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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2. 과학으로 바라본 인간

by 수민

우선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응용해 다음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을 요약한 지식을 과학이란 지식 체계를 통해 만든다.’ 일단은 특정 대상에 관한 핵심 요약 지식이 어떤 내용을 품고 있어야 하는지부터 다뤄보자. 지금까지 우리는 지식이 우리를 둘러싼 여러 변수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예측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다. 즉 결국 지식은 변수의 움직임의 규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특정 대상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지식으로서 형성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미래에 보일 가장 핵심적인 움직임 혹은 상호작용을 파악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앞서서 다뤘던 개미 우화를 예로 들자면, 해당 우화에서 똑똑한 개미는 자매와 자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여왕을 위해 쓰는 모습을 반성하며, 개미라는 존재의 본질이자 핵심이 여왕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반대로 오래 살며, 그러한 결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개미들의 움직임(반란)을 목격했던 장로 진딧물은 개미의 분업 행위를 분석한 끝에 개미가 생식이라는 행위까지 분업하는, 대단히 사회적인 행동체계를 가진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이처럼 우리는 특정 존재의 핵심적인 부분을 정의한다고 하면서, 해당 존재의 행동을 분석하며 대부분의 행동의 근간이 되는 규칙을 찾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특정 존재에 관한 핵심 요약 지식의 내용이란 결국 특정 대상의 행동 원리에 가까운 것으로 해당 대상의 미래 움직임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내용이 된다. 이는 지식의 목적이 대상에 관한 예측과 대응(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핵심 혹은 근간이 되는 규칙이라는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행동에 적용되는 일정한 규칙은 아주 장기적인 최종 목표를 위해서 존재할 수도 있고, 혹은 그저 행동을 반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 즉 그저 온갖 변수 속에서 ‘나’라는 세포 뭉치를 더 오래 존속시키기 위해서 존재할 수도 있다. 따라서 특정 대상의 핵심이자 대부분의 움직임에 적용되는 규칙이란 궁극적인 지향점을 향하고자 하는 의도로부터 만들어진다고 해석될 수도 있고 혹은 움직임이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둘 모두에 해당된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또 존재에 관한 결론을 유보하며 불규칙함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기는 하다.


정리하자면, 특정 대상의 핵심을 지식으로서 표현하는 일은 해당 대상이 취하는 움직임 대부분에 적용되는 규칙을 그 원인이 되는 것을 기준 삼아 정의하는 것이다. 이때 그 원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과 지식 체계 혹은 규칙을 정의하는 시점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이라면, 또 그 대상이 인간이라면, 움직임의 근간이 되는 무언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즉 과학이라는 지식 체계는 사람의 대부분의 움직임이 어떤 원리로 인해 작동된다고 볼까(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예측하고 대응하라고 설명하는가)?


일단 인간은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변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기에, 그 움직임의 규칙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여러 움직임의 인과관계로부터 일정한 규칙 혹은 원인을 찾아 존재를 정의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핵심이 되는 지식을 형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완벽하게 극복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것이 지식이기에, 많은 지식이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인간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파악한 요소로 가설을 형성해 그 인과 관계를 추론하게 된다.


이때, 과학이라는 지식 체계는 지금까지 파악한 변수와 그들의 상호 작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응용해 가설을 형성한다. 그래서 인간과 공통점을 가진 이들을 연구하고,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변수를 관측하며, 인간의 드러나는 부분을 관측하고, 다양한 기구를 통해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일 등을 관측한다. 즉 생물, 환경, 인간 행동, 인간의 내부(주로 뇌 관측)와 같은 가시적인 변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적극적으로 응용해 여러 행동의 인과 관계를 추적하기 위한 가설을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가설과 그 근거들 사이의 연결점을 찾아 전반적인 규칙과 원리, 즉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약 지식을 형성하고자 노력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지식이란, 인간에게 확인되는 일반적인 규칙 역시 다른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검증되고 관측된 요소를 주로 응용해 우리의 행동과 경험 저변에서 깔린 규칙을 추론한 결과가 결국 움직임이 계속 이뤄지기 위한 최소 조건인, ‘나’의 존속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이라는 존재가 갖는 움직임과 그에 영향을 주는 요소(경험, 생각 등)를 일정한 방향으로 설명하고자 근거를 검토한 결과, 특별한 지향점이나 의도를 가정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반대로 존속을 위한 절차의 반복만으로 그 모든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즉 우리의 대부분의 움직임에서 그나마 확실한 규칙은 그것이 그다음 행동을 위한, 존재의 유지에 기여하고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특별한 지향점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따라 행동한다. 볼 수 없고 그래서 실체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지만, 그 지향점과 그것을 향한 끌림은 분명히 생생히 경험한다. 과학은 이와 같은 요소 무시하고 결론을 내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과학적 가설에도 그러한 요소에 관한 고려가 들어간다. 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미 완성된 기존의 가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즉 지향점, 영혼, 의지, 마음 등의 개념과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는 실체가 없는 그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과학과는 다른 지식 체계를 응용해 만든 하나의 가설이기에 과학에서는 주로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무언가에 관한 경험을 했다고 진술하는 행동은 행동의 인과관계를 추론하기 위한 하나의 가시적인 단서이기에 과학이 그 가설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된다. 따라서 그 신비한 경험과 행동은 과학적 결론에 반영이 된다.


그러한 요소까지 고려해 내린 결론은 결과적으로 움직임은 그것이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시점에 따라서 다르게 인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행동의 원리는 존속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존속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지식을 형성하는 당사자가 되면, 인간의 삶에 관한 외부 관찰자의 시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관측 가능한 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찾아낸 규칙이란, ‘나’의 존속이다. 우리의 한없이 다채로운 경험을 그러한 단조로운 결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매우 부족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경험의 결과로써 드러나는 행동이 수렴하는 곳은 결국 존속이다. 즉 우리는 삶의 당사자로서 특별한 지향점과 의미를 좇아 살아간다고 느끼며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외부 관찰자 입장에선 결국 삶을 연장해 나가는 데에(특히 그러기 위한 특정 가치이자 수단에) 몰입하는 모습만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당사자의 시점에서는 외부 관찰자와 달리 지향점의 존재를 인지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맞다. 존속이 모호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수렴되는 목적지인 존속은 하나의 단어로서 표현되긴 하지만, 그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즉 ‘나’라는 존재를 연장시킨다는 목적지는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목표의 경우의 수는 매우 다양해질 수 있는데, 심지어 몇몇 구체적인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존속이라는 목적지와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성은 결과적으로 수렴되는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유리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 수단, 즉 구체적인 목표 달성 방법이 제한되지 않아 변화가 잦은 환경에 더 알맞은 대처 방법을 고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는 제대로 된 미래 예측을 할 수 없는 생명체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보 부족으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완전무결한 세부 계획을 설정할 수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목표(계획)를 설정하고 직접 부딪혀가며 목표를 수정하고나 폐기하는, 즉 해당 환경에 최적화하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생명체는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갖게 된다. 생명체마다 존속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달라지기에 주로 하게 되는 행동이 달라지고 결국 그 행동에 투자한 시간이 쌓여, 흘러간 시간의 합, 즉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관찰자이자 비교 분석자의 입장에서는, 특정 생명체를 정의하기 위해 그 삶, 즉 생명체가 죽을 때까지 쓴 시간의 내용의 뭉치를 들여다봤는데, 그 대부분이 특정 행동에 투자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보인다. 다양한 지식을 응용해 그만한 덩어리가 있는 이유를 분석한 끝에 그것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닿게 된다.


한편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보통 제삼자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관조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행동의 과정 속에서는 주로 그 행동의 동기와 계획만이 인지된다. 쉽게 말하자면, 행동을 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행동하며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서 저 이득이 되는 것을 얻어야 해.’ 혹은 ‘이렇게 해서 저 위험을 내 눈앞에서 제거해야 해.’와 같은 생각만이 들뿐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하고자 특정 행동을 반복하고, 또 유사한 동기와 계획을 반복하며 깨닫게 되는 결론은 결국 다음과 같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까지 내 삶의 대부분은 결국 어떤 목표를 좇는 거였어. 그 과정이 하나의 지향점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나라는 존재에겐 어떤 하나의 지향점이 주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삶은 그것을 지식으로서 표현하고자 관조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을 연장하기 위한 행위의 연속이다. 반대로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목표를 좇는 일의 연속이다. 존속이라는 모호한 목표는 그 당사자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게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행동을 관조하고 그것을 비교분석하며 필연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지식 형성자는 그 모호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나, 당사자로서 치열하게 삶을 마주하는 이는 자신이 도출한 결론(구체적인 수단)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과학이 바라본 사람의 행동 원리는 더 넓은 범주의 것인 ‘나’의 존속이 된다.


즉 과학에 의하면 인간은 ‘나’의 존속을 기본 원리로 작동한다. 그런데 당사자로서 우리가 인지하는 목표가 존속이 아닌 것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목표는 환경에 맞춰 구체화된 존속의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주장은 행동의 원리를 파헤쳐봄으로써 그 근거를 더욱 확보할 수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DNA 단위에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일이 해당 가설의 또 다른 근거가 된다. 목표(행동의 지향점)가 DNA 단위의 작은 세계로부터 영향받을 것이라는, 이와 같은 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동의 지향점이자 원리, 즉 목표가 무엇으로부터 유래 되는가를 따져보며 DNA와 목표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를 포함한 온갖 물체는 언제 어디서부터 행동의 지향점이 의도되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행동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요소를 추적해봐야 한다. 행동 즉 움직임이 없다면 우리는 그 환경 속 다양한 변수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기만 하고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행동이란 외부 요소와 상호 작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행동의 내용이란 의도한 방향으로 상호 작용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행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정하고자 미래를 예측하며 목표로 하는 상호 작용 결과를 계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미래 속 변수를 예측하고 목표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환경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인과 관계를 고려했을 때, 행동이란 외부 변수에 반응하여 내부 요소가 상호작용한 결과로, 그 결과가 표출되어 관측 가능한 형태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동에는 정보 수용과 예측 그리고 의사 결정 등이 선행된다. 그리고 우리 몸에서는 이 복잡한 과정을 모두 잘 수행하기 위해서 고도의 분업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정보 수용은 주로 감각 기관에서 처리하고 예측 및 의사결정은 뇌에서 담당한다. 즉 다양한 기관이 행동에 선행되는 업무의 주체가 된다. 그런데 해당 기관들은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구조에 영향을 받은, 일정한 방향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기에, 행동이라는 것이 단순히 의식의 의지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행동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작은 톱니바퀴,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모여 일정한 기능의 합이 된, 기관이라고 불리는 큰 톱니바퀴가 각자의 기능을 다하며 맞물려 돌아간 결과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그림을 그려보자면, 정보를 수용하는 톱니바퀴와 정보를 전달하는 톱니바퀴가 맞물리고 다시 그것이 해석 담당, 예측 담당, 목표 담당, 운동 명령 담당 등을 거쳐 운동 기관까지 맞물려야 의도한 움직임을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은 신체 구성 요소의 구성과 배치, 즉 구조에 영향을 받고 더 근본적으로는 신체 설계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행동은 내부에서 이뤄진 다양한 기능의 결과이고 내부의 기능은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그 구조를 따라 작동한 결과이다. 그리고 신체 구조는 신체 설계도를 구현한 결과이다. 따라서 행동의 방향을 정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작은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신체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애초에 구현하고자 하는 바(의도)가 정해져 있기에 설계도에 이처럼 고도의 구조를 담았을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설계도를 구성하는 정보가 바로 세포 속 DNA라는 요소 안에 위치한다. 따라서 행동의 경향성이 DNA와 맞닿아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DNA 속 설계도에는 어떠한 의도가 담겨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DNA가 전달되는 과정과 그것이 영향을 주는 요소에 관해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DNA 속 설계도를 따라 만들어진, 우리를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다양한 요소가 무엇을 지향하며 작동하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 심장, 폐, 위, 간 등 장기(기관)나 혹은 더 작은 단위인 세포들의 활동을 살펴보게 되면, 그 모든 요소가 다 함께 더 오래 존속하는 것을 목표로 묵묵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설계도가 구현하고자 한 것은 존속이라는 목표를 갖는 자동화 기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뇌 혹은 그 일부에 해당하는 의식이다. 이들의 의사결정은 가끔 너무 복잡하기에, 존속이라는 하나의 방향을 지향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복잡한 장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조금 더 단순화시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뇌라는 신경 세포 뭉치는 퍼진 신경 세포로부터 정보를 받고 그것을 처리한 뒤에 다시 정보를 전달한다.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뇌는 마치 신체 전체를 아우르는 정보를 통제하는 존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앞서서 다룬 행동이 이뤄지기 위한 내부 과정을 떠올려보면, 그 대부분에 과정이 사실 뇌의 기능인 내부 정보 통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내부 정보 통제라는 뇌의 기능은 결과적으로 내부 정보 처리의 결과가 표출된 것, 즉 행동의 내용을 정하게 된다. 따라서 뇌의 기능을 내부 정보를 통제하고 이를 통해 외부 상호 작용의 방향을 정하는 것으로 단순화시켜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뇌는 그 구조상 어떤 정보처리를 하게 되어 있으며 또 결과적으로 어떤 행동을 주로 구현하도록 되어 있을까? 존속을 지향하는 행동을 주로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다른 장기와 같이 존속이라는 지향점을 가질까?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DNA 속 설계도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정해지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세포와 DNA를 살펴보며 설계도의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모든 세포는 그 핵 안에 DNA와 단백질이 뭉쳐져 있는 구조의 염색체가 총 46개 있다. 이때 46개의 염색체는 2개씩 모양과 크기가 거의 같기에 23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바로 이와 같은 23쌍의 염색체 속의 DNA가 가진 정보의 조합 중 일부가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설계도에 해당한다. 즉 설계도의 내용은 이 23쌍의 염색체로부터 정해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23쌍의 염색체는 부모로부터 23개씩 물려받는다. 따라서 자신의 설계도 내용은 부모가 가진 46개의 염색체의 일부가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전달되고 합쳐지는 과정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세포 중 일부는 후대를 만들기 위한, 생식 세포라는 특별한 형태로 분열된다. 세포가 생식 세포로 분열될 때에는 유사한 염색체 쌍 사이에 약간의 구성 요소 교환이 이뤄지고, 그 뒤에 하나의 생식 세포에 염색체가 23개씩 들어가도록 그 쌍이 분리된다. 그렇게 완성된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생식 세포가 훗날 다른 성을 가진 개체로부터 온,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또 다른 형태의 생식 세포와 만나고 합쳐져 다시 온전히 23쌍(46개)의 염색체를 가진 배아가 된다. 많은 부분을 요약하고 아주 단순화시켜 표현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부모에게서 그와 유사한, 인간이라는 신체 상태를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물려받게 된다.


설계도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내부에서의 복잡한 과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상호 작용도 일정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생식 세포 생산 조절을 위해 2차 성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섭취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보살핌을 받는 쪽과 주는 쪽 모두 적극적으로 서로의 요구에 응하는 상호작용(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기까지 잘 도달했다면, 이제는 어른으로 인정받고 짝을 찾아야 한다. 전문성과 생산성을 길러 사회(무리)로부터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존재로서 인정받아야 하고, 그렇게 어른으로서 인정받았다면 동성 간의 경쟁과 상호 간의 복잡한 신뢰 확인 과정이 포함된, 짝을 맺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현존한다는 것은 설계도가 전달되기 위한 내부에서의 복잡한 과정과 외부에서의 복잡한 상호 작용이 나름 성공적인 결과로써 끝맺음되었다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성공이 수도 없이 많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성공이 모든 조상에게 일어났기에,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설계도가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 상호 작용이라는 것이 매번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따르기에 어떤 경향성을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과 달리, 특정 세포가 생식 세포가 되고 그것이 배아가 되는 복잡한 과정이 설계도로 인한 자동적인(무의식적인) 과정인 것처럼, 설계도가 후대에 전달되기 위한 외부 상호 작용 역시 그 설계도로 만들어진 뇌의 영향 아래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통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설계도가 후대에 안전하게 전달되기까지의 행동, 도움을 청하고, 인정받고, 짝을 찾고, 다시 후대에 도움을 주기까지의 행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뇌가 설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당연히 그 장기는 그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에 해당하는 존속 역시 지향하면서 작동했을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설계도를 따라 만들어진 ‘나’라는 이가 현존할 수 있는 복잡한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그 어려운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 얼마나 복잡한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설계도가 또 다른 공사 현장까지 전달되는 놀라운 일이 그렇게나 많이 생긴다는 것은, 설계도 자체에 존속하고, 설계도를 전달하고, 또 전달된 설계도가 잘 쓰이도록 기여하기까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설계도에는 존속과 재생산을 목표로 하는 자동화 기계를 만드는 방법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은 존속을 지향하게 된다.




이처럼 생명체는 그 삶의 시작부터 존속 지향적인 구조가 담긴 신체 설계도를 갖고 있다. 이는 생명체가 존속이라는 모호한 목표를 갖고 태어난다는 가설의 강력한 근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설계도 전달 과정에서 이어지는, 타고난 설계도를 운영하는 과정에는 우리가 그 근거를 확보해야 할 또 하나의 가설, 모호한 목표가 환경에 맞춰 최적화된다는 가설의 근거가 담겨 있다. 따라서 설계도를 따라 신체가 구현되는 과정을 이어서 살펴보자.


설계도가 전달된 이후, 그 설계도의 정보가 어떻게 신체 구성 요소 생산 및 배치에 응용되는 것일까? 다시 해당 과정을 아주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우선 DNA에 담긴 설계도의 정보 중 일부가 복사(전사)된다. 그리고 그 복사된 정보는 핵 밖을 나와 세포 속에 존재하는 리보솜이라는 요소에게 전달된다. 리보솜은 그 설계도 정보를 해석하며 단백질을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단백질은 세포의 상태 혹은 그 활동에 영향을 준다. 세포의 상태 혹은 그 활동의 합이 곧 우리 신체이기 때문에 결국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우리 신체를 구축하는 과정이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핵 속 설계도가 전사되고 리보솜에서 단백질 합성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설계도에 있는 정보만이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과정 중간에 외부 상호 작용에 관한 정보가 전달되어 해당 과정에 관여한다. 구체적으로 설계도 전사 및 단백질 합성 과정 사이사이에 해당 과정을 촉진시키거나 억제시키는 과정이 존재하는데, 그러한 조절 과정은 외부에서 온 다양한 신호에 영향을 받아 그 내용이 결정된다. 이때, 외부 신호의 근본적인 원인이란 주로 외부 상호 작용이기 때문에 결국 외부 변수 혹은 환경 요소에 영향을 받아 조절 과정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설계도를 운영해 신체를 구성하는 과정에는 환경 정보가 반영된다고 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는 물려받은 설계도와 환경 정보, 두 가지가 반영된 신체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유전자(신체 설계도)는 환경에 영향을 받아 그 발현(구현) 정도가 조절된다.


이처럼 우리는 부모로부터 일정한 지향점을 가진 설계도를 물려받는데, 그것을 그대로 구현하기보단 환경에 반응하며 구현한다. 구체적으로 부모가 물려준 방대한 설계도는 환경에 맞춰 일부는 억제되고 일부는 촉진된다. 그동안 그 설계도가 구현하고자 했던 구조와 기능 역시 환경에 맞춰 더욱 최적화된 상태가 된다. 즉 물려받은 설계도가 환경에 맞춰 구현되는 일은 결과적으로 그것이 구현하고자 했던 지향점이 환경에 맞춰 최적화되는 일이 된다. 쉽게 말해, 존속과 재생산이라는, 타고난 지향점이 그 환경에 더욱 알맞은 내용으로 구체화되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과정을 근거로 우리가 존속이라는 모호한 목표를 타고나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그 목표를 최적화 혹은 구체화시켜나가는 것이라는 가설이 나오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행동이 존속이라는 원리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의 근거를 확인하고자, 행동의 인과관계를 분석했다. 행동은 신체 내부 정보처리의 영향을 받고 신체 내부 기능은 신체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구조는 설계도에 담긴 내용을 환경에 최적화한 형태로서 구현한 것이다. 따라서 결국 행동의 원리를 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 바로 신체 설계도의 내용이 된다.


이 설계도의 내용은 존속과 재생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했다. 존속과 재생산은 설계 때부터 고려되어야 하는, 성공시키기 매우 어려운 일이자 동시에 존재를 위해서 꼭 이뤄져야 하는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행동의 기본 원리는 존속과 재생산(관점에 따라서는 장기 존속)이 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설계도의 내용은 그대로 구현되지 않고 환경에 맞춰 일부는 억제되고 일부는 촉진한, 최적화된 형태로 구현되기에 우리 행동이 직접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존속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된다. 그래서 지식을 만들고자 사람들의 삶과 행동에서 공통부모를 추적하면 존속이라는 답이 나오고, 개인이 자신의 삶에 몰입한 상태에서 행동의 근본 원리를 추론하면 이미 최적화가 완료된 내용인 삶의 지향점, 의미, 가치라는 답이 나오게 된다. 즉 그럼에도 과학이 존속이라는 답을 낸 것은 개인이 느끼는 삶의 지향점의 내용이란 결국 개인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찾은, 존속의 구체적인 수단이기에 존속이라는 범주 안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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