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방학 기록
내가 허리 아팠을 때부터 아이 스스로 씻기 시작했다. 샴푸는 어디에 해야 하고, 린스는 어디에 해야 하는지, 저 보라색 통은 어딜 씻는 용도인지 등 하나하나 말로 설명해 줬다. 아이는 피곤하지 않고 엄마한테 칭찬받고 싶을 때, 본인이 기분 내킬 때는 즐겁게 혼자 씻지만 대부분의 날들이 그렇지 않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와서 저녁 먹은 후에는 피곤하고 떼쓰고 싶고 씻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 되어버린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거야.” 말하며 안 씻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씻는 일에 에너지를 크게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이는 ‘결국 내가 조르면 엄마가 씻겨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옷을 벗지 않고 있다. 약 한 시간쯤 되었을까. 계속 울면서 엄마가 해달라는 말만 한다. 버텼다. 피곤한 날도 스스로 씻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뭐든 자기 마음대로, 뜻대로 하는 것은 없다고. 그런 삶은 없다고 최소한의 엄격함은 있어야 했다. 아이는 혼자 씻는 것은 너무 재미없을뿐더러 반복적이고 지루하다고 느꼈나 보다. 고민을 하더니 인형 씻겨줘도 되냐고 물어본다. 얼마든지 그러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씻을까?’를 고민한 것이 느껴졌다. 샤워도 놀이처럼, 바닥 닦기도 놀이처럼, 설거지도 놀이처럼 어떻게든 재밌는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아이의 창의력이 좋다. 동시에 지루하고 반복적인 행동들 역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어제는 내가 샤워를 하려고 준비하니까 아이가 옆에서 후다닥 옷을 벗고 먼저 화장실로 들어간다. 엄마 씻을 때 옆에서 같이 씻겠단다. 혼자는 심심했던 모양이다. 샤워기 하나로 같이 씻는데 아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쪼잘쪼잘 이야기하면서 꼼꼼히 거품을 씻어내는 아이를 보며 엄지 척을 해줬다.
요즘 ott에서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보고 있다. 시리즈 1부터 5까지 완결이 났다고 해서 보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이 대거 힘을 합쳐 간신히 물리쳐 놓으면 또 죽지 않고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나는 괴물이 끝날 듯 끝나지 않고 다음 시즌에 이어서 등장한다. 고놈 참 징글징글하다. 작년 9월 말에 신고한 보이스피싱의 흔적도 괴물처럼 징글징글하게 날 따라다니는 것 같다. 최근에 받은 우편 2개 모두 이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하나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알림 우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장이 날아왔다. 소장을 받아본 건 또 처음이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또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이제 ‘법원/ 경찰서’ 이런 단어들만 봐도 마음이 긴장을 한다. 자세히 읽어봤다. 내용은 또 왜 이렇게 두꺼웠던지. 내 돈 떼먹고 간 범인이 그 돈으로 코인에 투자해서 불린 일이 있었나 보다. 그때 사용된 코인 중개업자 역시 관련된 자신의 거래들이 다 막히고 지급정지가 되어있는 상황이라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는 중이라고 한다. 그 중개업자는 자신은 범죄와 아무 관련이 없고 보이스피싱피해자인 사람들과도 아무 채무관계가 없다. 는 것을 입증하고자 이 소장을 보냈다고 한다. 소장을 다시 접어서 봉투에 넣으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중개업자 000 씨. 힘내세요.”
6살인 딸의 행동거지들을 보면 모범생, FM의 길로만 걸어가려는 느낌이 확 있다. 어른한테 혼나는 걸 정말 싫어해서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들은 대로 집에서 실천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던지... 어제는 원장선생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영상부터 보지 말고 책을 읽고 오라고 하니까 등원 전에 (이미 왕 지각인데) 굳이 굳이 신발 신기전에 책을 읽고 가겠다고 하더라. (내 말이나 그렇게 들었으면 좋겠다 ^^) 또 이런 모습도 있다. 저녁에 아이와 같이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다 보면 삐뚤빼뚤하거나 그림과 똑같이 그리지 못하면 스트레스받아하면서 안 한다고 짜증을 부린다. 미술 학원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아이 모습이 활동 중간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직면해서 해결하지 않고 선생님이 도와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예 안 해버린다고 회피하는 모습이 있다. 어제저녁에도 그 모습이 보이길래 곧바로 지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잘 들어. 여기 그려져 있는 반듯한 그림은 사람이 그린게 아니야. 컴퓨터가 그려서 인쇄한 그림이지. 사람은 다 삐뚤빼뚤하게 그려. 엄마랑 그림 그리면서 놀고 싶다면 약속 하나 해야 돼. 따라 해 봐. ‘삐뚤어져도 괜찮아!’” 아이에게 익살스럽게 복명을 하며 복창을 주문했다. 자기 확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완벽하게 그리고 싶은 모범생을 망가뜨려주겠다. “자, 다시 따라 해봐. ‘삐뚤어져도! 잘했어!’” 아이가 따라 하면서도 부끄럽단다. 그래서 더 웃기게 복명을 했다. 앞으로 삐뚤빼뚤 할 때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 이때가 웃으면서 떠올랐으면 좋겠다. 한결 느슨해진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최대한 삐뚤거리게 말이다!
재활 필라테스를 갔는데 원장님이 갈비뼈 아래 근육들이 많이 경직되어 있어서 일을 안 한다고 하셨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특정 부위가 아프거나 통증이 있을 텐데 나는 그곳이 위나 장 등의 소화기관이다. 한의원에서는 위가 딱딱해져서 소화 작용을 아예 못하고 장으로 음식을 보낸다고 했었다. 위가 딱딱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위 주변, 갈비뼈 사이 명치 아랫부분 근육들도 함께 경직돼서 굳어있다고 생각하니 깊숙하게 박힌 긴장들을 마사지해주고 싶었다. 아이와 놀다가 낄낄대며 웃을 때마다 이 경직된 부분이 자연스럽게 이완이 될 것도 같다. 웃음은 우리를 느슨해지도록 해주니까.
모유수유를 1년 완모 하면서 아이와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잠든 날이 많았다. 아이는 엄마의 젖 냄새와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고, 나는 아이의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놓였다. 그때로 끝날 줄 알았던 그 잠자는 자세를 요즘 아이와 다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 안 자고 떠드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괴물 이야기를 살짝 깔면서... <귀 4개 달린 괴물을 피해 조용히 자는 척하기 놀이>를 하면 아이와 나는 자는 척을 하기 위해 이불을 끌어안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마를 맞대고 자는 척을 한다. 그리고 5분도 안돼서 아이는 실제로 잠에 든다. 신생아 때 모습, 무방비로 잠든 아이의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본다. 행복이다. 아이가 사춘기 되어서도 잠은 나랑 잤으면 좋겠다. 불가능하려나... 잠든 아이 얼굴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