가를 통해 제한된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있었다. 카사트는 그 한계를 누구보다도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녀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허락한 공간 속에서 그림을 그려야 했고, 여성이 중심이 된 작품을 주로 그려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 속 여성들은 마냥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만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짜증을 내고, 불편함을 느끼고,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 그녀는 그들의 내면을 포착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안에는 자신이 바라보던 세상에 대한 답답함도 함께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나에게 질문하세요.

매일 나에게, 조용히 물어보는 것으로도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는 카사트의 그림을 보며,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풍경들을 그렸을지 생각해 본다. 그녀는 단순히 아이를 사랑스럽게, 여인을 우아하게 그린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느낄 감정을 화폭에 담아냈다. 사회가 정한 틀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까지.


나 역시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를 가두는 규칙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거부하고 싶었고, 무엇을 받아들이고 싶었을까? 카사트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내 안의 질문을 마주한다.


바다는 여전히 두 얼굴을 가졌고,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면, 언젠가 그 틀은 깨질 수 있지 않을까. 카사트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고, 그려가고 싶다.


그리고 카사트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가장 먼저 건네고 싶으신가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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