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나를 덮쳐올 때(2)(feat. 인간승리)

함께 배우고 싶어서

by 소화록

(폭풍우가 나를 덮쳐올 때(1)는 함께 배우고 싶어서 1 마지막화에 있습니다.)


교실 속 아이들의 상황을 주변 동료교사 및 관리자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던 것은 다시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제대로 ‘지도’ 하지 못했다는 교사 무능력의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이 아이가 늦기 전에 검사를 받고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길고 긴 폭풍우를 뚫고 왔다. 이어서 적어보겠다.


우선 먹는 것마다 설사를 하고 두통에 불면증이 심해진 나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제일 먼저 했다. 병조퇴를 내고 한의원에 가서 침 치료를 받고 한약을 지었다. 평소 한의학을 좋아하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아니다 보니 즉각 효과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날 침치료받고 거의 숙면에 가까운 잠을 잤다. 신기했다. 한약도 일반 양약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데 시범사업으로 지원받는 제도가 있어서 5만 6천 원에 2주 치 한약을 지어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기로 마음먹으며 결재를 했다. 혹시 모를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때를 대비해서 육아시간 쓰는 것을 아끼고 있었는데 그 또한 나를 위해 매일 쓰고 있다. 나의 주된 스트레스 장소가 교실인 만큼 장소를 떠남으로써 나를 위한 환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병조퇴와 육아시간을 함께 쓰고 있다.


그리고 녹화를 시작했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 아이들의 평소 모습을 담았다. 사실 수현이(가명)와 우영이(가명) 말고도 호건이(가명)라는 걱정되는 아이가 한 명이 더 있는데 곧 있을 학부모 상담주간에 평소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아이들마다의 녹화본을 모으고 있다. 녹화의 초점은 우영이와 호건이를 중심으로 찍고 있다. 우영이는 평소 1교시마다 자리를 3번 이상 이탈을 한다. 다른 아이들 역시 1학기에 자주 일어나고 이탈을 했지만 2학기 들어서는 아무리 지루한 활동을 하더라도 책상 위에 엎드리는 경우는 있어도 자리를 이탈해서 돌아다니지는 않는데 우영이는 의자에 일정시간 이상 붙어있는 것을 여전히 잘하지 못한다. 자리에 앉아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도리도리를 많이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혼자 코끼리 바퀴 도는 것처럼 제자리 돌기를 10바퀴 이상 한다. 몇 번 자리에 앉으라고 주의를 줘도 다시 일어나서 특정행동을 반복한다. 이러한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찍었고, 오후에 부장님께 보여드렸다. 부장님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우리 반 아이 누구랑 똑같네.”라고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현재 adhd로 판정받아 약을 먹고 있는 아이다. 나는 대놓고 adhd가 의심되니 병원에 가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장님이 어느 정도 이 쪽으로 의심을 하고 계신 것 같아서 엄마로서 받아들이고 병원에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순회상담선생님께서 부장님께 적극적으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부장님은 나에게 ‘병원에 가보라는 권면을 들었다, 의심은 했지만 막상 들으니 너무 충격이었다.’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교사로서 보는 마음과 엄마로서 보는 마음은 정말 다른가보다. “우리 아이는 괜찮았는데, 친구들을 거센 아이들로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해.”라는 말도 하셨다. 내 자식은 이런 아이가 아닌데 주변 환경을 탓하는 마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1학기에 서로 치고받고 싸운 친구들이 2학기 들어서는 그 행동이 줄어들고 있음이 자연스러운 성장으로 보이는데 우영이만큼은 때리는 행동 빈도수가 더 늘었다고. 이것은 우영이만의 특징이라고 말씀드렸다. 또한 아무리 거센 아이들이 많은 우리 반 이더라도 ‘친구를 때리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끝까지 때리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의 문제 행동의 원인을 환경적인 요인으로만 본다면 놓치는 것이 많다. 감사하게도 부장님이 먼저 <위기학생 맞춤형 지원> 신청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그 지원을 바라고 있었기에 먼저 말씀해 주셔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신청서를 쓰겠다고 교감님께 말씀드렸는데 뜻밖에 교감님이 ’ 우영이가 위기 학생은 아니지 않으냐’며 반대하셨다. 그분의 주장은 2가지였다. 하나는 이 아이가 가정환경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문제 행동이기에 엄마가 병원에 데려가서 진단받으면 될 문제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제도가 함부로 남용될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보통 의견이 대치할 때는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이 아닌 그 심중에 있는 의견도 잘 파악해야 한다. 내가 파악한 교감님의 마음은 우리 학교 교사의 아들이 위기 학생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서 경제적인 지원이 충분한 가정인데 남용의 걱정을 하신 것 같았다. 나는 즉각 반대의견을 말씀드렸다. 우영이의 상황은 우영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 아이의 고착된 행동으로 인해 학급에 위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가정의 경제적 수준 자체가 지원 대상 자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말씀드렸다. 우리 반 학부모님들 중에 예민한 학부모님이 없어서 망정이지 우영이의 때리는 행동은 아이의 몸에 흔적을 몇 번 남겼었고 이것은 충분히 학교폭력 사안이 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씀드렸다. 교감님은 ’ 잠재적 학교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다 위기 학생은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럼 어떤 학생이 위기 학생인 거죠?‘라고 말씀을 드렸다. 학생의 상태의 심각 수준과 예산 등을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은 교육청 소관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이미 충분한 문제 행동으로 학급의 분위기를 흐리고 있는 학생인데 신청서 자체를 쓰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강력하게 말씀을 드렸다. 또한 개인적으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다면 나는 그 결과에 대해 병원과 소통을 할 수 없고 엄마를 통해 들어야 하지만, 교육청을 통해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면 아이의 검사 결과를 스캔파일로 받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추후 지원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협의할 수 있어서 다각도의 지원이 가능한 점을 말씀드렸다.


한 아이를 위해 지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충돌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절실히 깨달은 요즘이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담임교사의 말과 관찰내용이 가장 영향력이 있음에도 이제 막 저경력 교사의 딱지를 뗀 나의 말을 관리자는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도. 일전에 수현이의 부모를 설득하고 교육청에 위기학생 맞춤형 지원을 신청한 것은 약과였다. 나는 힘겹게 이 과정을 지속 중이다. ‘그냥 나 한 명 참고 넘어가면 되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등의 생각으로 아이의 문제 행동을 끝까지 참고 넘어갔다면 아이와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부터 부모를 설득하고 관리자를 설득하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멀고 험한 길이다. 나는 지금 이 과정을 두 번째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다 이런 학급을 맡았을까. 너무 힘들고 지친다. 하다가도 병원에서 검사를 맡고 약을 먹으며 눈에 띄게 행동이 좋아진 수현이를 보면 엄청난 보람도 느낀다. 하루에 한 번도 교사의 말에 토를 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수현이가 한 번도 말대꾸와 반항적인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이틀 연속 지속되었다.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적기에 치료하면 정말 나아진다. 나의 수고가 빛나는 시간들이 분명 있다. 다른 사람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니 나의 최선이 아이를 위해 작용했다는 것을 보기만 해도 보람되고 뿌듯하다. 우영이가 무사히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호건이의 경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