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답을 긴 시간 추구해 왔다는 것은 그저 고민 속에 빠져서 어떠한 시도도 없이 10년, 20년을 보냈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위해 살다가 실패하고, 다시 새로운 답을 찾는 것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목표를 추구해 왔다.
분명 더 이상은 추구하지 않는 목표라고 해도 그것을 다시 돌아보면 삶의 목표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가장 접하기 쉬웠던 삶의 목표 중 하나인 성공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고 살아간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성취를 돌아보며 만족할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까?
성공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삶의 목표이다.
보통은 부모님과 학교의 그늘 안에서 나와야 할 때쯤 살면서 앞으로 거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것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직업과 회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가 임금이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게 만들어줄 곳이자 내가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부울 곳은 돈에 의해 결정된다.
취직 후에는 돈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인정받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돈은 커리어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직업을 갖고 경력을 쌓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돈으로 자신의 행보를 평가하는 시선을 갖게 된다.
내 삶과 직업 생활이 더 잘되고 있다고 증명받기 위해서 우리는 돈과 성공을 삶의 목표로 갖게 된다.
그래서 첫 번째로 다뤄 볼 삶의 목표는 성공이다.
우선 이 글에서 성공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성공이 무엇인지를 고려했을 때, 앞으로 얘기할 성공적인 삶이란 높은 생활 수준과 소득 수준을 누리는 것이며 또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명망 있고 고임금인 직업을 가진 삶으로 전제하고자 한다.
성공을 좇는 이유를 생존 본능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에도 이러한 정의는 유효하다.
명망과 재화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생존과 번식에 대한 유리함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재화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얻는데 필요하다.
때문에 당연히 생존과 번영, 즉 잘 사는 것에 꼭 필요하다.
그래서 다수가 추구하며 한편 이 때문에 타인을 신경 쓰고 모방하는 사회적 동물은 돈을 더 사랑하게 된다.
또 많은 돈은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무리에서의 우월함은 그 무리에서 내가 더 필요함을 증명할 수단이며 식량 분배나 배우자 선택에서 유리함을 가져갈 수단이다.
살기 위해 필요하고 모두가 추구하며 우월함도 증명할 수 있기에 많은 이들이 본능적으로 성공을 삶의 목표로서 설정한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 통념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치열한 경쟁이다.
경쟁에서 이겨 좁은 문을 뚫어야만 극소수가 될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되고 수준 높은 삶을 쟁취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성공이란 것에는 꼭 치열함 혹은 경쟁이 따라붙는다.
성공이 이러한 속성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세 가지 문제를 마주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세 가지 문제가 주는 시련 앞에서 과연 성공이 유일하게 추구할 하나의 삶의 목표로서 적합한지 고민하게 된다.
첫 번째, 성공을 하기 위해 끝없는 경쟁을 하다 보면 쉽게 지친다.
경쟁심이 피로로 이어진다는 직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된다.
Freid man과 Rosen man(1959)는 높은 성취동기를 갖고 공격적이며 경쟁적이고 참을성 없는 성격을 A형 행동유형이라고 정의하고 연구했다.
후속연구를 통해 이러한 성격은 고위험 피로군에 속할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일회, 2007).
사실 우리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이미 중학교,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경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긴장 상태에 진입해 있는 것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를 포함한 많은 생물은 일상에서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방향으로 신체를 활성화하다가 큰 위험이 다가오면 비축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신체를 활성화한다.
보통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게 되면 큰 위험이 다가왔다는 무의식적이거나 의식적인 판단을 하게 되고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는 상태가 된다.
즉 스트레스를 주는 경쟁 상황은 신체로 하여금 에너지를 비축하기보단 사용하도록 만들고 그러한 시간이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당연히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당연히 우리는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긴장하고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한다.
경쟁 상태에서의 적절한 긴장과 그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더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데 기여한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이 경쟁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성취를 통해 우리의 경쟁과 긴장이 완결 나는 일은 없다.
성취하더라도 계속해서 다음 단계에 나아가 더 치열하게 사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고등학교 생활 이후로는 대학교 생활이 있고, 한 학기가 끝나면 그다음 학기가 그리고 마지막 학기쯤엔 취업준비 생활이 기다린다.
취업 후에는 어떤 전문성을 준비해서 인정받아야 하는지 또 어떤 성과를 내서 인정받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커리어 절정기인 4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혹은 그 뒤까지도 앞선 성취를 발판으로 다음 경쟁에 들어가야 한다.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가, 그 기준도 없이 그저 최선을 다하는 일을 몇 십 년간 되풀이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치열한 경쟁의 반복 속에서 신체는 균형을 잃고 신체 내부를 관리하거나 에너지를 적절히 비축하는 일을 잘 못하게 된다.
또 정신적인 피로도 점점 쌓이게 된다.
결승선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포기하고 싶어 진다.
기나긴 마라톤의 마지막 순간,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도착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성공을 좇다가 지쳐서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해야 할 경쟁과 필요한 노력의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두 번째, 성공과 경쟁을 동기로 하다가 실패하면 회복하기가 매우 힘들다.
김수경(2017)의 연구에 의하면 경쟁환경은 사회적 비교와 차별을 부른다.
그림에 그려진 사람의 정서를 공감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상황이라는 알림을 띄워놨을 때, 사람의 뇌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공감 기능을 하는 부분이 활성화되기보단 자신이 경쟁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우선시한 듯이 긴장하고 각성시키는 부분이 더 유의미하게 활성화되었다.
또 최현주, 박선영(2015)의 연구에 의하면 타인을 의식하는 이러한 각성 그리고 그 상태에서의 비교와 차별은 우리가 좌절을 겪고도 다시 일어날 힘인 회복탄력성과 부적 상관관계에 있다.
즉 경쟁 환경은 늘 비교와 차별을 의식하게 하고 이는 우리 마음의 회복탄력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 역시 경쟁 환경을 겪은 우리가 경험해 본 바이다.
경쟁을 하다 보면 늘 이 세상의 중심을 현재 자신이 아닌 자신의 이상향이나 자신의 목표인 아주 우월한 누군가를 기준으로 잡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사람을 판단할 때,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을 이은 직선 위에 세우게 된다.
예를 들어 이상향, 뛰어난 이라면 도착 지점 근처에 세우고, 자신은 중간 어딘가에 그리고 낙오자, 뛰어나지 않은 이라면 출발선 근처에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사람을 판단하게 되면, 많은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달성하는데 오래 걸리는 목표를 도착 지점으로 설정하고도 매번 그 도착 지점을 기준으로 나 자신을 판단하기 때문에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실패를 경험해서 그 직선에서 추락하거나 뒤로 밀려나 자신이 낙오자로 봤던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때 생긴다.
한 번의 헛디딤으로 과거 자신이 낙오자로 여겼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면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은 낙오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빠져 좌절하게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입시에 실패하고 한동안 자신을 낙오자로 여기며 좌절했던 경험이 있다.
자신의 위치를 의식하게 될 때마다 낙오자인 자신이 수치스러웠고 빨리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몰려왔다.
입시에 실패한 낙오자인 자신이 다시 저 위로 올라갈 방법은 하루빨리 좋은 취업을 이뤄내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낙오자 취급하며 느껴지는 불쾌함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는커녕 나를 끈적한 좌절과 나태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분명 가끔은 조급함과 불안함에 빠져서 영어 공부, 자격증 공부를 했지만 그 불안함의 효력이 다할 때면 다시 게을러졌다.
심지어 가끔은 그 불안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게임에 빠지거나 술 약속을 잡곤 했다.
일상적이고 만성적인 불안함은 점점 익숙해졌고 더 큰 불안함이 나타날 때만 그제야 무언가를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무력하고 우울한 시간과 약간의 위기감을 갖고 노력하는 시간으로 하루가 이루어졌다.
당연히 약간의 시간만 투자해 무언가 하는 척만 하는 일상을 통해서 바라는 바를 이루긴 어려웠다.
그 결과인 실패를 겪으면 금세 더 심한 자기혐오에 빠지고 또 하루를 헛되게 보내곤 했다.
긴 시간,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 끝나지 않는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지쳤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생각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특정한 방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을 계속 유지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람을 승리자와 낙오자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야 자기혐오와 조급함에 빠져 알맹이 없이 하루를 보내던 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공부, 내가 재밌어하는 공부부터 천천히 찾아나가며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었다.
이상향을 정하고 열등감으로 자신과 타인을 평가하며 몰아붙이는 전략이 분명 효과적인 사람들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나와 같이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할지도 모르고 제대로 된 동기도 형성하지 못하며 실패와 자기혐오 그리고 무력감에 빠져 한동안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성공과 경쟁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타인이 친구가 아닌 경쟁자가 된다.
경쟁환경이 공감능력의 비활성화와 상관있다는 김수경(2017)의 연구가 역시 이를 증명한다.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추론해 보는 공감의 노력 없이 타인과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입장에서 서서 그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하면서 해당 타인과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공감의 노력과 신뢰를 쌓아야만 서로 장기적인 신뢰 관계, 친구가 될 수 있고 또 그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다.
경쟁이 친구들 간의 만족도를 낮춘다고 주장한 Singleton, R. A., & Vacca, J. (2007)의 연구도 이러한 사실을 지지한다.
이런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내용과 비슷한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과거 한창 대전 격투 오락에 빠져있던 시절, 오락실에서 많은 라이벌(대전 상대)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들 대부분과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대전 게임에 한참 빠져있던 중학생 시절, 나의 존재 가치는 곧 게임을 얼마나 잘하느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재미있는 집착이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장기를 하나 인정받고 존재를 인정받는 일에 절박하게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이기고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들과 같은 게임을 하기도 했었고 또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분명 쉽게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그저 이겨야 할 상대로만 여겼기에 그들에게 경쟁심을 느꼈을 뿐 친해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때를 돌아보면 경쟁 그 자체에 너무 몰입하게 되면 타인과 친해질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사회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하며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수도 있다.
동료를 단지 내가 뛰어넘어야 할 상대로 보고 그와 진심을 나눌 친구가 될 가능성을 버린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이렇듯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소수만 누릴 수 있는 목표를 두고 이를 위해 늘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피곤하고, 때로는 올라오기 힘든 늪에 빠질 가능성도 있으며 친구를 만들기도 어렵다.
이런 생각 때문에 삶을 성공과 경쟁으로부터 조금씩 떨어뜨려 놓기 시작했다.
마라톤에서 같이 뛰는 사람들은 경쟁자일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료들일까?
사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난해서 돈에 절박해 본 적도 없고 금욕적이어서 사치를 부려본 적도 많지 않다.
많은 돈을 벌어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사치를 부리면 그것에 중독이 되거나 일을 안 하면 우울해질까 봐 두렵다.
아니면 나이가 들고 점점 냉정해지며 더 이상 부자가 될 기회가 많지 않다는 판단이 섰을지도 모른다.
사실 성공이라는 목표는 어쩌면 너무 거창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평범한 삶’은 어떨까?
직장에 들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사는 ‘평범한 삶’은 어쩌면 열심히 살기만 하면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인 만큼 그 안에서 진정한 삶의 목표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평범한 삶’을 삶의 목표로 두는 것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참조
FriedmanM,RosenmanRH.Associationofspecificovertbehaviorpatternwithbloodandcardiovascularfindings.JAMA 1959;96:1286-129
Singleton, R. A., & Vacca, J. (2007). Interpersonal competition in friendships. Sex Roles, 57, 617-627. ISO 690
김일회, 직무스트레스와 A형 행동유형이 피로에 미치는 영향, 2007
김수경, 경쟁과 공감에 관한 생리학과 사회과학의 융합적 접근, 2017
최현주, 박선영 청소년의 차별경험과 주관적 안녕감 간의 관계에서 회복탄력성과 사회적 지지의 조절역할, 2015