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존재는 특별하다.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나 '탯줄'로 한 몸으로 살다가 태어나면서 둘이 되어버린 또 다른 나와 같은 존재랄까. 그래서 엄마로부터 사랑받는 느낌은 마치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는 느낌과 같다.
종갓집 딸, 딸, 아들 중 둘째 딸. 환경적으로 관심받지 못하는 자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환경 속에서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언니는 내가 태어나면서 본인의 사랑이 뺏기는 게 싫었는지, 유독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다. 초등학생인 언니가 파마머리가 하고 싶어 하면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언니 머리를 땋아주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머리를 풀면, 고불고불 예쁜 파마머리가 되었다. 6살, 유치원생이던 나는 혼자 머리를 감고 혼자 머리를 묶고 유치원에 등원했다.
유치원에서 나는 누구보다 우등생이었다. 선생님의 칭찬이 마르질 않았다. 눈치도 빠르게 숙제도 척척하고 그림 그리기 대회가 있을 때면, 트로피도 받아가곤 했다.
집에서 받지 못하는 관심을 유치원에서라도 받고 싶었으리라.
언니와 싸우기라도 하면, "야, 동생인 네가 좀 참아야지. 언니 성격 알면서 왜 그래? 건드리지 마."라는 얘기를 들었다. 엄마는 예민한 언니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나에게 좀 참으라고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하루는 언니가 너무나도 미워서 옷장에 연필로 '언니 너무 싫다.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몰래 적어놓았다. 그날 저녁, 옷장 앞에서 언니랑 엄마가 낄낄 거리며 웃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자 엄마가 불렀다.
"야, 너는 여기다가 적어놓으면 우리가 모를 줄 알았냐? 얼른 와서 지워."
나는 수치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지우개를 가져다가 쓱쓱- 내 마음을 지웠다. 그때부터 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은 꽁꽁 문을 닫았다.
'엄마 사랑의 부재'라는 작은 씨앗이 나에게 콕, 심어졌다. 그리고 나는 30살까지 죽을 만큼 부작용을 앓았다.
첫 번째는 자살 시도들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그냥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없어져도 엄마와 아빠는 언니와 동생이랑 잘 살아갈 것 같았다. 그 가운데서 언제나 관심받고 싶어 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참았다. '딱 100번만 세면 된다.'하고 숨을 참아도 매번 실패했다. 중고등학생 때까지도 나는 몇 번의 숨 참기 자살 시도를 했다.
두 번째 부작용은 여자 친구들과의 불화였다. 나는 '여자'친구들이 유독 불편했다. 그 이면에는 절대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장난으로라도 욕 한번 하지 못했다. 내가 욕을 하면 나랑 친구로 안지 내줄까 봐. 어디 놀러 가자고 먼저 제안하지도 못했다. 혹시 거절당할 까 봐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언제나 여자 친구들과 일정한 벽을 두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와 속 깊은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고, 저절로 왕따가 되었다.
세 번째는 연애에서 나타났다. 나는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연인에게서 받으려고 했다. 그래서 상대가 하는 작은 말하나에도 쉽게 삶을 좌지우지하였다. 그렇게 끌려다니는 연애를 했다.
"그런데, 이것들 모두 그냥 혼자 착각하는 거 아니에요? 피해의식일 수도 있어요. 그냥 엄마는 똑같이 대했는데, 혼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라고 얘기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정말 부럽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받은 차별을 객관적으로 확인한 일이 있다. 차별이 객관적이라니.
글의 초두에 말한 것처럼 우리 집은 종갓집이다. 그래서 족보가 있다. 요즘에는 세상이 좋아져서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몇 달 전, 족보를 확인할 일이 있어서 온라인에서 검색을 했다.
내 이름을 검색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남동생 이름을 검색했는데 나왔다.
언니 이름을 검색했는데 나왔다.
엄마도 나왔다.
할머니도 나왔다.
5명의 고모들도 모두 나왔다.
작은 아빠 이름도 나왔다.
사촌동생 이름도 나왔다.
그곳에 나만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 멍했다. 그러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차별을 하셔도 정도껏 하시지. 이건 좀 너무하시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다 며칠 뒤, 난데없이 멈출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서러웠다. 나도 그냥 다 내가 혼자 지어낸 상상이고 착각이라고 생각하면서 덮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만 없는 족보를 보고 나니, 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마주친 것처럼 너무 싫었다.
분명 나뿐만이 아니리라. 집에서 차별을 받는 것은 너무나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학대 중 하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자신이 차별받았다고 느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게 맞다고. 본인이 그렇게 느꼈으면 차별받은 게 맞는 거라고. 그리고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차별을 직시하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내가 엄마의 사랑이 정말 고팠구나. 엄마의 사랑은 너무나 중요하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의 사랑은 마치 나와 똑같은 존재가 나를 사랑해주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이 좋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엄마다.' 그 누구도 이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심지어 그 사람이 진짜 엄마라도 내가 바라는 엄마의 역할을 다 해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할은 오로지 나만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