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싶어서
긴장이 한껏 된 아침, 머리 말리고 화장하고 전날 골라뒀던 옷도 입고 누워있는 아이 잠옷을 벗겨 외출복으로 갈아입히고 집을 나섰다. 하루동안 아이를 봐 줄 지인에게 쿠키만들기 세트와 만들기 재료 챙겨서 아이를 맡긴 후에 대학원으로 향했다. 한시간 반 동안 운전을 하고 여유롭게 도착해서 차 속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안내사항에는 15분 전부터 시험장소에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가보니 일찍 열려있었다. 심호흡하며 화장실 갔다가 내 이름이 적혀진 책상에 앉았다.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직전에 보는 것은 시험에 나온다!’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눈에 담았다. 시험시작이 다가오도록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있었다. 대략 6~7 자리 정도 되었는데 총 지원자 수에서 그만큼을 뺀 사람들과 함께 시험을 보겠구나 싶었다. 이윽고 전공시험이 시작됐다. 맨 앞 사람이 답안지와 시험지 순으로 받아 뒤로 전달했는데, 바로 앞자리 분이 시험지를 바로 넘겨주지 않고 문제를 한참이나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주지 !’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잉 이게 뭐지?’ 하며 시험지를 들여다 본 느낌이 들어서 ‘문제가 어렵나?’싶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앞 사람이 왜 멍 때리셨는지 이해가 됐다. 문제가 정말 너.무! 어려웠다. 2문제를 읽자마자 든 생각, ‘아, 신은 없다...’ 문제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전혀 처음 듣는 이론이 나오면서 다른 상담이론과 비교하여 설명하라는데 문제에 제시된 나머지 상담이론은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한 이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멘붕이 왔다. 어떻게 모르는 이론을 아는 이론으로 만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꽤나 그럴듯하게, 꽤나 논리적이게 작성하도록 고심을 다하며 적어내려갔다. 2번째 문제 역시 흡족하지 못한 답을 작성해서 제출했지만, 최대한 내가 이만큼 알고 있고 이만큼 공부했음을 드러내며 답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면접이 있었다. 사실 나는 일전에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달달 외우지 않았다. 그냥 질문을 받으면 그때 내 생각을 편히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에는 예상질문이란 것이 있으며 긴장된 상태에서 평소 상담심리학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대학교 입학할 때도 면접을 그렇게 말아먹더니 고새 그때를 까먹었나? 나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만 들어가서 면접 볼 줄 알았는데 나 포함 5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주르륵 자기소개와 지원동기, 연구계획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 답변은 진실했지만 준비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없었고 그래서 논리정연하지 못했다. 원대한 포부를 달달달 외워 말하는 다른 면접자들을 보며, ‘아. 망했다. 시험도 망하고 면접도 망했다.‘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망했다는 느낌은 실제 점수와 상관없는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암튼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었다. 축 처진 채로 면접실을 나와 곧장 집을 향해 운전을 했다. 그리고 지인과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시험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과는 이제 내 손을 떠났지만 그 알 수 없음이 주는 불안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감사하게도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 중인 동생이 집에 놀러와 하룻밤을 자면서 지역별 티오가 있기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 순위권 안에 든다면 승산이 있음을 듣게 되었다. 갑자기 합격할 일말의 가능성을 만난 것 같았다.
우선은 8월부터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장에 있는 책들부터 마음껏 읽으면서 시험본 후의 해방감을 마구 느껴야겠다.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오늘 할일을 다 한 셈이다. 한 가지 유익도 있다. 시험 본 하루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전자금융사기 피해 사건은 저 멀리 나의 과거 사건이 된 것 같았다. 피해 당한 나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온 동생은 당장 오늘 시험본 일에 흥분해 있는 나를 보고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아 보여서 놀랬다고 말했다. 그러게. 정말 상담 공부하면서 나온 내용처럼, 지금-여기에 집중해서 오늘만 살면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일 일도, 잔상이 남아 속상할 일도 없고 나의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겠구나를 느낀 하루였다. 물론 시험 본 하루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내 온 정신을 휘어잡을 수 밖에 없었지만, 평범하고 반복적인 무탈한 일상 속에서도 내가 지금-여기 현재를 산다면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 두는 것이 가능하겠고 나의 마음은 한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시험 본 일로 보이스피싱 사건이 저 멀리 떠내려갔음이 웃기고 덕분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