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치면 '내일'이 없다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모처럼 힘이나는 월요일이었다. 친한 동생과 집근처 캠핑을 예약해서 고기 구워먹고 시간보내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수가 많아도 정신이 없어도 퇴근 후에 날아가듯 아이 하원을 했다. 동생이 집으로 데리러 온다고 해서 집에가서 아이와 캠핑용 복장으로 갈아입고 만났다.


깨끗하고 사장님 친절하고 리뷰 좋은 캠핑장이어서 그곳에서 있는 내내 즐거웠다. 캠핑에 어울리는 브금을 틀고 고기와 소시지를 구워먹으며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한 달 새에 살이 엄청 빠져서 턱선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식욕이 절로 솟아나 즐겁기도 했다.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비눗방울도 불고, 모래놀이터에서 모래성도 쌓았다. 아이가 고른 너구리 라면을 끓여서 셋이 나눠먹기도 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야외의 우리만의 공간에서 고기 구워먹는 시간은 참 낭만적이었다. 그렇게 너무 즐거움에 취한게 잘못이었을까?


예약한 3시간 중 2시간이 후딱 지나가니 남은 시간에 불멍하며 마시멜로를 구워먹기로 했다. 아이는 불멍 옆 미끄럼틀에서 놀면서 내가 구워준 마시멜로를 먹고 있었다. 동생과 대화 삼매경에 빠진 사이 아이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3~4초 뒤 캠핑장을 뒤엎는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우는 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어떤 상황이든 침착함의 가면을 쓰고 대처해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서둘러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미끄럼틀 뒤에서 나오는데 입안 가득 뭐가 차오른 것이 느껴졌고, 이 사이로 보이는 피들이 제일 먼저 내 시선을 끌었다. 아이는 불편한지 쿨럭 쿨럭 하며 피를 쏟아냈다. 아이의 옷이 피로 범벅이 됐다. 나는 패닉에 빠졌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처하기로 마음먹고 아이를 달랬다. 쉽사리 울음이 그쳐지지 않는 아이를 두려운 마음으로 안아 들었다. 그리고 빨리 우리 공간으로 들어갔다. 아이에게 '입 안에 물이 많이 있으니 한 번 꿀꺽 삼켜볼까?' 라고 말했다. 아이는 꿀꺽 삼키면서도 눈이 계속 감기는 모습을 보였다. 과다출혈로 기절 직전인가 싶어서 재우지 않으려고 아이 이름을 계속 불러서 깨웠다. 아이가 진정이 될 때까지 계속 안고 토닥거리는 시간에 동생이 후딱 먹었던 자리들을 치웠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저녁에 문을 여는 병원으로 가야하나 고민을 했다. 응급실은 대기도, 해야할 기초 검사도 많아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할 것 같아서 우선 근처 병원으로 먼저 갔다. 그 사이 피가 많이 멎었고, 아이의 입 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입천장에 상처가 보였다. 꼬치로 찔린 상황이었다.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꼬매야 하는 정도인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병원 의사 선생님이 꼬맬 정도로 깊이 찔리진 않은 것 같다고 하셔서 다행이었다. 다만 지금 소독을 하거나 상처를 보려고 하면 상처가 더 벌어져서 출혈이 더 심해질 수 있으니 항생제 먹고 내일 치과를 가볼 것을 권유하셨다. 심장 알람이 고장난 나는 이 위기 상황 앞에 더 가슴이 조여오고 답답함을 느꼈다. 가방을 바꿔 매고 와서 상비약을 들고 오지 않은걸 후회했다. 약이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중에 내일 일을 쉬어야 하나 고민의 늪에 빠졌다. 내 인생에 아이가 최우선순위가 분명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2순위인 내 삶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아프면 내 삶은 예고 없이 올스톱이 된다. 남한테 폐 끼치기 싫어하는 나로써 한달 병가 후 잦은 연가 사용이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심호흡을 하고 교감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죄송하게 되었다. 내일 학교 출근을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이해해주시고 아이 잘 돌보라고 해주셨다.


내가 아프거나 아이가 아플 때, 마음이 부치고 외롭다. 그래도 아이의 갑작스런 사고에 친한 동생이 함께 있었기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동생이 병원까지 운전도 해주고 아이 잠잘 준비도 도와줬다. 싱글맘이나 싱글파파는 사회적 지지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당장 도움을 뻗을 이웃이 있는가.' 가 그들에게 삶을 좀 더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의 크고 작은 도움이 없었으면 나는 이날 역시 버텨내지 못했을 것 같다.


다음날 오전에 치과를 방문했다. 아이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마음 졸이는 건 부모 몫인 것 같다...) 다행히 나무 가시나 파편이 입천장에 있지 않았고 꼬맬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대로 두면 1주일 안에 아물꺼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다시 끔찍했던 저녁 시간을 떠올리며 강렬하게 나를 옭아맸던 '내 탓, 내 잘못, 죄책감' 등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분명 행복하고 즐거웠던 저녁 시간도 있었음을 기억했다. 과거과 왜곡되지 않도록 복합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흘러가는 대로 모든 상황이 내가 원하는 상황인 것처럼 지금-여기에 집중할 것. 지나간 과거는 그대로 보내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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