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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르르 Oct 24. 2021

가출하던 날, 서른 살에 나는 죽었다.

서른 살에 가출했다. 보통 서른 살에 '출가'를 하지만, 나는 '가출'했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왔다. 캐리어 하나에 짐들을 챙겼다.


그날 나는 어떻게 집을 나올 생각을 했을까?


전날 저녁, 나는 가지고 있던 수면제 한 통을 모두 삼켰다. 약 30알 정도였다. 언니와의 불화로 정신과를 다니면서 받아온 수면제였다. 이 정도면 내가 죽을 수 있을진 확실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눈을 뜨면 '이 방'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모두 먹었다. 


눈을 뜨고 보니, 변한 건 하나도 없는 좁은 방이었다. 나를 깨운 건 아빠였다.


"일어나서 밥 먹어라."


평소와 하나도 다름없는 말투. 분명 전날 내가 언니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얘기했었고, 내 머리맡에는 다 먹은 수면제 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걸 봤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에 나는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 집에서는 내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다.'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 길로 캐리어를 들고 집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아무 곳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일단 길을 나섰다. 휴대폰을 켜서 서울에 있는 호텔 중 아무 곳이나 골라 그곳으로 향했다. 어차피 휴대폰으로 예약을 하면 되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오래 묵는지 직접 대면으로 얘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일주일 예약.-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간 뒤, 내내 나는 깊은 우울감 속에서 헤매며 울부짖었다.


'도대체 나는 왜 살아있는 거지? 나는 왜 태어난 거지? 내 맘대로 살지도 못하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님이 나보다 언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지? 내가 수면제를 삼킨 것을 알았음에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나는 친자식이 맞긴 한 걸까? 아마 나는 주워오지 않았을까. 차라리 주워왔으면 좋겠다. 친자식인데 이렇게 하찮을 수가 있구나. 세상에 나를 낳아준 부모도 나를 예뻐하지 않는데 나는 누구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한참을 울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형사입니다. 실종신고가 들어와서 연락드렸습니다. 어디신가요?"

"서울 내 호텔에 잘 있습니다. 실종이 아닙니다. 제 발로 집을 나왔습니다. 무사합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 뒤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내내 울면서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굶어서라도 죽겠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살아있어야 하는가. 나는 누구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 3가지 질문만 되뇌면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자신이 없다.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쓰러져 누워서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아마 그곳이 밑바닥이었을지 모른다. 아주 깊은 바닷속 심해의 밑바닥에 가만히 누워서 나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아주 작게 하나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네가 진짜 죽어야만 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만 찾고 있었고, 살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내가 묻는 것이다. 진짜 죽어야만 하냐고. 나는 그것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에 충격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대답했다.


'그렇지, 세상에 부모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내가 살아서 뭐하겠어..'


그러자 또 반문했다.


'아니, 그건 아는데. 그렇다고 정말 죽어야 하는 거야?'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답을 구하고 있었다. 끝내 답을 구하지 못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진짜 죽어야만 하느냐고. 그런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문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살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는데, 죽어야 할 이유도 마땅하지 않았다.


'부모가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꼭 죽진 않아도 되지. 언니랑 불화가 있다고 꼭 죽을 필요는 없지. 지금까지 내 맘대로 살지 못한 인생, 지금부터 내 맘대로 살아보자.'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네가 지금부터 할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숨만 쉬자. 숨만 쉬면 돼."


나는 그렇게 계속 숨만 쉬고 있었다.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숨만 들고 났다.




그날, 나는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사랑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에 끝없이 떨던 날들로부터 두려움을 안아주는 날들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삶의 비밀은 죽기 전에 죽는 것이다.>라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이 진실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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