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하루
딸의 생일을 9월 3일이라고 알고 있었으면서 한편으로 직장 회식이 그날에 있다는 것을 연결 지어 생각을 못하고 회식에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 전날 일정을 보다가 ‘왜 회식이 3일이지?’ 하며 부리나케 동료 교사들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나와 같은 워킹맘들이 꽤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그런 날 말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일정이 겹치는 것을 놓치고야 만다. 세월이 야속하다. 한창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침에 등원하면서 아이에게 “엄마가 오늘은 일찍 데리러 갈게.”라고 했다.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께 오늘 가족이서 생일파티를 해서 조금 일찍 데려가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가족이란.. 나와 딸 단 둘을 의미한 것이었다. 딸과 나의 구성원으로도 충분히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나만의 표현이었는데 여기서 작은 오해가 생겼다. 하원하고 아이를 맞이하는데 아이가 대뜸 ”오늘 떤땡님이 가족이랑 생일파티 한다고 했는데 아빠랑 고모랑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안 와? “라고 물어봤다. 선생님이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왜 엄마랑 둘만 생일파티 하냐고 딸이 시무룩해지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차 싶었다. 사실 이전 주말에 아이 고모와 할머니가 생일선물을 주며 생일파티를 열어줬고, 전날은 아이아빠가 아이랑 키즈카페 가서 놀고 옷이랑 장난감 선물을 많이 줬어서 아이가 또 만날 거라고 생각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로만 채워주고 싶었는데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의 기분을 살피며 눈치 보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혼한 후에 아이는 늘, 엄마와 아빠와 셋이서 노는 시간을 꿈꿨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따로따로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 다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아이의 소원이었다. 그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없음에, 아니 이루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그들과 같은 곳에 있는 건 나에게 힘든 일이므로) 아이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제부터 아이가 슬슬 미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고열까지는 아니어도 미열보다는 더 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입맛도 없지, 기분은 쳐져있지, 몸은 안 좋지,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에 와서 오순도순 대화하며 밥을 먹기보다 영상을 보여주며 간신히 밥을 먹는 시간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아이 생일을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고 음식점에서 부라타 치즈 위에 초를 꽂아서 미니 샐러드 케이크를 서비스로 주셨다. 뜻하지 않은 선물이 감사했다. 아이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소원을 빌어보라고 하니, “응 내 소원은 공듀님이 돼서 왕자님을 만나는 거야!”라고 말했다. 꽤나 현실적인 소원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한 대 맞은 것처럼 아이의 순수함에 놀랐다. 소원이 공주님이라니... 아이의 동화 속 세상을 잠시 엿본 기분이 들었다. 밥을 먹고 예약해 놓은 셀프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이런 곳을 오면 주어진 1시간 동안 한 장이라도 건지게 최대한 많이 찍자는 생각으로 임하는데 아이가 10분 정도 찍더니 이제 어서 집에 가자고 했다. 한창 활기차게 찍으려는데 이 무슨 소린가 싶어 더 찍고 가자고 이만큼만 찍고 갈 수는 없다고 아이에게 ‘고집’을 부렸다. 아이는 엄마의 열정에 맞추어 이후에 20분을 더 함께 찍었다. 돌이켜 보면 미안했던 것이 이때 아이 열이 더 오르고 있었나 보다. 본인 컨디션이 안 좋고 어서 누워서 쉬고 싶은 본능적인 마음에 집에 가자고 했을 텐데 ‘많이 부족한’ 엄마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좀 더 사진을 찍었다. 휴, 이렇게 아이와 단둘이 2번째 생일파티가 막을 내렸다.
아이는 그날 밤, 아팠고 다음날 38도가 넘는 고열에 나는 직장을 가지 못하고 가족 돌봄 휴가를 쓰게 되었다. 아이가 아프면 여러 생각이 든다. 내가 그때 아이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집에 가서 쉬었더라면 오늘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까 후회 가득한 생각부터, 그래도 휴가를 쓸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게 되다가도, 아이를 보살피고 아픈 아이를 언제 병원에 데려갈 것인지, 이 정도 열은 괜찮으니 어린이집은 우선 그냥 보낼 것인지 등의 모든 선택의 문제가 나에게만 달린 것이 그 책임감이 너무 무겁기도 하다. 남편이 있었다면 함께 상의하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혼자서 아이를 책임지고 현실을 헤쳐나가는 게 이럴 때만큼 버거울 때가 또 없다. 육아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고 그저 하루살이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 마련인데 부모란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하는데도 그런 자신을 다독이는 법을 연습하지 않으면 놓치고 만다. 챗 지피티에게 상의를 해가며 이 정도면 외출은 삼가야 할지, 병원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내가 무엇을 해주는 게 최선일지 ai와 대화를 했다.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보냈는지가 중요한 나에게, 내년 아이의 생일은 내 생각대로의 예약을 하지 않고 아이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아니, 매일의 일상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나도 너도 행복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 최선의 하루가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자책과 후회는 멈추고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