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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기억 속에서, 색을 찾아가는 길

그렇게 우리는..

by 두유진


doo. eugene 20호 oilpainting 2024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마치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표정이 거의 없었고, 기쁨도 슬픔도 절제된 채 살아가는 듯 보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삶은 오랜 시간 동안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의 따뜻한 케어를 받을 수 없었다.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읽는 법을 익혀야 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없이, 그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지탱해주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셨고, 가정을 온전히 이끌 힘이 없었다. 미술을 함께 전공했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그는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다. 중학생 때부터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아마 평생 “내가 벌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늘 긴장된 어깨로,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로 말이다.


그의 과거는 회색빛이었다. 버거웠던 기억, 힘겨웠던 순간들, 그리고 소중했던 순간마저도 그 회색빛에 덮여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것은, 그 안에도 따뜻했던 기억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그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삶의 색도 달라진다. 같은 풍경이라도 어떤 사람과 함께 보느냐에 따라 그 빛깔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소중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나는 그에게 미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이제는 다채로운 삶의 색을 찾아도 돼.”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더 이상 긴장된 어깨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감정을 억누르며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문득 깨닫는다. 사실 나야말로 그를 만나 삶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그는 긴장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묵묵히 삶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 안에는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했고, 아무 말 없이도 곁을 지켜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나는 그를 통해 새로운 색을 알게 되었고, 그 색이 내 안에서 스며들고 있음을 느낀다.


그의 얼굴에서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는 요즘이, 나에게도 참 소중하다. 그는 이제야 조금씩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색칠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곁에서 새로운 색을 배워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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