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방학 기록
방학 1주 차. 교사로서의 역할을 잠시 off 하니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일상이 있다.
먼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의 질이 높아졌다. 집순이의 취미를 늘리고 있다. 워킹맘 모드일 때는 퇴근 후 일상이 요리와 집안일, 육아만 해도 빠듯했는데 쓸모없는 취미가 늘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손으로 뭔가를 만들 때 생각을 많이 안 하게 되고 명상의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스티커 색칠북으로 작품을 만들어 우드락에 붙여서 집 안에 작품을 전시하게 됐다. 미술관이 뭐 멀리 있나 싶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자주 볼 수 있는, 나의 손을 탄 작품이야말로 감상하기 딱 좋다. 조만간 아이가 그린 그림 들고 액자로 만들어서 전시할 예정이다. 조립에 부쩍 흥미가 생겨서 아이가 역할 놀이 하기 좋은 집을 만들었다. 조명도 사서 달아줬다. 삶에 예술이 더해지고 있는 중이다. 실용적이지 않은 쓸모없는 취미인가 싶었는데 마음에 안정을 주고 표현력을 높이는 유의미한 취미가 되고 있다.
출근할 때는 잠든 아이를 재촉하며 빨리 가야 한다고 서두르라고 했는데 방학이 되니 완전 뒤바뀌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빨리 가고 싶어서 일어나서 혼자 세수 양치를 한 후, 여전히 누워있는 나를 향해 “엄마, 빨리 좀 해줄래?”라고 말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입장이 완전 반대가 됐다. 이 또한 즐겨야겠다. 주말에는 올 겨울 처음으로 쌓인 눈을 봤다. 나도 설렜지만 아이는 눈이 돌아갔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해야 한다고 어서 밖에 나가자고 조른다. 나간 김에 문구점에서 썰매랑 방한장갑도 샀다. 높은 곳에서 내려가는 썰매는 아니었지만 평지에서 속도를 높이며 썰매를 태워주니 딸이 정말 좋아했다. 아이와 함께 놀다 보면 내 삶의 고민과 걱정들도 사라지게 된다. 육아는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깔깔 웃고 장난치다 보면 심각하게 생각했던 문제들도 어찌어찌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딸의 장난에 늘 심각하게 “그만해.”라고 반응했던 나도 같이 장난으로 맞받아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같은 교사 친구들은 방학 때를 이용해서 만난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래도 지난 반개월 간의 삶을 가볍게 혹은 깊게 나눌 일이 생긴다. 최근 만난 지인 2명은 둘 다 힘들고 아픈 일들이 있으면 되도록 기억하지 않고 말로 잘 꺼내지도 않고 넘겨버린다고 한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계속 생각하고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곱씹어서 거기서 뭔가를 배우려고 해서 과거를 잘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지난 반개월을 지인들에게 나누면서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내 말을 들어주는 상대에게 내가 나에 대해 얼마큼 나눌 수 있는지 관계점검이 가능하다. 또 서론을 만들고 기승전결 이야기를 다 펼쳐내지 않고도 어느 정도 생략하고 요점만 이야기하는 소통에서의 말하기 연습에 유익하다. 과거를 해석하는 나의 일인칭 고백을 스스로가 들으며 과거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고 치유가 되었는지 내 인식을 점검할 수 있다. 이런 유익들이 있음에도 지나치게 과거에만 몰입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과거를 과거로 여기고 흘려보내는 연습 또한 필요하다. 과거만 붙잡고 곱씹기에는 현재가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어제부터 허리 재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원장님과 1:1 하루 체험을 신청했는데, 내 몸 상태와 그걸 인식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하면서 원장님이 그러셨다. 허리는 매우 상태가 좋다고. 신경이 찢어지거나 눌린 상태가 아닌 것 같다고. 왼 다리 오른 다리 상태의 차이도 없을뿐더러 운동을 굉장히 잘하는 몸 같다고 하셨다. 재활을 해야 한다면 유일한 이유 하나는 나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급성 요통으로 인해서 또다시 과거와 같은 통증을 느낄까 봐 두려움에 허리를 절. 대 굽히지 않는 나를 보며 내 몸 상태에 비해 몸을 너무 안 움직이고 있고 이는 근육의 퇴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느낀 그간의 통증들은 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나친 과보호. 보호본능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철학관에서 나보고 천성이 겁이 많고 세심하고 소심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통증을 만들어내서 나를 보호하려고 연막을 쳤다고 생각하니 통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내가 느낀 감각, 내가 바라보는 시선 등이 착각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원장님은 그렇다고 집에 가서 바로 운동을 심하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허리가 많이 아플 거라고 하셨다. 잘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들을 살살 달래 가며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뭐든 서두르면 안 되겠다. 과거에 힘들었던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나처럼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에게는 충격 흡수막이 없이 아픔을 120% 느껴버린다. 스펀지처럼 말이다. 내 몸도 같다. 아픔에 민감하고 쉽게 움츠러드는 나의 성향이 몸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자주 괜찮다고 안심을 줘야 할 것 같다. 일어난 사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고통을 만든다고 했다. 하나하나씩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