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연구합니다

함께 배우고 싶어서

by 소화록

학교로 다시 복직하기까지 약 2주 반 정도가 남았다. 처음 병가를 썼고 아이들을 지도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교사로서 매우 중요한 시간임을 인정하게 되는 요즘이다. 매일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상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면 지금은 나의 생각을 관찰하는 중이랄까.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싶은 삶의 방향성 중에 나 자신을 연구하는 것도 포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최근에 겪었던 큰 아픔은 아무래도 금융 사기 피해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용의 시간들’을 마주하며, 감정의 굴곡을 피하지 않고 경험을 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드는 생각은, 저축한 돈의 90프로 이상을 잃고, 마이너스 통장을 몇 천만원 뚫게 되었지만, 우연히 보게 된 티비 속의 연예인들이 너도 나도 전세 사기 당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며, 나의 동의가 없이 타인의 속임수로 돈을 잃은 경험을 생각보다 다수가 경험했다는 것, 그리고 피해금액은 억대인 경우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정말 그래도, 피해가 이만한 것에 그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고 누군가 이런 비슷한 일로 나보다 더 힘든 경우가 있다는 것이 ’보아졌다.‘ 여기서 포인트는 상대적 감사함을 느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고통에 매몰된 순간을 지나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 나의 마음이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들었던 생각은, 이번 범죄의 피해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작정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쉽게 피할 수는 없었다는 것, 내가 약하고 부족하고 못나서 겪은 피해가 아니라 오히려 내 자신이 고지식하게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유연해서 일반적이진 않지만 ‘법과 관련된 수사를 비대면 방식으로도 진행할 수도 있구나,’ 라는 찰나의 열린 마음이 있었다는 것.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한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가 지나치게 합리화하는 방어기제를 쓴 것인지, 회복으로 가는 과정인지 점검이 필요했다.


먼저 첫 번째 생각, “억대 피해가 아니고 이 정도인 게 다행이다.” 는 생각은 나의 인지가 재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를 바라보며 ‘이건 끝장이야.’로 보는 대신, ‘이 정도에서 멈춘 건 다행이야.’라고 보는 건, 힘든 마음으로 무너졌던 삶의 통제감을 다시 세우려는 자연스러운 회복 반응이다. 합리화라면 죄책감이나 분노를 억누르고 “괜찮은 척”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나는 지금 ”아직 아프지만, 그 안에서도 다행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에 부정이 아닌 ‘통합’의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건 정서적 회복의 단계, 충격-분노,자책-수용과 의미 재구성 중에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 “나는 고지식하지 않고 유연해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봤다.” 는 생각은 위로를 넘어선 자기개념의 재인식이 아닐까? 피해 경험을 통해 ‘나의 순진함’이 아닌 ‘나의 개방성, 융통성’이라는 가치로 다시 바라보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되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어리석었다.’ 대신 ‘나는 열린 마음의 사람이었다.’는 해석은 분명 마음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나를 속인 세상을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속의 나를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나는 그날의 분노, 두려움, 배신감,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아파하면서도 그 이후 감정을 객관화해서 문장으로 정리하고,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를 성찰하고 있는 중으로 볼 수 있다. 마음의 상처를 인지적으로 감싸 안는 중인거다. 여기서 조금 더 내 마음의 방향성을 잡아보자면, “다행이다.” 라는 문장 다음에, “그래도 힘들었다.”도 허락해보는 것. 다행과 괴로움은 함께 존재할 수 있고 둘 다 진실이라고 나 자신에게 허락해주고 싶다. 상담심리 공부를 하다보면 진로 상담 중에 사비카스의 생애설계이론이 있다. 이 생애설계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스스로 구성하고 수집하며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 나의 상황에 적용해보자면 “이 사건은 내 인생의 어느 장면이 되었나?” 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까닭없는 고통을 지나고 있더라도 결국은 그 안에서 배울점을 찾아내고 의미를 찾아 나 자신을 성장의 원동력을 삼는 것. 이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잠재적 힘이자, 인간이 위대한 이유같다. 호흡이 계속되는 한, 인간은 살아간다. 시험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집중이 안되 ㅠㅠ) 시험 공부 외에 다른 독서는 다 멈춘 만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담심리에 맞춰져 있는 중이다. 어서 시험이 끝나고 해방감을 느끼고 싶지만(?) 상담심리적 관점에 푹 빠지는 이 시간도 분명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 그 자체를 즐기려는 나만의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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