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와의결혼
남편은 열렬한 '비혼주의자'였다.
나와 남편은 회사에서 만났는데, 그는 회의시간에도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사람들에게 설파할 정도였다.
우리는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
출근 첫날, 나는 신입 사원답게 정장을 입고 일찍 출근하여 자리에 앉아있었다.
9시에 거의 다 되어서 웬 남자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들어오길래 인사하려고 했는데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못했다.
그런데 CEO가 와서 "둘이 인사했어?" 하는데
그 남자가 "예. 했어요." 하는 것이다.
분명 눈도 안 마주치고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래서 나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했다.
이게 남편에 대한 첫인상이다.
나는 그가 좋지 않았다.
카페테리아에서 만나도 일부러 말을 안 하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당시에 남자 친구가 있어서 나에게 남편은 그냥 상당히 특이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다 전 남자 친구와는 장거리 연애와 남자 친구의 취업준비로 인한 어려움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도 그즈음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나에게 남편을 적극 추천한 사람은 CEO였다.
"너, 저만한 사람 없다. 자기 여자한테 쟤만큼 잘하는 사람 못 봤어. 한번 잘 만나봐."
3년을 넘게 그를 봐온 CEO의 말에 나의 선입견을 지우고 다시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자상했다.
생각보다 친절했다.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는 오로지 세상에 '여자'는 1명인 것처럼 대했다.
출근 첫날, 나에게 인사하지 않은 것도
카페테리아에서 만나면 말을 피하던 것도
그는 자신의 여자 친구 이외에는 '여자=사람'으로 마치 남자를 대하듯이 했다.
그에게 모든 사람은 평등했다.
데이트는 정말 웃기게 시작했다.
업무 상 카메라가 필요해서, 회식 자리에서 "카메라를 사야겠다."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남편이 '카메라는 라이카를 사야 한다.'며 '남대문에 같이 가서 내가 흥정해주겠다. 너 혼자 가서 흥정도 못할 텐데 자신이 때마침 남대문에 가는 길이니 같이 가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만인을 평등하게 대하는 그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누구한테도 이럴 거야라는 마음으로
그저 감사하게 생각했다.
점심 회식을 마치고 바로 남대문에 가서 라이카를 구매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100원이라도 더 깎으려고 사장님께 애교란 애교는 다 부렸다.
그리고서는 "너 카메라 다루는 방법 알아? 카메라는 많이 써봐야 늘어. 주말에 사진 찍으러 가자."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래도 몰랐다.
이 남자가 나한테 관심 있어서 이러는 거라고는.
그날 주말에 만나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라이카는 흑백 사진이 일품이었다.
서울 중구를 돌며 재미있게 사진을 찍고 놀았다.
이런 식의 10번 정도의 데이트를 하고 나서야 남편이 고백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아, 날 좋아해서 이런 거였구나!'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남편의 열렬한 비혼주의는 나랑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는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얘랑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주의는 '누구든 제짝을 만나면 결혼하게 된다'로 바뀌었다.
그가 지금 나의 남편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