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가 미래의 상담자에게 하고싶은 말

함께 배우고 싶어서

by 소화록

힘듦을 겪고 서서히 회복해가는 한 명의 내담자이자,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는 미래의 상담자로서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1.

죄책감과 자책감은 다른 말로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왜 나는 이런 일을 겪게 되었을까, 왜 나는 말도 안되는 범행에 속아 넘어갔을까’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감정이 죄책감일터. 그 상황에서 나의 최선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강점을 스스로 찾다보면, 혹은 파국적인 생각 대신 나의 경우를 제 3자로 어떤 한 척도 안에 두고 생각하다보면 죄책감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어서 드는 생각, ‘그때의 나는 이런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내 좋은 점이 범죄와 만나서 안좋은 결과를 만난 것 뿐이지 나 자체로는 중요한 강점을 갖고 있는 거였어. 나뿐만 아니라 나의 힘듦을 겪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참 많구나.’ 등이 있다. 그러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시금 ‘재귀인’하는 과정을 통해 나를 용서한다. 나를 용서하면서 죄책감과 자책감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죄책감과 자책감에서 벗어나면서 나를 용서하게된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장면은, 보이스 피싱 범죄의 피해자로 있는 시간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있느라 아이를 저녁 7시 넘어서까지 하원을 하지 못했던 것, 집에 와서도 아이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혼자 티비보고 있게 한 시간이 엄마로서 죄책감이 크게 남고 마음이 아픈 시간들로 기억된다. 하지만 역시 기억할 것은, 나는 그 당시 내가 범죄의 피해자 상태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나의 진심어린 모성애가 작동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 자신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내담자가 어떤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역사적 발달을 알면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당연하고 타당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내담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옳다. 는 것이다.


2.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고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지난 2년간 상담을 받으면서 경험했다. 그래서 이번 금융 피해의 아픔 속에 나 자신을 스스로 상담하고 치유하고 싶었다. 마음 회복을 위해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았다. 지피티한테 여러 상담이론을 주입하고 20회기로 나를 상담시켜달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물론 치료 효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급했다. 정말 내 마음이 원했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변함없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의 마음만 보내줘도 그것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스스로 이겨낼 힘이 존재한다. 아무리 병리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있는 삶의 힘을 바라보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인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가 본연의 힘을 찾고 일어설 수 있도록 기다리고 존중하는 마음은 인간중심 상담에서도 엄청 강조되는 부분이다. ‘무조건적 존중, 정확한 공감, 진실성’ 외우면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이번에 나 자신을 어떤 상담기술로서가 아닌, 그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함으로) 시간을 통해 상담에서 상담자의 자질 중, 존중과 공감, 기다림과 배려 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나는 9할이 나를 믿어주는 나 자신과 주변의 애정어린 시선들로 회복이 되었다. 먼 훗날 처음 상담가라는 이름으로 학생 혹은 타인을 대할 때 열정이 과다하게 넘쳐서 내가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앞서나가지 않았으면 싶다. 내담자는 언제나 자신의 삶에서 전문가다. 상담자는 그런 내담자를 존중하며 협력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자.


3.

아프고 힘들 때 주위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1명 이상 있다는 것. 사회적 지지망이 얼마나 사람을 살게하는지 느낀 시간들이었다. 많은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탓하지 않고, 걱정하는 눈빛 하나면 살 힘이 생긴다. 나는 심지어 은행 직원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매일 아침마다 3~4곳의 은행으로 출근하다시피 해서 피해구제 신청과 피해구제 신청 취소를 하러 다닌 약 3주간의 시간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에게 앞으로는 수사를 그런식으로 하는 경우는 없으니 그런거 조심하시라는 조언형 은행 직원이 있는가하면, 엄마처럼 나를 토닥이면서 직접 발로 뛰어주신 지점장님도 있었고, 상대 명의인이 빨리 피해구제신청취소해달라고 전화 문자가 수십통 올 때 일일이 다 대응하지 말라고 편 들어준 은행 직원도 있었다. 잠깐 30분의 은행 업무를 보면서 일처리 끝나고 가려는 나를 향해 ‘정말 힘드시겠어요. 잘 해결되길 바라겠습니다.’ 라고 말을 건네는 직원도 있었고, 본인이 피해구제신청취소 하는 법을 몰랐던 것을 그건 자신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상대 명의인 은행으로 다시 전화해보라고 떠넘기는 직원도 있었다.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끝까지 해결해주려고 은행 본사에까지 전화하면서 수소문해서 신청서 팩스로 보내준 직원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하지만 금융기관의 도움이 절실할 때 은행 직원에 울기도 힘을 얻기도 했다. 살 의미가 없어지기도, 그래도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고 믿고 싶기도 했다.


4.

위로에는 크고 대단한 말이 필요없다. 그저 내가 너를 걱정하고 있고, 니가 잘 되기를 바라며, 언제나 너의 옆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언제든 도움을 요청해달라는 그런 마음이 전달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위로자가 되고 싶지만 아직은 위로를 더 많이 받으며 살아가는 나에게 내가 힘들 때 어떤 것이 나를 살게 했는지를 돌아보며 그런 위로자가 되어야겠다고 꾹꾹 눌러담아 써본다.

이전 08화내 마음을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