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싶어서
‘갈 때까지 갔다. 참을 만큼 참았다. 더 이상은 안돼! ’
마음이 펑하고 터지는 것 같다. 매 시간마다 싸우는 아이들을 보며 중재하면서 수업을 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충동적이어도 정도가 있지, 이건 지도의 영역이 아니라 치료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이걸 부모한테 설명해? 막막했다. 3월부터 전혀 나아지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르고 달래고 보상도 했다가 강하게 훈육하기도 했다가 내가 아는 별별 방법을 다 써봐도 아이의 충동성과 공격성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관찰하는 나는... 혼자였다.
고립감에 마음이 무너졌다. 그렇게 마주한 정서적 소진은 주말 내내 이어졌고 아픈 딸은 열이 내리기 무섭게 나의 시야에서 물러나 방치하다시피 혼자 놀게 두었다. 생각이 멋대로 학교와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괴로웠다. 먹는 것마다 다 설사를 했다. 불면증은 더 심해져서 새벽 2-3시 이후에는 아예 잠이 안 온다. 두통과 눈떨림이 함께 왔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까지 소진되기까지... 교실의 힘듦을 동료 교사와 나눌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옆 반 부장님이 아이의 학부모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너무 힘들고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저번주 주말을 앞두고 부장님께 따로 말씀을 드렸다. 핵심은 ‘아이를 지도하는데 한계를 느낍니다. 함께 고민해 주세요.’였다. 3월부터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수업 중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는 점, 친구들이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면 곧바로 주먹과 발길질이 나가며 때리는 시늉을 하는 점, 곧장 흥분되는 모습 등을 말씀드렸다. 하루이틀이 아니란 걸 부장님도 아시지만 포기하는 듯한 내 모습에 함께 표정이 굳어지셨다. 그리고 엄마로서 부장님의 최선의 해결책은 원하는 장난감을 사 줄 테니 ‘일주일 동안 친구와 싸우지 않기’를 약속하셨다고 한다. 나는 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1학년에게 하루는 길고, 일주일은 더 긴 시간이며 특히나 이 아이는 인지과정을 거치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이 나오는 소위 ADHD와 같다는 것을... (차마 진단명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난 관찰한 사실만 말해야 하는 교사니까) 오늘 교실에서 본 아이는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에 나의 지도를 받을 때마다 선물이 날아갈 것이라는 스트레스에 울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공부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묻는다. 엄마의 회유와 부드러운 협박의 말속에 병원 가서 약 먹으면 큰일 난다는 말이 있었나 보다. 나는 천천히 분명하게 아이의 눈을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영아(가명). 약은 건강하기 위해 먹는 거야. 약을 먹는다고 공부를 못하게 되지 않아.”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친구를 향해 손이 나갈 때마다 자신의 머리를 때린다. 엄마는 그래도 일주일만 더 살펴보자고 한다. 일주일은 나에겐 지옥 같은 시간이고 아이에게는 끊임없이 자책하며 실망스러운 자신을 마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어쩌면 엄마의 마음에 준비기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아직도 병원에 데리고 가기까지가 참 힘들다.
월요일이 두려웠다. 딸이 교회 간 시간을 틈타 명상을 했다. 눈을 감자마자 느껴지는 이미지가 있었다. 내 마음속 집에 자연재해, 즉 폭풍이 일었고 모든 살림살이를 싹 쓸어갔다. 나는 힘이 쭉 빠진 채 떠밀려가는 살림들을 바라본다. 아니, 도적떼였던가. 아무리 뜯어말려도 기어코 온 집안의 물건을 탈탈 털어가는 너는 폭풍이 아니고 도적이었던가? 부모가 자녀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까지 아무리 빨라야 한 달이 넘는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또 견뎌야 하나? 집이 탈탈 털려서 나에겐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수용전념치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이론은 불안을 억누르지도 회피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경험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한다. 재난급 고통 앞에 마냥 손 놓고만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나는 어떤가? 살림살이는 털렸지만 집은 남아있다. 교사회의 때 공적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관리자와 친한 동료 교사에게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고민을 나눈다고 뭐가 달라지나? 당장 변화되지 않는 현실을 결국 내가 다시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주변 아무도 모른 채 나 혼자 꾹꾹 눌러 담고 갈 수는 없다. 그렇게는. 삶이 살아질 수가 없다.
그리하여 오늘 점심에 친한 선배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대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부장님과 불편한 순간을 맞닥뜨리고 나눌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폭풍’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장님과 대치하지 않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작업동맹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함께 고민해 달라고 말도 이쁘게 했지 않았냐. 오후에는 교감님과 대화를 했다. 그러면서 내 선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나누게 되었다. 먼저 수업 시간을 영상으로 남길 예정이다. 백번 말을 듣는 것보다 직접 볼 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매주 학교로 오는 순회 상담 선생님께 내가 교실에 부재해 있는 상황에서 집중적으로 아이들과 활동을 하며 우영이(가명)를 비롯한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려고 한다. 전문가의 말을 빌리는 것도 신빙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학교 순회상담선생님이 아이의 심리진단과 평가에 적극적이시지는 않다. 집단상담도 매우 힘들어하신다. 그래도 그분의 식견도 나는 너무 필요하다. 나만의 시선에서 확장되어 함께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쌓여야 한다.
힘듦을 나누니 동료 교사도 관리자도 내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말을 했다. 학급의 어려움은 곧 나의 무능일 거라는 비합리적 신념을 걷어내고 한 발자국 용기를 내길 잘했다. 나를 살게 하고 조금은 불량하게(?) 책임도 나눠지며 자기 치유해 나가는 동시에 공동체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연명해 봐야겠다. 폭풍아, 조금만 재정비할 시간을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