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방학 기록
12월 27일.
급성 요통으로 딸을 2주 연속 주말에 돌봐준 교회분들이 있다. 고마운 마음에 이번에는 딸 또래 아이 둘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놀게 했다. 함께 거실에서 만들기를 하는데 놀러 온 자매 중 동생이 질문을 했다. “00 이는 아빠가 없어요?” 질문하자마자 딸은 “있어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질문한 아이에게는 친구의 아빠를 본 적이 없어서 나오는 순수한 궁금증이 느껴졌다. 다만 그 질문이 나로서는 슬프거나 당혹스럽게 들렸다. 앞으로 딸은 내가 없는 공간에서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종종 받을 것이다. 그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며 대답할까? 쿨하지 못한 엄마 밑에서 자라 움츠러들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12월 28일
커피를 한잔 마신 날 밤에는 아무리 불면증 약을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리고 수많은 감정과 생각의 파도가 덮칠 때가 있다. 가장 무서운 시간이다. 이날은 내 안에 겁쟁이, 어린 내면아이가 등장했다. “가정을 책임지는 게 두려워. 차라리 이전에 전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던 때가 더 나아. 나는 할 수 없어. 무서워. “ 올 한 해 금융사기피해와 아이의 사고와 급성 요통으로 인해 건강상의 문제가 많았고 유일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많이 지쳤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이를 돌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웠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감정들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덮쳐서 그 속으로 밀어 넣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무슨 짓이든 할 것 같았다. 감정을 바라만 보고 감정에 빠지지 않는 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했다. 급하게 상비약을 먹었다. 직면하되 집어삼키움을 당하지 않는 게 제일 어렵다.
12월 29일
퇴근 후 만난 아이는 졸리고 엄마는 나만 바라봤으면 좋겠고 떼쓰는 말 투성이다. 떼를 쓰면 나는 지금 너와 대화할 수 없어.라고 말하니 더 서러워서 운다. “엄마 나도 모르게 계속 화가 나.” 어떻게든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쁘다. “그럼 어떻게 하면 화가 사라질 것 같아?” “그건 모르겠어. 엄마가 알려주면 안 돼?” “음.. 그럼 이건 어때? 우선 엄마랑 꼭 껴안는 거야.”라고 하니 힝 하면서 안긴다. 그러면서 몇 마디 덧붙이기를, “난 엄마 좋아. 사진으로도 좋고, 지금 이거도 좋아. 근데 아빠는 사진으로만 좋아. 아빠 보는 건 싫고. “
엄마 아빠 중에 한 명만 택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아이는 끊임없이 마음속에 엄마 아빠를 저울질한다. 자신의 마음을 토닥여주는 엄마는 맘에 드는데 아빠는 자주 못 봐서 아쉽나 보다.
12월 31일.
2025년의 마지막 날이다. 아이의 6살 언니 됨을 축하하며 도넛을 여러 개 겹쳐 올려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함께 6살 축하 노래를 불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8시 넘어 안방에 누워 서로 장난치다가 잠에 들었다. 보신각 종소리도 듣지 못했고 12시의 끝과 시작을 보내진 못했지만 평안했다.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평상시처럼 보내니 좋더라.
1월 1일
단발로 머리를 잘랐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가 싹둑 잘려나갔다.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 대만족이다. 나이를 한 살 먹었지만 먹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다짐. 추억과 과거의 시간들이 담겨있는 긴 머리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 달라진 나를 보여주고 싶은 여느 노래 가사처럼 변하고 싶은 마음. 등이 한데 모였다.
1월 3일
아이 아빠가 아이랑 시간을 보내고 왔다. 엄마랑 있는 게 좋다고 아빠한테 안 간다고 말했던 아이는 키즈카페만 갔다 얼른 오겠다고 말한 후, 할아버지 품에 안겨 갔다. 아이를 맡기려고 전 시아버지를 마주하는데 상당히 어색했다. 당신의 아들이 외도와 폭력을 했고 그로 인해 이혼준비를 하는 나에게, 그럼에도 네가 참고 넘어가라. 고 명령했던 시아버지가 아니었던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아이 할아버지는 과일을 사서 나에게 건넨 뒤 올해는 웃을 일들만 많으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래. 차라리 어색한 것보다 덕담이 더 낫다. 나도 자연스럽게 감사합니다 한 뒤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돌아온 아이는 잠을 자기 전에 울먹였다. 자꾸 아빠 생각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아빠는 얼굴도 멋진데 몸도(내면인 듯) 멋져. 아빠 보고 싶어 엄마. “ 다행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아빠는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한다는 미안함으로 인함인지 아이에게 다정하고 잘 놀아준다. 아이에게 아빠와의 시간이 안 좋은 기억보다 추억과 그리움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 감사했다.
1월 6일
대망의 종업식 및 졸업식 날이다. 방학이 다가올수록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버거웠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 속에 제발 나를 돌봐달라는 아우성이 존재했다. 방학을 하고 나면 나름의 자유함으로 산뜻한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서적 소진.. 허탈감.. 슬픔 혹은 허망함... 등의 감정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하려고 기회를 엿본다. 그저 바라만 보고 싶은데 또 나를 덮치듯이 몰아치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이런 감정들 속에는 올 한 해, 위기학급을 이끌어오면서 애썼던 것과 관리자와의 마찰, 보이스 피싱 피해, 아이의 사고, 급성 요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일 등이 한 데 있었다. 상황을 대처해서 일상을 버티느라 지치고 힘들고 아프고 슬픈 내 마음은 뒷전이었다. 묵혀있는 감정들은 쌓이다 못해 곯아서 고인 물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육아를 해야 했고, 그럼에도 출근해야 했고, 무사히 학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요가매트 깔고 쉬는 시간마다 누워서 아픈 허리 부여잡고 몰아치는 업무를 감당했던 지난날의 나를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애쓰지 말걸...’ ,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방학까지만 버티자는 나의 다짐은 방학을 시작으로 와르르 쏟아져 무너진 내 맘과 몸을 맞이하게 되었다. 알찬 계획? 없다. 숨 쉬고 있는 내 호흡만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