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오면, 이제는 행동과 생각(경험), 기능과 구조 그리고 설계와 존속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목표가 그 설계도로부터 정해진다는 가설을 아직은 납득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촘촘한 연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면서 그 연결로부터는 어느 정도 독립된 존재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 존재란 바로 정신, 의식, 자아 혹은 마음이나 영혼으로 불리는 개념이다.
‘나’는 신체 안에 위치하면서 각 부위의 정보를 인지하고, 그로부터 오는 경험을 인지하며, 그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나’가 자신이 속한 신체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인 것만 같은 경험을 한다. 이와 같은 감각이 합쳐져서 ‘나’는 신체보다 상위의 존재이자 조종자와 같다고 느껴진다. 우리 조상은 이와 같은 경험을 그대로 반영해 ‘나’의 실체에 해당하는 개념(지식)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이 신기한 경험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실체를 추론했고 그 실체에 해당하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영혼, 의식, 자아 등으로 불리는 개념이다.
시간이 흐르고 관측 도구가 발전하거나 특정 변수가 포함된 이질적인 사례가 쌓이면서, 의식이라는 개념은 더 축소되고 한편으로는 구체화되어 갔다. 예를 들면, 신체 결손 환자에 관한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며 의식이라는 경험이 발생하기 위해 필요한 신체 부위를 좁혀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대부분이 의식의 모양을 그릴 때, 더 이상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그것과 똑같은 모양을 갖지만 투명하고 물체를 투과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닌, 영혼이라는 개념의 형태를 상상하지 않는다. 대신 두개골 안에 위치한 신경 세포 뭉치의 활발한 활동을 그린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연구 결과가 우리 조상이 그 옛날에 그려 놓은, 경험을 그대로 개념화시킨 의식의 특징을 반박한다. 물론 아직 의식이라는 경험을 둘러싼 인과관계가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쌓인 근거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의식이라는 개념의 원재료가 되는, 다양한 경험 역시 신체 내부의 구성 요소가 그 구조에 맞춰 기능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편 이처럼 우리가 떠올린 개념이 근거가 쌓여가며 변해가는 일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일을 제대로 추론하기 위해서는, 경험 분석을 통한 추론으로는 부족하고 내부 관측을 포함한 다양한 관측 정보를 통한 추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경험만으로 우리 내부에서 생기는 일을 제대로 추론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신을 묻어두고 결정과 실행을 해야 하는, 일상생활 속 대부분의 존재와는 조금 동 떨어진, 의심하고 새로운 방정식을 고민해야 하는 연구자들의 통찰이다. 대부분은 의문과 의심으로 인한 수행과 결정의 지체를 피하고자, 여전히 경험만으로 추론한, 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는 의식의 형태를 그린다. 한편 그래서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애초에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도 하다. 실제로 과학 지식에 밀접하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 의식과 관련해서 가질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은, ‘나’라는 개념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경험뿐이다. 일상 속에서는 경험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단위의 복잡한 일에 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거의 없다. 그래서 과학 지식이 경험의 인과 관계를 둘러싼 더 엄밀한 설명을 해줌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래된 개념에 머무르곤 한다.
이처럼 의식에 관한 과학 지식과 일상 지식은 다르다. 지식 형성 과정을 기준으로 두고 그 둘의 차이를 분석해 보자면, 둘의 입장 차이는 의식이라는 개념을 추론하는 데 있어서 반영하는 근거의 수 차이에서부터 생겨난다. 대중적인 의식이라는 개념은 자신의 경험을 주된 근거로 삼지만, 과학 지식은 그 경험에 더해 다양한 관측 근거를 근거로 삼는다. 그렇게 더 많은 근거를 관측하고 참고하다 보면, 이전의 설명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근거가 목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혼이 곧 그 생명과 함께하기에 심장에 위치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심장은 멀쩡한데 머리에만 부상을 입은 이가 그 의식을 장기적으로 잃어버리는 현상이 관측되는 것이다. 이렇게 개념(지식)에 지속적으로 근거를 보충하는 일은, 예외적인 근거까지 품어 지금까지의 해석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 결과, 개념(지식)은 최신화를 반복하며 다양한 예외까지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아주 복잡한 형태의 개념이 된다. 그렇기에 과학 지식 상의 개념은 복잡하고 반대로 일반적인, 경험 기반의 개념은 단순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과학 지식과 달리 의식과 신체를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더 많은 근거를 받아들이고 최신화된 의식이라는 경험이자 기능을 둘러싼 지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우리는 분명 현대인으로서 최신 과학만큼은 아닐지라도, 여러 근거가 포함된 너무 뒤처지지 않은 지식은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현대인으로서 모든 생각과 경험이 뇌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을 안다. 따라서 독립 감각과 통제 감각 등의 경험이 뇌 안에 무언가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신경 세포가 억 단위로 뭉쳐져서 온갖 일이 발생하는 곳에서 어떻게 독립 감각과 통제 감각이 모두 인지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감각의 대상이 되는 주체가 실제로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만 같은 경험까지 설명하는 일이 너무나도 복잡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복잡한 사실보다는 단순한 상상을 선택한다. 즉 신경 세포의 복잡한 협업 과정보다는 신경 세포가 그 독립 감각과 통제 감각을 그대로 반영한, 진짜로 독립적인 존재를 만들었다고 가정한다. 그 편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 정리해서 표현하자면, 우리는 부품과 그것이 구현하는 기능 사이의 인과 관계 추론이 직관적이지 않은 경우, 그 둘의 사이가 간접적일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인지되는 모든 것은 신경 세포라는 부품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을 알지만, 독립(주체) 감각과 통제 감각 등은 제작 의도와 과정을 유추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세포 뭉치라는 부품과 주체에 관한 감각 제작이라는 기능, 그 둘 사이에 그러한 경험을 직접적으로 구현할, 정신이나 의식과 같은 대상을 만든다. 이를 통해 복잡한 과정은 정신이나 의식이 맡아서 하고, 신경 세포는 단지 그러한 정신이 작동할 수 있는 기반만 형성하는 것이라는, 의식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경험(독립감, 통제감, 소유감 등) 구현 과정에 관한 가설이 탄생한다.
부품이 고도의 기능을 구현해 내는 복잡한 과정을 설명하지 못해서 중간에 그 복잡한 일을 소화할 수 있는 개념(주체)을 만들어내는 일은 의식을 설명할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 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할 때에도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아주 단순화시켜서 표현하자면, 컴퓨터나 스마트 폰은 수많은 얇은 판과 전자 회로를 조합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얇은 판과 전자 회로 같은 부품 혹은 물리적인 구성 요소를 통틀어 하드웨어라고 표현한다. 그 실체가 판과 회로의 합인 하드웨어는 놀랍게도 우리에게 온갖 기능을 제공한다. 그 작은 것들이 이용자에 요구에 맞춰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작은 것들과 그들의 단순한 움직임이 조합에 따라서는 온갖 것들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드웨어가 목표로 하는 기능 구현하고자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틀어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운동에 관한 개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용자가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하드웨어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관측할 일은 없다. 보통의 이용자라면 자신이 컴퓨터라는 물체에 무언가를 입력했고 그 입력 값에 맞춰서 컴퓨터가 원하는 결과를 제공했다는 사실만 경험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입력 값이 하드웨어 작동 명령으로 치환되고, 해당 명령에 맞춰 하드웨어가 순차적으로 작동하며, 그렇게 나온 결과가 다시 출력 값으로 전환되기까지의, 모니터에 출력되지 않는, 컴퓨터 속 아주 작은 것들의 활동(소프트웨어)을 알 수 없다. 즉 이들은 하드웨어라는 부품이 고도의 기능을 구현하는 복잡한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일반 이용자라도 컴퓨터와 그 기능을 구성하는 두 가지 개념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단편적인 정보는 안다. 이와 같은 정보가 부품(하드웨어)과 그 기능 사이의 공백을 설명할 단서가 되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다시 소프트웨어는 복잡한 기능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되어버리고 하드웨어는 단지 그러한 소프트웨어가 작동할 수 있는 기반만 형성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컴퓨터 기능 구현 과정에 관한 가설이 탄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하드웨어라는 주체가 기반이 되고 그 기반 위에 소프트웨어라는 주체가 작동한 결과로써 컴퓨터의 기능이 구현되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소프트웨어는 주체가 아닌, 하드웨어의 움직임 과정을 통틀어 표현하는 개념에 가깝다. 전공자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설명이 더 직관적이기에 경우에 따라서 소프트웨어가 주체라는 설명이 용인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사실과 맞지 않다. 어쨌든 이처럼 우리는 특정 부품의 조합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 기능을 구현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설명하고자 그 사이에 그 움직임 자체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주체를 그리곤 한다. 그렇게 소프트웨어나 의식이 움직임의 과정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나 하나의 의지를 가진 독립된 주체로서 여겨지게 된다.
이와 같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이자, 이와 같은 오해가 생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신경 세포나 얇은 판과 회로로 이뤄진 물체에게 기대하는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물체의 종류에 따라서 그것이 구현할 수 있는 기능에 제한을 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고도의 기능 혹은 복잡한 기능은 정신이나 마음과 같은 주체를 소유한 생명체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미물이나 무생물은 아주 단순한 움직임 밖에 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즉 우리는 대상에 따라서 그 움직임에 관한 인지(예측) 편향을 갖는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와 같은 주장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는 존속과 재생산을 지향하는 자동화 기계에 가깝다. 이러한 존재가 인지 편향, 즉 편견과 같은 부정적인 것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주장은 누군가에게는 모순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현대인으로서 인지 편향에 관해 갖는 부정적인 인식과 달리, 사실 인지 편향은 생존에 있어서 효율적인 선택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 해당 인지 편향에 관한 가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